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림원 (231108~231108)
새벽하늘에 별이 한두 개 빛나고 있었다. 언젠가 저 별을 올려다보며 달리다 넘어졌던 일을 생각했다. 저 별보다 훨씬 먼 어딘가로 가는 거겠지. 그곳은 지금 어떨까. 외계인의 꿈에서 보았던 것처럼 아름다울까.
(23/11/09) 최근 이유리 작가님의 책을 처음 접한 후 이유리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이란 책은 모두 찾아 읽고 있다. 그런 와중에 작가님의 글을 별처럼 반짝이는 듯한 일러스트와 함께 담아낸 책 『ILLUST LIM: 달리는 무릎』이 나왔다는 소식에 빠르게 서평단을 신청했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글과 일러스트의 황홀한 조합이라니! 글은 말할 것도 없이 좋았고, 아름다운 글과 함께 페이지를 가득 채우며 반짝반짝 빛나는 일러스트 덕분에 눈이 즐거운 독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자신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데 도움을 줄 인간을 찾아 인간의 시간으로 사십억 년이 넘도록 기다려 온 외계인. 예기치 않은 사고로 자신의 무릎으로 들어온 외계인을 위해 잠 못 드는 새벽이면 불안감을 떨쳐내려 내달리던 길을 목적의식을 갖고 달리게 된 희수.
어쩌면 다시 돌아간 외계인의 고향은 과거에 내린 올바른 결정으로 바꿀 것 하나 없이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외계인이 그토록 오랜 시간을 기다리며 바라왔던 것을 향해 떠나며 희수도 ‘무언가를 찾아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다시 달릴 준비가 된 듯하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맞든 아니든 일단 가보는 것.
외계인을 돕기 위해 달리던 것은 결국 희수 자신이 힘을 내기 위해서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천천히 조금씩 가다가 조금씩 속도를 붙이며 어느 순간 정신없이 빠르게 달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무릎 안의 외계인을 떠나보냈지만 희수의 몸에 여전히 남아 있는 운동 에너지는 희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에너지가 다 모인 후에도 외계인이 좀 더 희수의 곁에 머물렀음을 암시하는 대목이 뭉클했다.
환한 빛을 내며 무릎을 빠져나가 새벽하늘을 가로질러 먼 우주의 어느 별로 가고 있을 외계인을 생각하는 희수. 그런 희수에게도 꿈에서 봤던 아름다운 우주 도시처럼 찾고 싶은 무언가가 꼭 찾아오기를. 빛나는 별 한 조각의 추억을 기쁘게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열림원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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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너를 기다렸어
목소리가 우렁우렁 울렸다.
기다렸어. 너희의 시간으로 사십억 년이 넘도록 여기에서 단지 너만을 기다렸어. (p.14)
| 그런데 이제 네 얘기를 들으니 알겠다. 나는 돌아가서 내 눈으로 보겠어. 시스템이 옳았는지 아닌지를. 그리고 옳지 않았다면, 싸우겠다. (p.34)
| 잠을 자면 안 될 것 같은데,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어서. 침대에 누워 올려다보는 천장이 그대로 불안이 되어 내 얼굴로 쏟아져 내리는데 그걸 피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면 나는 집을 박차고 나가 길 끝에 해답이 놓여 있기라도 할 것처럼 내달리곤 했다. (p.38)
| 달린다는 것은 뭐랄까, 몇 초 전의 나를 끊임없이 뒤에 두고 오는 일 같았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그걸 반복해나가면 결국 어느 순간 과거의 나와 전혀 다른 내가 되어 발 앞의 공간으로 내뻗어질 수 있는 거였다. (p.49)
| 선생이 되면 돌아와서 자랑하겠다고 했었지.
그때까지는 나도 찾아두고 싶다, 나는 땅에 발을 구르며 생각했다. 뭘 찾고 싶은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외계인이 돌아온다는 건 싸움에서 이겼다는 뜻일 것이다. 그걸 알리러 기나긴 길을 달려온 그에게 난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소리나 하고 있을 순 없으니까. 실패하든 성공하든 뭐가 됐든 좋으니 일단 가본 다음에, 그게 맞았는지 아니었는지 이야기해야지. 그땐 더 비싼 술을 마셔야지, 네 캔에 만 원짜리 말고.
나는 밤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다 돌아섰다.
집 반대쪽으로 천천히, 곧이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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