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사 (230718~230723)
(23/07/18) 기후 위기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극한 호우’라고 불릴 만큼의 비가 퍼붓고, 그로 인해 많은 생명이 숨을 거두었고, 농작물, 건축물 등 할 것 없이 모두 너무나 큰 피해를 입었다. 그래서 소설 속 ’안전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라는 문장이 너무나 무겁게 마음에 내려앉는다. 어른이 된 후 기억에 남는 참사가 너무 많다. 물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죽음은 더더욱 많겠지만. 어쨌든 그런 죽음 이후에도 세상은 아무 일 없이 돌아가고, 시간은 흐른다. 슬프게도.
수영을 좋아한다. 물속은 몹시 고요해 가끔 그 안에 있다 보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숨쉬기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 아주 부자연스럽고 절실한 일이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는 주호의 말처럼, 물속에서는 물 밖과 달리 숨을 참아야 하고, ’호흡‘이 매우 소중해진다. 하지만 수영에는 물속을 유영하는 방식만 있는 게 아니라, 물 위를 떠다니는 방식도 있다. 몸에 힘을 적당히 빼야 물에 뜰 수 있지만, 이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적당히 힘을 주고, 적당히 힘을 빼서 물에 뜨는 균형점을 찾는 일, 삶도 그런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 아닐까.
희주와 주호가 열심히 수영 연습을 하는 건, 어쩌면 열심히 ‘살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었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두 사람 모두 이유는 모르지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살아 있어서 좋다는 생각을 한다. 남들이 보면 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새 살기 위해 그 누구보다 열심인 게 아닐까.
물속과 물 밖. 시끄러움과 고요함. (…) 물이 흔들리고 물이 휜다. 딱 그만큼 몸이 흔들리고 몸이 휜다. 떠오르는 몸. 가라앉는 몸. 물을 밀어내는 만큼 밀려가는 몸. 밀어내는 만큼의 무게. 딱 그만큼 두 사람은 손안에 들어오는 물을 만진다. 움켜쥔다. 갈 수 있는 만큼 간다. (p.40)
‘딱 그만큼, 갈 수 있는 만큼 가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된다’는 것.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삶의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적당함’도 하나의 삶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 이 글을 통해 따뜻한 위로를 건네받은 듯하다.
모두가 자신에게 맞는 호흡으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글이었다. 따뜻하면서도, 마음 한편은 아릿한, 그런 글이어서 더 좋았다.
(23/07/20)
"아 근데. 나는 사랑이 좀 하고 싶다."
엘. 오. 브이. 이. 그게 뭔데. 나는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하고 싶다고 말하네. 웃겨. 아주 웃겨. (p.69)
37살의 맹희는 아직도 사랑이 뭔지 모르지만 사랑이 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함께일 때 더 행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은 없어 보인다. ‘혼자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둘이서 행복할 수는 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사람으로, 둘이 있을 때 더 행복하기에 연애를, 결혼을 결심하는 걸 텐데 어떻게 그런 확신이 들었는지가 궁금했다.
예전엔 나도 쉽게 입 밖으로 내뱉었던 말. ‘사랑이 뭔데! 나도 사랑 좀 해 보자!’ 이때의 사랑은 주로 연인과의 사랑을 해보고 싶단 의미였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랑의 의미와 범위가 아주 넓다는 걸 깨닫게 된 순간부터 저런 말을 하지 않게 된 것 같다. 나도 사랑을 하고 있는 거니까.
맹희가 말하는 ‘세상에 아무리 줘도 보답받지 못하는 마음’. 예전엔 이 점에도 불만이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만큼 나를 좋아해 주지 않는 것 같아서, 내가 아무리 마음을 줘도 같은 크기만큼 마음이 돌아오지 않는 것 같아서 속상하고, 때로는 슬펐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좋아서 주는 마음에 보답받으려고 하는 건 나의 욕심이라는 것을. 나도 보답하지 못한 마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 그 순간에 그저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그걸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엔 관계에 불만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마음, 나의 상태, 나의 행복 같은 것들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여럿이 함께 보내는 시간도 물론 다른 의미로 즐겁지만, 혼자여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꼭 연애, 결혼, 육아 등이 정답인 사회가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사랑과 개인의 행복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맹희는 어쩌면 그 과도기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일 지도 모른다. 정답과 모험 사이 어떤 것을 선택할지 고민하는 사람.
맹희는 외투를 옷걸이에 단정하게 건 뒤 호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랑하고 왔다." (p.99)
맹희의 이 말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연애도, 결혼도 하고 싶긴 하지만, 그래서 사랑 좀 하고 싶지만, 또 사랑을 쿨하게 끝낼 줄도 아는 사람. 두려움 없이 언제든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아주 용기 있는 사람. ‘맹신과 망신 사이에서 여러 번 길을 잃으며, 기대기도 하고, 속기도 하겠지만’ 맹희는 그래도 계속해서 ’사랑‘을 찾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맹희가 찾아 나갈 사랑의 형태가 어떤 것이든 간에, 그가 나아갈 길을 응원하고, 또 따라가고 싶어졌다.
(23/07/22) 고향. 한 곳에서 떠나지 않고 쭉 살고 있는 나에게는 몹시 낯선 단어다. 지금 사는 도시가 고향이긴 하지만, 나의 일상이기도 하니까.
울산은 내게 그런 곳이었다. 한때 가장 벗어나고 싶은 도시였지만, 궁지에 몰릴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 (p.129)
주인공에게 고향 울산은 애증이 담긴 곳인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한때 가장 벗어나고 싶었지만, 궁지에 몰릴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난’ 대상이 ‘추자 씨’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추자 씨도 아마 분명히 자신의 방식으로 주인공을 사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평생 추자 씨에게서 받아본 적 없는 다정한 눈빛’이라는 표현을 봤을 때 주인공은 추자 씨에게 큰 애정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살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힘들 때 생각나는 게 고향인 것처럼, 가장 먼저 기대고 싶은 사람이기도 한 것이 아닐까.
고향에 내려왔지만, 산불 때문에 원래 집이 아닌 ‘덕미 씨’의 집에 머무르게 된 것도 묘하다. 내가 모르는 나날들을 함께 한 두 사람을 지켜보는 주인공은 조금 외로워 보인다. 고향의 안락한 집이 아닌, 낯선 공간에서 머무르게 되었는데 춘자 씨는 오랜만에 만난 나와 함께 하기는커녕 덕미 씨와 둘만 아는 이야기를 나누고 밤이 되자 너무나 자연스럽게 안방으로 들어가는 상황.
겉으로 깨끗해 보인다고 해서 자주 닦아주지 않으면 식물의 숨구멍을 막는 물때와 먼지. 겉보기에 깨끗해 보였는데 막상 닦으니 새까만 먼지와 죽은 벌레들로 더러운 불투명한 형광등판. 어쩌면 주인공의 마음에도 들여다보지 않아 쌓인 지도 몰랐던 먼지가 부옇게 부유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추자 씨에게 받은 상처를 애써 무시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추자 씨의 바깥에서 생각하고 싶다는 생각조차도 내가 알고 있는 선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있었다. (p.145)
‘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추자 씨가 그 시절을 빠져나온 사람처럼 보였다’는 주인공의 말처럼, 결국 ’울산의 추자 씨‘도 주인공이 ‘지나가야 할 한 시절’ 같은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 둘 중 어느 쪽이든 이제는 내 두 발로 걸어갈 필요가 있었다. (p.149-150)
택시를 타고 떠나가는 대신 택시를 떠나보낸 주인공은 자신의 두 발로 걷는 것을 택한다. 더 이상 도망가지 않고, 떠나보내야 할 한 시절을 마주하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나는 바랐다. (...) 산에서 시작한 불길이 빠르게 번져 한울을 집어삼키기를. 그리하여 마침내, 어떤 구호도 장비도 무용해지기를. 모든 것이 까맣게 재가 되어 사라지기를. (p.150-151)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주인공은 모든 것을 불태워 재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없애버리는 것을 택하는 사람인 듯하다. 울산과 추자 씨라는 한 시절을 떠나보내고, 주인공은 어느 곳에서 시작하게 될까? 다시 대학원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아주 새로운 시작을 꿈꿀까? 그의 미래가 어떻든, 후회 없이 두 발로 굳건히 걸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언제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잔뜩 흐린 하늘의 오후에 이 글을 만났다. 마음이 답답하고, 어쩐지 숨이 좀 막히는 습도와 기온. 날씨와 글이 잘 어우러진다는 생각을 했다. 쓸쓸하지만 강렬한 마무리가 ‘재’라는 단어와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