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노벨라 16 (230721~230722)
인생이 만약 무한으로 리셋할 수 있는 ‘게임’이라면 어떨까? 새로 플레이할 때마다 다르게 살아보는 것이 좋을까? 모든 플레이에 최선을 다하는 게 가능할까? 이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 전개가 몹시 흥미로웠다.
"모든 사람을 작가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요. 자신이라는 가장 유니크한 이야기의 작가요. 이 생은 온전히 당신만의 이야기니까요.” (p.218)
소설 속 이 문장처럼,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의 인생이라는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작가다.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주인공인 내 몫이지만, 나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만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이 세상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지며 돌아가는 곳이니까.
작은 점 같은 한 사람 한 사람의 희망이 선이 되고 면이 되어 이어지고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가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이 생을 결심하는 순간의 배경이 되었다. 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연쇄였다. 그렇게 우리 삶이 이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p.231-232)
그래서 소설에서 나현과 태인을 통해 사랑과 이별을, 그리고 더 나아가 관계를 말하는 방식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나현과 태인이 함께 냥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처럼, 사랑을 만들고 가꾸어나가는 것도 대화와 합의가 필요하다. ‘두 사람의 연필 소리가 겹치며 리듬을 만들어내듯’(p.100) 각자의 이야기를 조절해 ‘둘의 최선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p.105)이 사랑을, 그리고 관계를 견고하게 다져나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현과 태인이 합의한 냥고 캐릭터가 점점 흔들리지 않게 된 것‘(p.106)처럼. 사랑을 한다는 것은 각자 가지고 있는 세계에 서로의 세계가 파고들더라도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확장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 사랑은 태인은 냥나라 행성에 남고 나현은 홀로 현실로 돌아오자 ‘반 쪽짜리 이야기’(p.118)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별이라는 건, 연인으로 지내며 함께 가꾸어왔던 이야기가 한순간에 없던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둘이 만들어가던 이야기는, 사랑은, 둘이 아니게 된 순간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건 좋았던 기억의 조각들과는 별개다. 순간은 떠올리고 추억할 수 있어도, 결말이 나버린 이야기는 되돌릴 수 없다.
인간관계로 생각해 보면 나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만나 변화하고 확장될 수도 있고, 나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그렇게 만들 수도 있다. ‘이야기의 힘’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약속을 통해 만들어낸 세계를 함께 하는 특별한 경험’(p.69-70)을 할 수 있다는 것. ‘남의 이야기는 영원히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가능성’(p.70)을 받아들이는 것.
그래도 상상을 계속한다. 끝내 누군가와 만날 나의 이야기를. 아무도 보지 않을 곳에 잠시 비치되었다 금세 잊힐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계속 서로의 이웃일 수 있도록 이어주는 이야기를. 아직 세상에 없다면 우리가 만들어낼 멋진 거짓말을, 진짜가 될 거짓말을. (p.235)
그래서 나현이 ‘남의 이야기를 미워했을 뿐인데 자신의 이야기까지 미워하게 된 것’(p.128)처럼 먼저 나의 이야기를 사랑해야 타인의 이야기를 바라보고 받아들일 힘도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만들어 나갈, 내가 주인공인 이야기, 나를 구하고 살게 하는, 내가 사랑해야 할 나의 이야기.
"이제부턴 내 이야기를 시작하겠어." (p.138)
당신도, 당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기를.
(*서울국제작가축제 이벤트로 그믐 독서모임에 참가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