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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Oct 23. 2022

정리와 찰나의 순간

요즘 나는 방 정리를 하고 있다. 아마 이전 글에 잠깐 얘기를 했던 것 같다. 화장대를 시작으로, 서랍장, 책장, 옷장, 책상, 제2의 옷장(이라 쓰고 그냥 옷을 걸어두는 그런 공간이다) 등... 지쳐서 나가떨어지지 않도록 구역을 나눠 정리를 하고 있다. 화장대를 정리할 때만 해도 반팔 티에 반바지를 입고 있던 9월 말이었는데, 시간이 어느새 이렇게 지나 긴팔에 맨투맨을 입고 있는 나를 보며.. 후리스를 입을 때 쯤 정리가 끝나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이 글을 읽으면 '저 사람 방이 100평은 되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사 오기 전 방에 책상을 놓을 것인지, 침대를 놓을 것인지를 선택했어야 할 만큼 내 방은 아담하다. 하지만 한 번에 다 하려고 하다가 시간과 체력상 다 정리하지 못하고 낙심하고 포기한 적이 많았기에 이번엔 구역을 잘게 쪼개서 정리 계획을 짰다. 결론적으론 잘 한 일이라 생각된다.  


어제는 책상을 정리하는 날이었다. 마침 '테스크 테리어'를 하고 싶었던 나는 쇼핑몰에서 서랍장이 있는 노트북 거치대를  신청했고, 분명 배송 지연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하루 만에 초스피드로 배송이 왔기 때문에 더 이상 정리를 미룰 수 없었다. 책상을 정리하다가 금단의 구역인 작은 책꽂이에 도달했다. 엽서며 편지, 우표, 잡스러운 모든 것이 꽂혀있는 잡동사니 정리함이라 하겠다. 


버릴 것은 버리고, 가질 것을 선택하는 시간이 왔다. 책상 앞에 서서 책들을 빼고 프린트 물을 꺼내기 시작했다. 밑바닥에 2011.10.07이라고 쓰인 barron's 단어책이 나왔다. 크로키 북이 나왔다. 2018년 주말에 합정까지 가서 정식으로 배웠던 그림이 보였다. 투명 파일 아래로 프린트 물이 흘러내렸다. 2019년인가, 포토샵으로 그림 그리기 신청을 해서 굿즈도 만들고 한참 재밌었던 적이 있다. 그 뒤로는 스페인어 책들과 단어장들이 보였다. 꼬깃한 노트에 빼곡하게 단어가 쓰여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고 참을 수 없어 울었다. 나는 게으르고 못난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았다. 대충 다니던 스페인어 학원에서 못 알아듣는 게 싫어 집에 오면 하루 3시간씩 미친 듯이 공부하고 복습하던 때가 있었다. 좋아하던 그림을 본격적으로 배우겠다고 토요일 합정까지 가서 그림을 배우던 때가 있었다. 어떤 때는 포토샵으로 그림을 그려 보겠다고, 퇴근하고 밤 11시 반까지 학원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던 때도 있었다. 돼지 두 마리에 닭 두 마리, 동물농장을 완성하고 엄청 좋아했던 기억이 났다.


최근 나는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옴짝달싹 못하고 살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결혼'이라는 사회적 틀이 나를 집어삼켰다. 나이가 차면서 어느 순간 '결혼'이라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나는 사회 부적응자이며 뭔가 불완전한 사람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심지어 낯선 모임에서도 그랬다. 점점 위축이 됐다. 뭘 하려 해도 눈치가 보였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새로운 도전과 활동은 눈에 띄게 줄었고 불온전한 나는 완전한 나를 이겼다. 나에게 있어 나는 '나이가 주는 목표에 또다시 도달하지 못한 사회 부적응자'로 정의되어 있었다. ('또다시'라 표현한 이유는, 나는 취업도 약간 늦게 한 편이기 때문. 인턴이 아닌 본격적으로 일을 한 건 27살이었다. 그때도 '나이가 주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압박감과 눈총 때문에 몹시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책장을 덜어내는 그 순간 폭포 같은 눈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그래, 나 이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하고 주눅 든 내가 아니라, 온전한 내 모습을 찾은 기분이었다. 마음이 뭔가 후련해졌다. 예전의 내 모습을 마주하며 자신감을 되찾은 것 같았다. 정리를 하던 그 찰나의 순간 나는 마음이 후련해졌고, 기분 좋은 희망을 느꼈다. 깨끗해진 자리에 앉아 글을 쓴다. 내일 또 회사나 어딘가에서 원치 않는 비교를 당하거나, 루저라는 기분 나쁜 소리를 들어도 낙심치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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