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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youlovearchive Oct 13. 2023

임선우, 유령의 마음으로

민음사 (230930~231008)



그저 마음을 살리려는 데 전념하는 이야기
(황예인(문학평론가) | 작품 해설, p.278)


(23/10/09) ‘나’조차 외면했던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이야기, 반짝이고 아름다운 빛을 내기 위해 떠나는 이야기, 물빛처럼 반짝이며 흘러가는 이야기, 믿음으로부터 도망쳐 각자 자신을 구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야기,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다정함을 말하는 이야기, 나를 지키기 위해 남을 해치는 일을 용납할 수 없는 이야기, 죽일 만큼 증오했던 존재와도 하나의 풍경이 되어 버리는 이야기, 그리고 지켜 내고 싶은 것이 있는 마음을 지닌 존재에게 힘을 북돋아주는 이야기. 여덟 편의 이야기는 모두 ‘각자의 마음’이 가득 담긴 이야기다.


| 그리고 남은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는 이런 마음이 해낼 수 있고 또 해내야 하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을 보여 준다. 나쁜 세계에서 자신마저 나빠지지 않도록 지켜내는 일 말이다. (…) 하지만 한 사람이 확실히 미칠 수 있는 힘의 범위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세계라고 할 때 결코 실패해서는 안 될 위대한 과업이라 할 수 있다. 대체 나조차 좋아할 수 없는 나 자신으로 살면서 이 세계에 어떤 대단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단 말인가? (작품 해설, p.273-274)


  ‘갑자기 모든 것이 그리워질 것만 같아 그것들을 마지막으로 떠올려 보기 위해서 눈을 감는’(p.259) 장면으로 끝나는 이 소설집이 정말 좋았다. ‘나쁜 세계에서 자신마저 나빠지지 않도록 지켜내는 일’(작품 해설, p.273). 나라는 세계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항상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약속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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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마음으로」 *


| 잠시 뒤에 유령이 나를 끌어안았는데, 그것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 보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이해였다. 여기까지인 것 같아. 안긴 채로 내가 말했을 때 유령은 그래, 라고 대답해 주었다.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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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나지 않아요」 *


| 사람들은 역시 겁이 많다. 어쩌면 해파리들에게 신, 좀비, 세계 멸망 같은 의도 따위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저 최선을 다해 반짝이고 있을 뿐일지도. 문제는 해파리가 아니라 사람들이다. 누구에게나 어둠은 무서우니까, 자신의 어둠조차 견딜 수 없는 이들이 빛에 다가서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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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물빛처럼」 *


| 어느 순간에는 푸르른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웠는데 산을 쳐다봤을 때 산은 울고 있지 않았다. 산은 이제 울지 않고도 푸르른 냄새가 나는구나. 그 냄새를 맡고 있으니 수로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흐르는 물을 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것 같은 기분. 산과 나는 이제 슬픈 마음 없이도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었다.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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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밤에 우리는」


|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우리는 함께 무언가를 지나가고 있었다. 더디지만 분명한 방향으로, 모난 곳 없이 부드럽게 부풀어 오르는 시간을 지나, 우리는 처음으로 우리가 그리는 목적지에 도달하고 있었다.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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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서 자야지」


| 그렇게 잠들려는 순간 누군가 귓가에 대고 집에 가서 자야지,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두리번거렸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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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면하는 남자」


| 왜 하필이면 동면을 하신다는 거예요?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진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에게는 하룻밤보다 많은 밤들이 필요합니다. 남자는 의외로 차분하게 대답했다.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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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는 아니지만」


| 복수가 끝나면 나는 알래스카로 떠날 생각이다. 신호등보다 빙하가 많은 곳. 영영 녹지 않는다는 만년설이 반짝이는 곳. 그곳에서 남은 시간을 인간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닌 얼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얼음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무엇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인간에서 고양이도 되었으니 고양이에서 얼음이 되지 못할 것은 무엇이겠어······. (p.21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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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연장전, 라스트 팡」 *


| 쏟아지는 빛 속에 선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힘껏 박수를 쳤다. 그러자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그리워질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수많은 얼굴을, 주말 아침의 영화를,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던 야구공을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그것들을 마지막으로 떠올려 보기 위해서 나는 눈을 감았다.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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