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블 (230707~230713)
김초엽 작가님의 작품을 아직 많이 읽진 못했지만, 소설 속 ‘떠나는 장면’들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인지 공간」에서도 그랬고, 이 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단편은 ‘떠남’이라는 키워드를 담고 있다. 어떤 진실들은 떠나야만 알 수 있다는 것. 해설에서 ‘김초엽의 소설에서 진실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과정이다.’라고 인아영 문학평론가가 말한 것처럼, 각각의 단편의 주인공들은 직접 떠나거나, 혹은 떠난 이의 흔적을 따라가며 진실을 찾아 나선다. 아직 오지 않은, 그러나 왜인지 모르게 아련하고 그리운 미래를 다루고 있는 단편들. 배제와 차별, 혐오가 없는 세상, 그리고 이해하고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존재들. 이 소설은 어쩌면 정말로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23/07/07) 소설에서 개조인과 비개조인의 분리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 현재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답고 결함이 없는 완벽한 것만이 옳은 것인가? 어떤 존재의 특성이 누군가를 마음껏 멸시하고 혐오하는 낙인이 되어 그 존재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잘못된 일 아닌가?
올리브는 사랑이 그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p.32)
그때 나는 알았어.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p.33)
‘서로의 존재를 결코 배제하지 않는 지구 밖의 마을’은 그래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이상적 공간이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 그것이 결국 사랑이라는 것을. 그래서 괴로워도, 더 많이 행복할 거라는 것을. 깨달음을 얻은 데이지는 아마 다른 순례자들처럼 마을로 다시 돌아오지 않지 않을까.
(23/07/08) ‘최초의 조우자’. 만약 정말 이 광활한 우주에서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생명체가 살고 있다면, 누군가가 갖게 될 타이틀. 글을 읽으며 ‘최초’는 영광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외롭고, 고독한 길이기도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희진은 결코 루이가 보는 방식으로 그 풍경을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희진은 루이가 보는 세계를 약간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고, 기쁨을 느꼈다. (p.53)
우리와는 다른, 지구 밖의 존재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란 생각을 했다. 나는 결코 타인이 보는 방식으로 세계를 볼 수 없고, 타인도 나와 같은 방식으로 세계를 볼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대화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며 서로의 세계의 간극을 좁혀 나가곤 한다. 서로를 ‘감각’하고 ‘이해’하는 건 꼭 말이 통하지 않아도 가능하다는 것을, 희진과 루이가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희진은 지구인들이 찾아가 무리인들의 세계를 망가뜨리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 같다. 행성의 위치를 영원히 비밀로 붙인 것을 보면 말이다. 희진과 루이처럼 말은 통하지 않아도 서로 감각하고 이해하는 관계는 ‘도구’가 개입되는 순간 재현되기 어려울 테니.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p.58)
루이의 기록에 남은 희진이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듯, 희진에게 루이도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었을 것이다. 두 아름다운 존재의 이야기는 희진의 죽음과 함께 영원히 비밀로 묻혔지만, 그 찬란한 색채의 이야기는 화자인 ‘나’에게 오래도록 남아있지 않을까.
(23/07/09) 단지 상상으로 그려낸 줄 알았던 신비하고 몽환적인 세계, 그렇지만 왜인지 모를 그리움을 자아내는 세계, 사실은 존재했으나 이미 사라진 행성.
류드밀라의 행성을 보며 사람들이 그리워한 것은 행성 그 자체가 아니라 유년기에 우리를 떠난 그들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p.87)
수빈은 순간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고 느낀 적 없는 무언가가 아주 그리워지는 감정이었다. (p.88)
그리고 아기들의 뇌에 한동안 머물며 인간에게 감정과 마음, 사랑, 이타심 등을 가르치는 ‘그들’이라는 존재. 우리와 공생하지만, 어느 순간 기억과 함께 우리를 떠나는 ‘그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류드밀라의 그림을 보며 알 수 없는 그리움을 느낀 걸까? 이야기가 이렇게 이어질 수 있다니,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감탄이 나왔다.
(23/07/10)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는, 그러나 끝내 닿지 못할 곳으로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지구의 차원에서 가지 못할 곳은 없지만, 우주의 차원이라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우주는 우리가 그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무한의 공간이니까.
안나는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우주 정거장’에서 슬렌포니아 행 우주선의 출항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이 기다리는 일뿐이기에. 동결과 해동을 반복하며 기약도 없는 우주선을 기다리며 이미 생을 다하고 떠났을지도 모르는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안나의 마음을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매번 남겨지는 사람이 생겨난다면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이라 말하는 안나의 말이 쓸쓸하고도 처연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가속하더라도, 빛의 속도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한참을 가도 그녀가 가고자 했던 곳에는 닿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안나의 뒷모습은 자신의 목적지를 확신하는 것처럼 보였다.
(…)
그녀는 언젠가 정말로 슬렌포니아에 도착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끝에. (p.116)
결국 안나는 자신의 의지대로 슬렌포니아로 떠나게 된다. 도달이 불가능하단 것을 알고도 떠나는 마지막 여행길. 빛의 속도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리고 아주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더라도, 안나가 슬렌포니아에 도착해 그녀의 가족들과 영원히 함께할 수 있기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 해도, 마음까지 막을 순 없기에, 그 마음만은 시간이 아무리 흐르더라도 꼭 지켜지길.
(23/07/11) 지금까지 읽은 단편 중 제일 복잡 미묘한 작품이었고, 책에 수록된 다른 단편들과는 결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감정에 형태를 부여할 수 있다면 어떨지‘ 생각해 보는 글인 줄 알았는데 다 읽고 나니 잘 모르겠다.
정하의 연인 보현이 소품을 수집하는 취미는 아마 ’감정의 물성‘을 모으는 것과 비슷한 의미이지 않을까 싶었다. 여행에서의 소중한 기억과 두근거림 같은 감정을 그곳에서 구매한 소품에 담아서 볼 때마다 떠올리고 소유하는 것처럼, 보현은 ’우울‘이라는 감정을 ‘감정의 물성’에 넣어 물건을 만지듯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했’던 게 아닐까. 후자의 감정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아 어려웠다.
의미는 맥락 속에서 부여된다. 하지만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p.133)
어쩌면 보현은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 필요‘할 때가 있는 것처럼, 그저 눈물 그 자체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울고 싶을 때 ’감정의 물성‘의 힘을 빌려 울었지만, 사실 그건 진짜 그녀의 눈물이 아니었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 같은 정하와 보현. 이제 보현을 위로할 언어조차 알지 못하는 정하. 둘의 관계는 아마 곧 끝나지 않을까?
(23/07/12) 소설에서 나오는 ‘엄마’라는 단어는 자주 나의 눈물버튼이 된다. 실종된 엄마가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은 엄마가 실종되었다‘는, 매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로 시작된 글은 아련하고 아릿한 여운을 가득 남겼다.
엄마와 딸, 흔히 애증의 관계로 표현되는 사이. 은하와 지민만큼 심각하진 않아도, 엄마와 딸이라면 한 번쯤 서로에 대한 이런 애증의 감정을 오롯이 느껴보지 않았을까. 하지만 사랑하기에 실망도 하는 것이고, 미움도 느끼는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애증의 기반이 되는 감정은 그래도 ‘사랑’이 아닐까 싶다.
엄마가 그렇게 상처받은 표정을 지을 때마다 지민은 통증 같은 슬픔을 느꼈다. (p.150)
밉지만, 원망스럽지만, 그럼에도 상처받은 표정에 느끼는 통증 같은 슬픔. 사랑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이라 생각한다. 엄마 또한 지민을 사랑했지만, 그보다 더 큰 우울이라는 감정에 잡아먹혀 지민과 갈등을 겪은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하지 않았으면, 기대도 없으니 상처도 받지 않았을 거다.
엄마는 세계에서 분리되어 있었다. 인덱스가 지워지기 전에도. (p.157)
소멸과는 다른 실종. ‘김은하’의 마인드는 소멸된 것이 아니라 실종된 것이지만 지민은 소멸된 것과 다름없다고 느낀다. 지민은 엄마가 죽은 후에야, 그것도 죽은 후 실종된 후에야 엄마가 ‘김은하’로 존재했던 시절에 대해 생각해 본다. ’엄마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지민의 말을 보며 사실 나도 엄마를 잘 아는 게 아닐 수도 있단 생각애 들었다. 지민의 엄마라는 이름을 얻은 대신 ‘김은하’라는 이름을 잃은 한 여자. 나의 엄마도 어쩌면 은하처럼 자신을 잃고 외로웠을까?
“이제…….”
단 한마디를 전하고 싶어서 그녀를 만나러 왔다.
“엄마를 이해해요.”
정적이 흘렀다. 은하의 눈가에 물기가 고였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지민의 손끝을 잡았다. (p.169)
초반부에 학계에서는 마인드들이 자아를 가진 것은 아니고, 단지 생전의 망자들을 그럴싸하게 재현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여전히 마인드는 살아 있는 정신이라 믿는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을 믿을지는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 아마 지민이 실종된 은하의 마인드를 끝끝내 찾아내 ’엄마를 이해한다‘고 전하고 싶었던 이유는, 후자를 믿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죽은 이의 영혼을 사후 마인드 업로딩을 통해 도서관에 보관하고 그곳을 찾아가서 볼 수 있다면, 나도 내 가족의 마인드를 도서관에 보관하고 찾아가고 싶다. 사실 남겨진 이들에게 잘 잊히는 것도 필요하다는 걸 알지만, 나는 내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는 내 가족을 영영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보낼 자신이 없다. 이기적이지만 그렇다. 지민도 어쩌면 엄마의 죽음을 3년이 지나고 나서야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엄마의 마인드를 찾으러 도서관에 방문한 것일지도 모른다. 은하는 마인드로 남기 원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도서관에 보관되어 결국 마인드의 상태로 지민과 사후에라도 화해한 것처럼, 남겨진 이들에게는 떠나보낼 시간이 충분히 필요하다. 하지만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살아있을 때 충분히 표현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23/07/13)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이 진실은 아니었다면? 터널을 통과할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타이틀을 눈앞에 두고 있는 가윤은 터널로 가기 전 마지막 검진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가윤이 평생을 우주 영웅으로 숭배해 왔던 재경 이모가, 사실은 인류 대대의 미션을 코앞에 두고 전날 대기지역을 이탈해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것‘.
재경은 자신이 참여한 사이보그 그라인딩 프로젝트를 통해 인류의 성취를 이루는 것보다는 개인의 한계를 넘어서는데 더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윤은 훈련을 받으며 계속해서 재경이 왜 그런 선택을 했을지 생각하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의 선택으로 얻은 해방과 자유를 존중한다.
재경의 선택은 당연히 비난받을 수 있지만, 서희와 가윤처럼 나도 그의 선택을 비난하고 싶진 않다. 소수자라는 이유로 선발 단계부터 엄청난 이의제기와 비난에 시달렸고, 또 그만큼 소수자이기에 엄청난 찬사도 받으며 ‘과소대표되면서 동시에 과대대표’되었다는 표현처럼 그는 굉장한 피로와 압박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러한 것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몸을 얻어 자신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을 택했던 것 아닐까? 막대한 돈이 들어갔을 프로젝트 참여자로서는 책임감이 없는 태도라 비난받을 수 있지만, 또 개인으로서의 재경은 당연히 본인이 제일 중요한 존재니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니 굳이 그를 비난하고 싶지 않아 졌다.
언젠가 자신의 우주 영웅을 다시 만난다면, 그에게 우주 저편의 풍경이 꽤 멋졌다고 말해줄 것이다. (p.198)
‘지상의 사람들이 부여한 책임을 재경이 모두 가지고 바다로 가버린 탓‘에 큰 압박감을 느끼지 못했다는 가윤은 자신에게 주어진 ’터널 너머로 간 최초의 인간‘ 타이틀을 기꺼이 거머쥔다. ‘굳이 목숨을 걸고 올 만큼 대단한 광경은 아니지만 가윤은 이 우주에 와야만 했고, 이 우주를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우주 영웅 재경이 가지 않은 길을, 가윤은 자신의 선택으로 오게 되었다. 재경에게 ’우주에 가지 않는 것이 해방‘이었다면, 가윤에게는 ‘우주에 가는 것이 해방’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