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산이챌린지 DAY 51 (23.06.20)

최진영, 『겨울방학』 / 돌담

by bookyoulovearchive


정겨운 풍경으로 시작하는 글. 주소를 부르면 못 찾지만, 감나무집이라고 하면 알아듣고, 묻지도 않고 매번 시키는 걸로 갖다 주는 치킨집 사장님. 배달어플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얼굴도 보지 않아도 배달을 받을 수 있는 도시와는 다른 정겨운 풍경이라 새삼 따뜻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어린 시절의 ‘장미‘라고 불렀던 친구 미루와의 추억과, 주인공이 어른이 된 현재의 씁쓸한 풍경들, 그리고 장미 가족의 근황이 교차되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비정규직과 무기 계약직, 야근과 주말 근무, 폭언과 갑질,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연차나 휴가 등. 그리고 은밀하게 저질러지고 있던 불법 행위. 유해물질을 설탕에 비유하며 합리화를 해가면서까지 주인공은 이를 고발할지 말지 고민한다. 당장의 생계가 달렸으니까. 하지만 결국 주인공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말을 꺼낸다.


어린 시절, 이사 간 집을 보여주겠다는 장미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 도망치며 거짓말까지 하게 되고 ‘내 잘못이 드러나지 않고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아서, 난 더 큰 죄책감에 빠져 버렸다.’ 던 주인공은 스스로 ‘괜찮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괜찮겠지, 괜찮겠지, 아직은 괜찮겠지, 기만하는 수법에 익숙해져 버린 형편없는 어른.’이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형편없는 인간은,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 인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잘못을 바로잡고자 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인간이 아닐까? 그리고,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인간 아닐까?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 될 게 없는 거야.’라는 주인공의 회사 사람들, ‘미래는 어려서부터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잖아. 명보다 오래 살았다고 생각하면 맘이 좀 편할지도 몰라.’라고 위로랍시고 막말을 해대는 동네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형편없는 인간들 같은데.


왜 어린 시절 장미와의 추억과 회사에서 일어난 일을 교차해서 보여줬을까 했는데 달라진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다. 자신의 잘못으로 장미가 혼이 났음에도 결국 자신의 잘못을 말하지 못한 주인공은, 회사에서 잘못된 일이 벌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땐 망설였지만 결국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잘못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게 된 주인공.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어릴 적 살던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리고 자꾸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은 과거의 자신에서 한 발짝 나아가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난 그걸로도 충분하단 생각을 했다.


한때 나는 장미의 동생이고 싶었다. 장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그 아이.
눈보라가 몰아쳤다.
돌을 찾으며 길을 걸었다.
무슨 마음인지 알 수 없었다. (p.227)


이 문장으로 소설은 끝나게 된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데 돌을 찾으며 길을 걷는 주인공의 뒷모습을 상상해 보았을 때 너무나 쓸쓸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과거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용기 있는 선택을 한 주인공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졌기를 바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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