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사 (231003~231005)
목련꽃은 오늘 밤 활짝 필 것이다. 그 여자가 항구에서 오는 길에 꺾어 온 것을 빼놓고는. 시간은 이 잊힌 꽃봉오리 위로도 한결같이 흘러가는 것이다.
| 첫 문장: “악보 위쪽에 뭐라고 써 있는지 읽어볼래?” 피아노 선생이 물었다. (p.7)
(23/10/07)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여름밤 열 시 반』을 읽은 후 바로 이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 『모데라토 칸타빌레』를 집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조금 더 좋았다.
결혼한 이후 아이를 낳고 안주인 노릇을 하며 10년 간 판에 박힌 듯한 일상을 살던 안 데바레드는 집과 반대편, 시끌벅적한 부둣가 근처에서 아이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게 하는 작은 일탈을 감행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사랑하기에 사랑하는 이를 죽인 남자를 목격하게 되고, 절대적 사랑을 갈망하게 된다.
라메르가의 저녁 만찬 장면을 담고 있는 7장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주인마님으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으나 어딘가 매우 위태로워 보이는 안 데바레드와, 상상인지 실제인지 모르지만 라메르가의 집 밖에서 배회하며 정원과 바다를 번갈아 바라보는 쇼뱅의 모습이 교차되고 목련꽃이 ‘한 시간 만에 한여름을 겪어낸’ 듯 완전히 시들어버린 모습이 그녀가 갈망하던 사랑이 불가능해졌고, 그 저택에서 앞으로도 판에 박힌 삶을 살며 시들시들해져 갈 것임을 암시하는 듯해서 서글퍼지기도 했다.
‘모데라토 칸타빌레’의 뜻은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라고 한다. 안과 쇼뱅의 만남을 잘 설명하는 듯하다. 그들의 만남은 결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다. 그저 일상에서 흘러가는 속도대로 진행되고, 안의 아이가 연주하는 소나티네가 책 속에서 계속해서 배경음으로 흐른다.
쇼뱅과의 마지막 만남 후 ‘그날의 종막을 고하는 붉은 노을 속’으로 사라진 안 데바레드. 안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까? 아니면 이미 죽은 마음으로 라메르가에 못 박힌 채 멍하게 살아갈까? 그것도 아니면 죽은 여자처럼 자신을 사랑해서 죽일 누군가를 다시 찾아 나설까? 석양의 아름다움보다 석양의 씁쓸함과 고독함을 더 많이 느낀 뒤라스의 소설 두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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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히 드문 일이긴 하지만, 이 도시에서 바람이 그치면 숨이 막힐 것 같은 게 사실입니다. 전 벌써 알아차리고 있었습니다."
안 데바레드는 귀담아듣지 않고 있었다.
“죽은 다음에도 그 여자는 기쁜 듯 미소 짓고 있었어요." 여자가 말했다. (p.59)
| 그 여자는 소나티네에 귀 기울였다. 아이가 빚어내는 음악이 세월의 저 밑바닥에서부터 그녀에게로 오고 있었다. 그걸 들으면서 기절할 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었다. (p.72)
| 그 여자는 이번에도 그것을 알고 있다. 가슴 사이에 꽂은 목련꽃은 완전히 시들어버렸다. 한 시간 만에 한여름을 겪어낸 것이다. 사내는 곧 정원을 지나쳐 더 멀리 갈 것이다. 그가 지나갔다. 안 데바레드는 가슴에 꽂은 꽃을 비틀어대는 끝없는 몸짓을 계속하고 있다. (p.101)
| 안 데바레드의 신음 소리가 다시 흘러나와 더 커졌다. 그녀는 다시 손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는 여자의 행동을 눈으로 좇다가, 결국 고통스럽게 알아차리고, 납덩이처럼 무거운 손을 들어 그 여자 손 위에 포개놓았다. 그들의 손은 너무도 차가워서 오직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소망 속에서만 환각으로 서로 스쳐 갔다. 지금과 같이 소망 속에서 말고는 달리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들의 손은 죽음의 포즈로 굳어진 채 그렇게 머물러 있었다. 그러자 안 데바레드의 신음 소리가 그쳤다.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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