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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Jul 31. 2022

부족해도 괜찮아

생각해 보니 종교가 있음에도 종교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 않았다. 너무 나를 위한 시간만 갖는 것 같아 7월부터 혼자 큐티를 하기 시작했다. 2019년인가 홀로 큐티를 했었는데 두어 달하다 관뒀다. 작은 교회를 다녀서 '청년부 나눔'에 익숙지 않은 나는, 홀로 하는 큐티도 괜찮았지만 꾸준히 하기는 뭔가 어려웠던 것 같다. 큐티를 다시 시작한 이유는 처음에 설명한 말 그대로다. '나 자신을 위한 시간만 가져서.' 그런 부분이 뭔가 껄끄럽기 시작했다.


큐티를 하다가 모세에 대한 말씀이 나왔다. '음, 그렇군.'라고 생각하던 중, 모세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앞세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고 호소하는 부분에 눈길이 갔다. 부족한 점 때문에 할 수 없다고 말하는 모세가 낯설지 않았다. 모세와 나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겠지만... '부족해서 못 해요!'라고 말하는 게 꼭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매사에 있어 '부족해서 못 해요.' 중증 환자였다.


나에게 늘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동료가 있다. 몇 편의 글 속에 그의 질문이 등장했다. 이번에도 같았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그는 나에게 소개팅도 하고 (그래, 나 싱글이다) 모임에 가서 남자도 좀 만나고 그래야 한다 강하게 주장했다. 너무 자주 들어 그 말에 익숙해진 내 대답은 늘 한결같다.


"살 좀 빼고요."


반은 사실이고 반은 거짓이다. 치료를 위해 모든 운동을 중단한 이후 불어난 2킬로를 감량해야 하는 건 맞는데, 소개팅을 자주 하지 않고 모임에 그닥 나가지 않는 이유가 비단 저것뿐이겠나. 그에게 구구절절 나의 사정을 설명하기 귀찮아 가장 대중적인 변명을 내세워 대답했을 뿐인데 그는 한결같이 지지 않고 대답했다. '지금이 제일 예쁘고 날씬할 때인데(<-? 앞으로 난 살이 더 찔 거라는 의미일까? 싶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변명이야!' 생각해 보니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 지금 이 글을 작성하는 20시 42분의 고로케가, 23시의 고로케보다 젊다는 것도 사실이니까.


생각해 보니 그랬다. 대학시절부터 어떤 제안이 들어오면 '저는 아직 이래서    같아요.'  부족한 부분을 먼저 생각하고 '00 해결되면, 00  아프면, 그때 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굴러오는 기회도 손흥민처럼 멋지게 발로 차서 날려버렸던 나였다. 그렇게   생긴 '부족함부터 찾아내는 기술' 나이가 들어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00  아프면, 00  해결되면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었다.


모세에 대한 말씀을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기도할 때 마치 조건처럼 '두통이 없으면 제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왼쪽 그 어딘가를 치료해 주셔야 제가 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니까. 부족할지언정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부끄러웠다. 그날 밤 나는 내 부족함을 기가 막히게 알아채는 것도 좋지만, 그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 상태로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와 태도를 달라고 기도했다.


만약 지금도 누군가 뭔가가 부족해서 앞으로 못 나간다고 한다면 나는 손을 잡고 말해주고 싶다. 그 부족함도 다 나의 일부라고. 부족함을 내가 메우려 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로 채우고, 신앙이 있다면 신앙으로 메워보자고. 부족함을 메우느라 불평하고 남과 비교하며 살지 말자고. 오늘의 네가 오히려 제일 완벽할 때 일수도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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