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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Oct 09. 2022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김상현)

제목만 보고 시한부 인생을 사는 작가가 쓴 에세이 글인 줄 알았다. 첫 장을 넘겼는데 예상과 달리 일상적인 잔잔한 글의 묶음집이라 적잖이 당황한 기억이 있다. 내용 자체는 잔잔하지만 글을 읽다 보니 '이 작가는 참 따뜻한 사람일 것 같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와 성향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따뜻한 사람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엿보고 있자니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김밥을 먹을 때 호로록 마시는 따뜻한 된장국 같은 책이었다. 


여담이지만 책 제목을 보고 예전 대학 동기가 한 명 떠올랐다. 3학년 때인가, 4학년 때. 그가 군대를 제대하고 같이 복수 전공을 했던 때였다. 가족보다 많은 시간을 붙어 보내고 쓸데없는 비밀도 공유하는 사이였는데 문득 그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있잖아, 내가 죽으면 누가 내 장례식에 올까? 아무도 안 올 것 같아." 그가 이런 말을 한 이유는, 딱히 죽고 싶다거나 죽을 예정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단순히 부를 만한, 그리고 자발적으로 올 만한 친구들이 많지 않음을 시사했을 뿐인데 유독 저 질문만 머리에 오랜 시간 박혀 사라지지 않는다. 친했던 사이임에도 막역한 추억만 남긴 채 우리는 이제 연락조차 하지 않는 남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빌릴 때 저 친구가 생각났다. 그리고 문득 '나 죽으면 누가 올까?'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미 죽은 마당에 누가 왔는지 안 왔는지가 뭐가 중요한가 싶었다.  


책 속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봤다. 최근 직장 동료가 나에게 '사랑'을 강조하며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거라 조언했다. 딱히 내가 사랑을 부정한 것도 아닌데,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말한 한 마디에 그가 살짝 삐진 게 느껴졌다. 회사에 공유하는 '일부분의 삶'만 보고 내가 사랑이 없는 것처럼 보이나 싶어 쓴웃음이 나왔다.



사람’을 발음하면 입술이 닫힌다. ‘사랑’을 발음하면 입술이 열린다. 사람은 사랑으로 여는 것이다. 그리고 삶을 이루는 건 사람과 사랑이다. 삶을 이루는 사랑에는 여러 범주의 사랑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연인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직장 동료 그리고 자신의 일, 자신의 오늘, 자신의 인생 등등. 결국 사랑하기에 가능한 일들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내가 원하는 삶 p.62


'사랑'을 발음하면 입술이 열린다는 문구가 마음에 와닿는다. 사랑, 그래.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영화에서 보는 육체적인 관계를 동원한 끈적한 사랑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지나가는 강아지도, 떨어지는 낙엽도, 가끔 술 마시고 난동 부리는 옆집 여자도, '미친년이 또 시작이네'라는 거친 말 대신, 가끔 연민 한 방울 섞인 사랑의 눈으로 보고 싶다. 나는 그런 갖가지 종류의 사랑으로 버무려진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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