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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youlovearchive Dec 04. 2023

아르튀르 랭보, 랭보 서한집

읻다 서포터즈 넘나리 1기 (231201~231203)



*별점: 4.0

*한줄평: 불처럼 창작하고, 사랑하고, 미지에 도달한 투시자 랭보

*키워드: 편지 | 시 | 시인 | 낭만주의 | 상징주의 | 투시자 | 인식 | 감각 | 착란 | 미지

*추천: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인 랭보의 편지에 담긴 그의 시에 대한 열망과 생각이 궁금한 사람


모든 감각의 착란을 통해 미지에 도달해야 합니다. 고통은 어마어마하지만, 강해져야 하고, 시인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 1871년 5월 13일, 샤를빌, 조르주 이장바르에게 보낸 편지

자유와 미지에의 욕구가 현실과 타인을 마주하며 형상을 취하는 순간들이 이 편지들에 담겨 있다.
/ 옮긴이의 말


(23/12/04) 올해 민음북클럽 잡동산이에 실린 랭보의 시 「지옥에서 보낸 한철 — 서시」를 통해 그의 작품을 처음 읽어봤다. 파격적인 시에 놀라 어떤 시인인지 궁금해 찾아봤는데 삶이 굉장히 파란만장했고, 의외로 시인으로 시를 쓴 기간이 길지 않아 남긴 작품도 『지옥에서 보낸 한철 Une saison en enfer』과 『일뤼미나시옹 Les Illuminations』 둘 뿐이라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던 기억이 난다. 랭보는 나에게 ‘굉장히 어린 나이에 시에 재능을 보였으나 절필한 후 세상을 떠돌다가 암으로 젊은 나이에 사망한 불운한 천재 시인’이라는 인상으로 남았다. 읻다 넘나리 마지막 선택 도서로 서한집 여러 권 중 『랭보 서한집』을 고른 것은 시에 관한 그의 생각이나 당대에는 파격적이었던 결혼한 시인 폴 베를렌과의 사랑이 조금 더 알고 싶어 졌기 때문이었다.


 『랭보 서한집』은 ‘시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힌 열다섯 시절부터 『지옥에서 보낸 한철』과 『일뤼미나시옹』에 담긴 시를 쓴 스물한 살 무렵까지 랭보의 창작 시기로부터 전해지는 모든 서한과 절필 이후, 평범한 개인으로 돌아간 랭보의 삶을 유추해 볼 수 있는 편지 몇 편을 더해’ (출판사 소개) 묶어낸 책으로, 시에 대한 열정으로 넘쳐흐르는 생명력이 돋보이는 창작 시기의 편지와, 절필 이후 사업 이야기나 근황, 안부 이야기가 담긴 편지부터 죽기 직전 사그라드는 생명력을 보여주는 듯한 편지가 담겨 있어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뒤에 실린 편지 해설과 옮긴이의 말, 그리고 랭보 연보에서 랭보의 삶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이나 주변의 상황이나 사건, 문단 경향, 시대상 등을 살펴볼 수 있어 더욱 도움이 되었다. 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나 그림, 편지 원본 이미지 등도 매우 흥미로웠다.


 『랭보 서한집』에는 시가 12편 실려 있는데, 그중 6편이 정식 발표되지 않은 시라고 한다. 편지를 찾지 못했다면 영영 공개되지 않았을 미발표 시가 담긴 소중한 기록이다. 서한집에 실린 시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시는 「오필리아」였는데, 존 에버렛 밀레이의 그림 ‘오필리아’가 떠올라 찾아보니 이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쓴 시라고 한다.


 랭보가 폴 베를렌과 주고받았을 편지의 대부분은 남아 있지 않고, 이 서한집에 실린 편지는 베를렌이 랭보에게 총을 쏴 두 사람이 조사받을 때 압수된 소지품에 들어 있던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편지에는 랭보가 베를렌에게 제발 돌아와 달라는 말, 진심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 심지어는 그의 아내가 돌아오지 않을 거란 악담에 그들이 다시 함께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모든 자유를 잃는 것 같은 끔찍한 지긋지긋함에 회한을 느낄 것이라 퍼붓는 저주, 그리고 다시 사랑한다고 돌아와 달라는 말까지 담겨 있다. 엄청나게 솔직한 편지여서 절필 후의 아주 담백한 문체와는 아주 대조적이었고, 그게 매우 흥미로웠다.


 랭보는 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전적인 인식’이 필요하며, 시인은 ‘모든 감각의 착란을 통해 미지에 도달’해 투시자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시대의 차이가 있어 그 당시와 지금의 십 대가 좀 다를 수는 있겠지만, 랭보는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확립할 수 있었을까? 특히 ‘투시자의 편지’라고 알려진 폴 드므니에게 보낸 1871년 5월 15일의 편지는 읽는 내내 감탄만 나왔다.


 ‘자유로운 자유’를 갈망하고, 시인이 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투시자’로 만들고자 했던 사람. 이른 나이에 절필하고 세상을 방랑하며, 그는 원하던 ‘자유로운 자유’를 찾을 수 있었을까? 이 서한집을 읽고 나니 그의 삶이 불운하지만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읻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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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애하는 스승님께,

  우리는 사랑의 계절에 있고, 저는 곧 열일곱 살이 됩니다. 흔히 말하듯이 희망과 몽상의 나이이지요, — 그리하여 여기 저는, 뮤즈의 손가락이 닿은 아이로서, — 진부하다면 죄송합니다 — 제 신실한 믿음, 저의 희망, 저의 감각, 시인들의 것인 이 모든 것들을 말하고자 합니다. — 저는 그걸 봄의 것들이라고 부릅니다.

/ 1870년 5월 24일, 샤를빌, 테오도르 드 방빌에게 보낸 편지


| 제 말은, 투시자여야 하며, 투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시인은 모든 감각의 길고, 거대하며, 조리 있는 착란을 통해 투시자가 됩니다. 온갖 형식의 사랑, 고통, 광기, 그는 자기 자신을 탐색하고, 자기 안에서 온갖 독을 길어내어, 거기서 정수만을 간직합니다. 모든 믿음을, 모든 초인적 힘을 동원해야 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문이지요. 거기에서 그는 누구보다도 위대한 환자, 위대한 범죄자, 위대한 저주받은 자가, — 또한 지고의 학자가 됩니다! — 그는 미지에 도달하니까요! (p.68)

/ 1871년 5월 15일, 샤를빌, 폴 드므니에게 보낸 편지


| 이러한 시인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여자의 끝없는 예속 상태가 분쇄될 때, 남자, 여태까지 가증스러웠던 그가 여자를 제자리로 돌려보내고, 여자가 스스로를 위해 스스로에 의해 살게 될 때 여자 역시, 시인이 될 것입니다! 여자는 미지를 발견할 것입니다! 그 사고들의 세계는 우리들의 것과 다를까요? — 여자는 이상한 것들, 불가사의한 것들, 역겨운 것들, 감미로운 것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취하고, 그것들을 이해할 것입니다. (p.76)

/ 1871년 5월 15일, 샤를빌, 폴 드므니에게 보낸 편지


| 유일하게 진정한 말은 이거야. 돌아와, 나는 너와 함께 있고 싶어, 너를 사랑해. 이 말을 귀담아 듣는다면, 용기와 진정한 마음을 보여줄 테지.

  아니라면, 널 딱하게 여길 거야. 하지만 나는 너를 사랑해, 네게 입맞춤을 보내고, 우리는 다시 볼 거야. (p.126)

/ 1873년 7월 5일, 런던, 폴 베를렌에게 보낸 편지


| 밤낮으로 갖가지 이동 수단들을 고려해본다. 그게 진짜 고문이야! 이런저런 것을 하고 싶고, 여기 또 저기를 가고 싶고, 보고 싶고, 살고 싶고, 떠나고 싶은데, 불가능해. 오랫동안 불가능할 테지, 영영 불가능한 게 아니라면 말이지만! (p.161-162)

/ 1891년 7월 15일, 마르세유, 누이동생 이자벨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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