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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youlovearchive Oct 05. 2023

마르그리트 뒤라스, 여름밤 열 시 반

문학과지성사 (231003~231003)



밤 열 시 반. 그리고 여름.
    그러고 나서 약간의 시간이 흐른다. 드디어 밤이 찾아 온다. 그러나 오늘 밤 이 마을에는 사랑을 위한 장소는 없다.


| 첫 문장: “그의 이름은 파에스트라예요. 로드리고 파에스트라.” (p.7)


(23/10/04) 여름밤 열 시 반. 여름의 어느 달인 지에 따라 강렬한 태양열이 남아 후덥지근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기온이 높지 않아 서늘한 바람이 불기도 하는 시간. 이 소설은 그런 변덕스러운 여름의 강렬함과 서늘함을 모두 담은 소설이다.


  이 소설은 살인사건으로 시작하지만, 살인은 전혀 이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소설은 철저히 마리아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마리아는 왜 그렇게 ‘폭풍우 속의 살인자’ 로드리고 파에스트라를 구해서 프랑스로 데려가고 싶어 했던 걸까? 어쩌면 자신처럼 이미 끝나버린 사랑을 마주한 그에게 동질감을 느꼈던 걸까? 로드리고 파에스트라가 자신과 같이 공허함을 느끼고 그에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무언가를 잊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기다리기 위해서인지, 혹은 무언가로부터 도피하기 위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공허를 채우기 위해서인지 마리아는 내내 술을 마신다.


  기다림, 그리고 침묵. 마리아는 자꾸만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피에르와 클레르의 사랑이 이루어지길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또 로드리고 파에스트라, 피에르 모두 상대가 대답을 하길 원할 때 침묵하기도 한다. 이러한 기다림과 침묵은 오히려 긴장감을 계속해서 고조시킨다.


  하루 사이에 참 많은 일이 벌어졌다. 로드리고 파에스트라가 죽인 두 사람의 시신이 발견된 후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한 저녁 무렵부터, 피에르와 클레르가 비밀스럽게 사랑을 속삭이는 밤, 마리아가 지붕 위의 남자가 로드리고 파에스트라임을 확인한 한밤, 그를 차에 태워 마드리드행 국도를 달려 밀밭에 내려두고 다시 오겠다고 약속한 새벽, 비몽사몽으로 간신히 돌아온 호텔에서 잠을 청한 후 맞은 아침, 총으로 자살한 로드리고 파에스트라를 마주하게 된 정오, 마드리드로 가는 길에 들른 파라도르에서 결국 피에르와 클레르가 사랑을 나눈 오후, 그리고 마드리드에 도착해 마리아가 피에르에게 그들의 이야기의 끝을 고하는 저녁. 변덕스러운 여름만큼이나 변화무쌍했던 하루의 이야기. 영원한 사랑이란 없는 걸까? 인간은 은밀하고 금지된 사랑에 대한 욕망을 참을 수 없는 걸까? 공허하고 권태로운 마리아의 마음이 전달되어 씁쓸하고 서늘한 여운이 남는다.


———······———······———


| 빗줄기는 가벼워졌지만, 빈 지붕이 비에 젖어 있는 모습만 보일 뿐 마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남아 있는 것은 꿈에 그리던 고독의 추억일 뿐이다. (p.24)


| 진흙과 밀 냄새가 복도로 흘러 들어온다. 호텔도, 마을도, 로드리고 파에스트라와 그에게 살해된 사람들도, 베로나에서의 사랑의 하룻밤, 그 마르지 않는 그러나 너무나도 공허한 추억도, 그 냄새 속에 잠겨 있다. (p.53)


| 그녀는 구역질이 날까 두려워 너무 깊이 숨을 쉬지 않는다. 분명 새벽에 마신 코냑의 마지막 한 모금 탓이다. 끊임없이 억누르지 않으면 안 되는 흐느낌처럼, 그것은 목구멍 밑에서 치밀어 올라온다. (p.97-98)


| 그들은 길 한복판에서 서로 마주 선 채 움직이지 않는다. 이 사건에 결말을 낼 말이 상대에게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 한마디는 누구의 입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피에르는 마리아의 어깨를 붙잡고 그녀를 부른다.

  "마리아." (p.135)


| 마리아는 다시 눈을 감는다. 일이 벌어질 것이다. 30분 안에, 또는 한 시간 안에. 그렇게 되면 세 사람의 애정 관계는 역전될 것이다.

  이번 일만은 확실히 알아두고 싶어진다. 그녀는 자기도 조명을 받을 수 있도록, 베로나에서 어느 날 밤 그녀 자신이 직접 그 관계를 만들어낸 그날 이후 그녀가 그들에게 남겨 준 세상에 자기도 입회할 수 있도록, 두 사람 사이에 진행되는 사태를 보고 싶은 것이다.

  마리아는 자고 있을까? (p.152)


| 쥐디트는 자고 있다. 클레르와 마리아는 각각 다른 밤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피에르의 머리에 베로나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와 아내의 방문을 두드린다. 그는 죽어버린 애정을 되살리고 싶다는, 억누를 수 없는 기분을 느끼고 있다. 마리아의 방에 들어서자 그는 그녀에 대한 자신의 애정에 유감의 뜻을 표한다. 그가 미처 몰랐던 것은 그로 인해 야기된 마리아의 외로움, 오늘 밤 그녀로 인해 야기된 그 자신의 미안함,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이 슬픔이 얼마나 매혹에 찬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마리아."

  그녀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아줘." 그녀가 말한다.

  그녀가 몸에 뿌린 향수는 그녀 자신에 대한 그녀의 절대권,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떠나간 그의 배반, 그녀에 대한 그의 동정심, 이런 것들을 담고 있는, 다시없이 소중한 향수였다. 즉 그녀는 사랑의 종말을 예고하는 향기를 몸에 묻히고 있었던 것이다. (p.168-169)


| "어떡하면 좋지?” 그녀가 묻는다.

  "당신은 내 삶이야." 그가 말한다. "한 여자의 단순한 새로움 같은 걸로 내 마음은 채워지지 않아. 당신 없이는 살아갈 수 없어."

  "우리 이야기는 끝났어." 마리아가 말한다. "피에르, 이젠 끝났어. 이것으로 이야기는 끝이야."

  "아무 말 하지 마."

  “말하지 않을게. 하지만 피에르, 이젠 끝났어." 피에르는 그녀 쪽으로 다가가서 양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싼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는 겁을 내면서 그를 바라보고 있다.

  “언제부터?”

  "방금 깨달았어. 어쩌면 오래전부터 그랬는지도 몰라."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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