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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youlovearchive Oct 18. 2023

은유,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읻다 서포터즈 넘나리 1기 (231004~231016)



(23/10/17) 일곱 명의 한국 시 번역가들의 이야기를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니! 이 책은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감사하게도 읻다 서포터즈로 도서를 제공받았다.


  문학 공부를 하며 누가 뭐가 제일 어렵냐 물으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시라고 대답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소설을 제일 좋아함에도 소설 수업은 거의 듣지 않았고, 오히려 시 수업을 많이 들었다. 어려워서 무의식 중에 더 알고 싶고, 더 잘 읽고 싶었던 걸지도.


  가장 귀중한 경험 중 하나는 시 번역을 직접 해보고 그렇게 번역한 이유를 설명하는 과제를 해 본 것이다. 그전까지는 그렇게 많은 번역본들을 읽었음에도 번역에 관해서 깊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뚝딱하면 번역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시 번역을 직접 해보면서 모든 번역이 그렇겠지만 특히 문학 번역은 단순히 언어의 교체가 아니라 ‘창작의 영역’이라는 걸 온몸으로 체감했다. 그리고 정답이 없기 때문에 더 막연하고 불안하고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경험 이후로 모든 번역가들을 마음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 시 번역가들을 인터뷰한 이 산문집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역시나 여러 번역가들이 ‘번역은 창조 행위’, ‘번역은 가장 깊게 읽고, 해석하면서 창작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점 중 하나는 번역을 통해 ‘다른 사람’이 되어볼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내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걸 최소화’하며 ‘내가 너무 드러나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번역은 또 다른 창작이지만, 그럼에도 원문이 존재하기에 원문을 존중하고 해치지 않는 선에서 번역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원 작가와 번역가의 소통이 정말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와 번역가가 제대로 번역본을 출간하기 위해선 ‘한 몸’이 되어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시를 읽고 이해하는 것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시 번역에도 정답이 없다. 그러한 불확실성을 사랑하고 즐기며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이 번역가들이 아름답고 또 사랑스럽다. ‘문학 번역이라는 아름다운 일’에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기를 바라며 이 책을 적극 권하고 싶다.


+ 일곱 명의 인터뷰는 모두 일곱 개의 서점에서 진행되었는데 내가 가본 곳은 딱 두 군데였다. (서점 리스본, 위트 앤 시니컬) 하지만 모두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곳들이라 이 산문집을 계기로 인터뷰 장소였던 서점들도 차근차근 한 곳씩 방문해 보기로 다짐했다. 책을 읽다 보면 책뿐만 아니라 사람, 공간, 경험 등 다양한 것들이 함께 찾아온다는 점이 참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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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독해와 번역은 정답이 없다. 이러한 혼돈과 불확실성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자가 번역의 세계에서 살아남는다. (은유, p.9)


| 어차피 제가 아무리 원작자의 목소리를 가져본다고 해도 결국에는 제 목소리가 나온다는 걸 알아요. 그렇지만 어쨌든 다른 사람이 되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요. (호영, p.46)


| 저한테는 번역이란 당연히 창조 행위거든요. (...) 사람들이 저한테 자꾸 물어봐요. 왜 자기 글은 안 쓰냐고. 저한텐 그 질문의 의미가 '번역은 쉽잖아’ ‘번역은 창작이 아니잖아'라는 말로 들리거든요. 그런데 몇몇 작가들의 창작론을 들여다보면 '조용한 곳에서 자기 안의 목소리를 듣는다, 들리는 걸 쓴다'라고 말하죠. 그게 번역하고 똑같아요. (안톤 허, p.81)


| 시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 그게 시의 목적이잖아요? 각 언어의 다층적 의미를 허용해요. 그렇지만 제 기준을 없앨 수는 없고, 같은 감정이라도 다르게 표현을 하죠. (소제, p.109)


| 의미가 아니고 이미지인 것 같아요. 이미지와 리듬을 살릴 수 있으면 최선이라고 생각하면서 번역해요. (승미, p.156)


| 풀릴 수 없는 번역은 없는 것 같아요. 무슨 언어든, 일치하는 단어나 표현이 있는데 아직 못 찾은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저는 그런 믿음이 있어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알차나, p.185)


| 번역은 가장 깊게 읽고, 해석하면서 동시에 창작하는 일이죠. (새벽, p.214)


| 시 번역은 결과물이 시여야 하죠. 결과물이 아름답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오히려 원본보다 아름다워도 돼요. (박술, p.236-237)


(*읻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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