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핀시리즈 시인선 015 (230828~230831)
| 언젠가의 우리는 지금 이 문장에서 비롯될 것이다
/ 「비롯」 (p.56)
(23/08/31) 아침부터 밤이라는 하루,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계절,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시간. 이 시들은 그 시간 속에서 시인이 열어 본 단어의 문들 너머의 풍경으로 쓰인 것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런 기억들이라면 끝없이 나열할 수 있다. 유년이라는 단어가 거느린 숱한 문들 가운데 겨우 몇 개를 열어보았을 뿐인데 거대한 쓰나미가 지나간 것처럼 마음이 쓰려온다. 왜냐하면, 그 문을 열어본 적이 있기 때문에 이제 나는 그 풍경으로부터 비롯된 문장을 적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 에세이: 「빚진 마음의 문장 — 성남 은행동」 (p.97)
세상과 삶을 책에 빗대어 표현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많은 깨달음을 주고 있는 시들. ‘어떤 시간이든 반드시 썩고, 우리는 사라지면서 있다’는 마지막 시(「변속장치」)가 어쩐지 섬뜩하게 느껴진다. ‘아침은 밤을 삼키고 밤은 다시 아침을 삼키며 떠나고 또 되돌아오는’(「거인의 작은 집」)것처럼, 시간은 흘러 하루가, 한 달이, 그리고 한 계절이 떠나고 또 되돌아온다. 하지만 과거의 우리는 사라지고, 또 현재의 우리가 있다. ‘우리는 모두 한 권의 죽음이 되어 간다’는 시의 제목처럼, 우리 모두는 죽음이라는 결말을 향해 각자 한 권의 책을 써 내려가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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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미래가 궁금하지 않다며 문을 닫았다 탁자 위엔 읽다 만 책이 놓여 있고 내가 믿을 것은 차라리 이쪽이라고 여겼다
/ 「시간의 손바닥 위에서」 (p.12)
| 그는 플랫폼에 서서 세상의 끝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린다
호주머니 속의 사랑을 구겨버리고
이름과 질문을 버린다
/ 「우리는 모두 한 권의 죽음이 되어 간다」 (p.29)
| 어차피 세상은 해독 불가능한 책이니까
/ 「펭귄의 기분」 (p.47)
| 절반에 대한 믿음만으로 식탁에 앉는다
우리는 사라지면서 있다
/ 「변속장치」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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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전망
시간의 손바닥 위에서
발만 남은 사람이 찾아왔다
우리는 모두 한 권의 죽음이 되어 간다
말로의 책
이것은 양피지가 아니다
고리
폐쇄 회로
펭귄의 기분
비롯
원더윅스
나의 겨자씨
거인의 작은 집
터닝
변속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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