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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Jul 14. 2022

무던함과 버팀, 그 사이

조금 나아진 줄 알았던 그 곳, 왼쪽 골반도 아닌 엉덩이도 아닌 그 부위의 어딘가가 다시 아프다. 십여 년 동안 통증을 갖고 살았지만 작년 7월 말에 극심하게 통증을 겪은 이후로 어느정도 효과있는 치료를 받았다 생각했는데, 약간씩 다시 묵직한 통증이 오니 무섭기도 하고 말 그대로 '전전긍긍, 죽을 맛'이었다. 작년에 갑자기 찾아온 '극심한 통증'이 만들어낸 트라우마는 대단했다. 조금이라도 아플성 싶으면 몸에서 진땀이 나고 이러다 아예 못 일어나는 거 아닌지 온갖 걱정이 나를 휘감기 시작했다. 뱀같은 걱정은 나를 집어 삼켰다. 웃음은 사라지고 가뜩이나 잘 보이지 않는 미래도 사라진 듯 보였다.  


한의사 원장님은 '완치란 없다. 아프다 싶으면 내원해서 다시 침을 맞고, 자세를 바르게 하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러니 너무 스트레스 받거나 예민해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옳은 말이었다. 다만 내 몸과 정신이 그 말대로 행동하기 힘들었을 뿐이다. 결론적으론 아픈 날에는 '아, 오늘 아프네! 왜 아플까? 그러려니 하자~'라는 마인드로 살아가라는 거였는데, 예민하고 까다로운 내 성격상 저렇게 행동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저렇게 행동한다는 건 포기했다는 뜻이다.) 무던함과 버팀, 그 사이를 요구받은 셈이다. 무던하지도 잘 버티지도 못하는 나로서는 달성하기 힘든 미션을 요청받은 셈이다. 


요즘처럼 직장 생활이 힘든 적이 없다. '뭐가 힘드냐?'라고 물어본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대답하지 못하겠다. 외적으로나 물리적으로는 딱히 어려운 점이 없다. 오히려 완벽에 가깝다. 연차가 쌓일수록 디지털 광고 쪽은 남들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줄 정도로 기술과 지식이 쌓여갔다. 같은 회사에 6년 정도 다니니 사람들도, 절차도 익숙했다.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팀장에게도 어느 정도 맞춰줄 수 있게 되었고, 깨끗하게 포기하고 나니 그에게서 오는 스트레스도 많이 줄었다. 재택과 출근을 번갈아가며 하는 하이브리드 근무 방식도 마음에 든다. 


그런데?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할까? 공교롭게도 '익숙해진 일'이었다. 무던함과 버팀의 결과, 나는 일에 익숙해졌다. 더 이상 나는 일에 대한 열정이 없다. 회사에 대한 애틋함이 사라졌다. 이 일이 다 저 일 같고, 이 광고가 다 저 광고 같고. 매일의 반복이었다. 가끔 회사는 시드머니 자금줄로 생각하고 부업을 천천히 준비할까도 생각했지만, 완벽주의 성향이 나를 더 옭아맬 것 같았다. 작년 여름 시작된 번아웃은 나를 서서히 갉아먹더니 이젠 뼈대만 남기고 내 전부를 지배해 버렸다. 익숙한 사람 속 꼴 보기 싫은 녀석들도, 꼴 보기 싫은 놈들 속 간혹 보이는 사랑스러운 사람들도, 이제는 그냥 한 뭉텅이로 보인다. 


"제가 요새 몸이 아파서 기분이 안 좋아요. 몸이 저를 지배했어요. 머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아픈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고, 여기도 저기도 다 아파요. 그런데 팀장님한테 이렇게 말할 수 없잖아요."

저녁식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옆자리 동료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아, 건강 악화는 이렇게 마음을 더 무기력하고 아프게 하는구나. 아아, 너도 무던함과 버팀 사이에서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구나. 생각해 보면 정말 무던함과 버팀 사이에서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은 자아도취로 미친 사람이거나, 안하무인이거나, 둘 중 하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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