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출판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230324~230702)
(23/07/02) 소설을 읽기 전엔 『다른 사람』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정말 궁금했고, ‘other’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다 읽고 난 후에 ‘다른’의 의미에 ‘other’도 있지만, ‘different’도 있었음을 깨달았다. ‘결국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라는 윤성희 소설가의 추천의 말이 이 소설을 잘 설명해 주는 말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여자애들이었다. 해도 되는 것보다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더 많이 배운 여자애들. 된다는 말보다 안 된다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자란 여자애들. (p.50)
처음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미 많은 시간을 지나왔다. 강승영은 말했다. 우리는 과거에 지배당할 필요가 없다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직 과거가 끝나지 않았다면 어떨까. 아직 내가 멈춰진 시계 위를 걷고 있는 거라면. (...)
하지만 내가 단추를 잘 잠근 채 살았다고 착각한다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알아채지 못하고 그대로 살았다면? 그래서 계속 단추를 어긋난 자리에 맞춰왔던 거라면? 아니면, 단추가 잘못 잠겼다는 걸 모른 척하고 살았던 거라면? (p.256-257)
이것이 나의 첫 단추다. 그것은 김동희에게서, 그리고 이진섭에게서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 반드시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말.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듣지 못했던 말. 나 역시 너에게 결코 하지 않았던 말. 언제나 그 말이 마음속에 들어 있었다.
나는 말했다.
“수진아, 그때, 널 그곳에 두고 가서 진짜 미안해.”
정말 미안해. (p.262-263)
“요즘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시간을 넘어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그녀가 말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듣고만 있었다. 그녀는 또 말했다. 지금까지 항상 무언가를 선택해 왔다고 믿었지만, 사실 그건 그냥 열쇠를 들고 있다는 기분을 위해서였을 뿐이라고. 내가 들어온 문이니까, 내가 열 수 있다. 사실은 어느 문도 열 수 없는 가짜 열쇠를 들고 스스로를 위안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고 했다. 문은 열쇠로만 여는 것이 아니니까. 수진은 말했다. (p.266)
꽤 무거운 내용이라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다 보니 완독한 후로 시간이 꽤나 지났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단아, 수진, 진아, 그리고 유리. 다른 사람이지만 다르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여자들. 아픈 과거를 완전히 정리하지 못했던 이들이 다시 만나 진실을 마주하려 하고, 어긋난 단추를 제대로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하고, 하지 못했던 사과를 하고, 과거와는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과정. ‘이야기는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 시작될 때일지도 모른다’는 말. 섬뜩하면서도 큰 울림을 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