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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youlovearchive Dec 15. 2023

임유영, 오믈렛

문학동네시인선 203 (231211~231213)



*별점: 3.5

*한줄평: 이상하지만 부드러운, 오믈렛 같은 마음

*키워드: 산 | 돌 | 밤 | 마음 | 호수 | 바다 | 천사 | 꿈 | 개 | 죽음 | 버섯

*추천: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마음을 아는 사람


시인의 말

  나는 붓을 들어 이 이야기를 종이에 옮겨 적었고,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벽에 붙여두었다. 후에 그것을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 있어 적당한 값을 받고 팔았다.

2023년 10월
임유영


(23/12/13) 우필사 이벤트로 받은 문학동네시인선 203 임유영 시인의 첫 시집 『오믈렛』을 읽었다.


 제목처럼 몽글몽글 부드럽고 따뜻한 오믈렛 같은 시들이 가득할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의 시집이었다. 죽은 사람, 죽고 싶은 사람, 죽지 못하고 다시 깨어나 살아가는 사람 등 죽음 이야기가 꽤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시체로 발견될 때를 대비해 머리를 하나로 묶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는 마음. (「방랑자」 (p.69) 부분) 죽음을 들키고 싶지 않으면서도 누군가는 나의 죽음을 알아차릴 것이란 것을 알고 있는 마음과 죽은 자의 얼굴을 발견하게 될 이가 누구일지를 궁금해하는 마음. 그러면서도 그 끔찍한 광경을 만나는 이가 아이는 아니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 (「포노토그래프」 (p.74) 부분) 해가 뜨지 않는 아침을 찾으러 왔지만 호숫가를 따라 걸으며 깨끗하고 예쁜 조약돌을 찾아 주머니에 넣는 마음. (「빗금」 (p.73) 부분)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마음을 다루면서도 이 시집은 그렇게 무겁거나 침울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속 보이지 않게 두어도 될까. 따뜻한 거 먹이고 싶다.’(「만사형통」 (p.55) 부분)라고 말하며 보이지 않는 죽음에 대한 불안함을 따뜻한 음식을 먹여 속을 뜨끈하게 만들어 마음을 달래주는 듯하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읽어 내려가는 마음이 힘들기만 하진 않았다. 오히려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시인과의 미니 인터뷰에서 시인은 제목을 설명하며 오믈렛이 ‘유연하고 부드러운 음식이면서 단순해서 무섭기도 한 메뉴인 한편, 편안하고 만만한 음식’이라고 말한다. 이 시집도 그러한 것 같다. 단순하거나 만만하다는 뜻은 아니고, 유연하고 부드럽고, 때론 무섭지만 어딘가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태어난 이상 우리는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 수없이 많이 잠들고 깨어남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해설 ‘이상한 마음’을 따뜻하게 다스리는 ‘완벽한 방법’에서 문학평론가 조연정은 임유영의 시에서 ‘깨어남과 태어남은 결코 기쁘고 충만한 일이 아니고, 갑작스러운 일이기도 하며, 실패한 일 혹은 잘못된 일처럼 그려지기도 한다’(p.108)고 말한다. 우리 인생이 늘 기쁘고 충만하고 성공적이기만 하진 않다. 때로는 아침에 눈 뜨기 두려울 정도로 괴롭고 힘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 이 시집은 ‘그런 순간도 있지만, 그래도 따뜻한 오믈렛을 먹고 기운내보자’고 말해줄 것만 같다.


(*문학동네 우필사 특별반 이벤트 당첨자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


| 어린이는 창가의 책상 앞에 홀로 앉아 있었다. 새도 혼자였다. 둘은 서로의 음성을 들었다. 안녕? 어린이가 물었다. 새는 새답게 고개를 앞뒤로 갸웃거리며 짹짹, 소리를 냈다. 어린이는 새의 행동을 오해했다. 어린이는 새가 없는 다리 한쪽이 그리워 운다고 생각해보았다. 헤어진 어미, 아비, 형제, 자매 새들이 그리워 운다고도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새에게는 인간의 생각이 없다. 새는 새의 생각을 할 뿐이다.

/ 「생일 기분」 (p.38)


|  손잡아. 그냥 한번 꽉 잡아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속 보이지 않게 두어도 될까. 따뜻한 거 먹이고 싶다.

/ 「만사형통」 (p.55)


| 샴페인 잔을 들고 발코니에 나가니 호숫가의 야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재스민 향기와 잔디 깎은 냄새, 물비린내가 섞인 바람이 불어왔다. 검은 호수 위로 잔물결이 부서진 샹들리에처럼 반짝였다. 완벽한 밤이었다. 발코니 난간에 올라가 그대로 떨어지고픈 강렬한 충동이 일었다. 충동을 억누르느라 애쓰던 중 내가 취했음을 깨달았다. 옷깃을 여미고, 글라스를 테이블에 올려두고, 종업원들에게 인사를 건넨 뒤 방으로 돌아왔다. 방문을 열자 나의 갈색 트렁크와 푸른 원피스, 잘 닦아둔 검은 구두가 그대로 잘 놓여 있었다. 창밖에서는 아직도 호수의 물결이 반짝이고 있었기에 나는 책상 위의 펜을 집어 글을 쓸 뻔했다. “나는 매번 무거운 문을 밀면서 왔습니다······” 지금 내 앞에는 빈 종이가 한 장 있을 따름이다.

/ 「병정들」 (p.71)


| 그토록 조용하던 밤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쏟아내다니. 그래. 나는 해가 뜨지 않는 아침을 찾으려 이곳에 왔지. 숱한, 헛된 밤을 따라온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웃는 소리를 듣는다. 양산을 쓴 숙녀들의 속삭임도. 호숫가를 따라 천천히 걷는다. 깨끗하고 예쁜 조약돌을 찾아 주머니에 넣는다.

/ 「빗금」 (p.73)


———······———······———


*좋았던 시


1부 | 살아 계신 분을 묻어드릴 수도 없었고

 「부드러운 마음」 (p.32-34)

 「호수관리자들」

 「생일 기분」


2부 | 가서 돌 주우면 재미있을

 「꿈 이야기」

 「유형성숙」

 「만사형통」


3부 | 한데 섞인 흰자와 노른자의 중립적인 맛

 「방랑자」  

 「오믈렛」

 「병정들」

 「빗금」

 「포노토그래프」


4부 | 어디 가는 어린애와 어디 갔다 오는 개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

 「움직이지 않고 달아나기 멈추지 않고 그 자리에 있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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