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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youlovearchive Dec 20. 2023

정재율, 온다는 믿음

현대문학핀시리즈 시인선 045 (231219~231219)



*별점: 4.5

*한줄평: 각자의 종착역에 도달할 날이 온다는 믿음

*키워드: 사랑 | 영원 | 신 | 열차 | 우주 | 삶 | 죽음 | 종착역 | 마음 | 나무 | 꿈 | 영혼 | 믿음

*추천: 우주와 숲을 유영하는 듯한 시들이 궁금한 사람


산 자도 죽은 자도 모두 다 함께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온다는 믿음 1」 (p.24)


(23/12/20) 정재율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를 가지고 있는데 어쩌다 보니 두 번째 시집인 『온다는 믿음』을 먼저 읽게 되었다.


 온다는 것. 어떤 사람이나 물건이 올 수도, 어떤 때나 시점이 올 수도, 새로운 세상이 올 수도, 어떤 사건이나 현상이 올 수도, 차례나 기회가 올 수도, 어떤 느낌이나 생각 혹은 예감이 올 수도 있다. 어떤 것이 되든, ‘온다는 믿음’을 지닌다는 건 마음이 충만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집을 읽으면서 ‘언젠가 종착역에 도달할 때가 온다는 믿음’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종착역이라는 건 여러 가지가 될 수 있겠지만 우리 모두의 최종 종착역은 아무래도 ‘죽음’이니까, 자연스럽게 죽음에 관해 떠올리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마음속에 짐 한 덩어리씩을 넣고 다니는’ 인간들(「모리키 씨는 어디로 갔을까)과, ‘모리키 씨가 죽은 후 그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그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떠올리며 창밖의 별들을 바라보는’(「그래도 열차는 멈추지 않고」) 화자. ‘나무 뒤에는 더 큰 나무들이 있고, 죽음 뒤에는 더 많은 죽음들이’(「숲 2—나무인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정월 대보름날 오랜만에 만난 이와 오래도록 시간을 보내고 집에 갈 시간이 되었는데, 마당 밖에서부터는 배웅하는 이를 뒤로 하고 아주 먼 길을 혼자 가야만 하며(「정월 대보름」),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종착역에 도착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리키 씨와 마냐나를 외치며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마냐나」) ‘나’의 마음.


 모리키 씨를 중심으로 한 시들이 많아서 모리키 씨를 배웅하는 동시에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한 편의 이야기를 읽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마지막 시가 ‘나’와 모리키 씨가 종착역으로 함께 향하며 마냐나를 외치며 아침을 기다리는 시 「마냐나」인 것도 더없이 좋았다.


 사진과 시를 연결 지어 이야기하는 시인의 에세이 「필름 카메라—사진」도 좋았다.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흐름이나 상황이 보이는 소설이나 극작품과 다르게 시를 읽으면 어느 순간, 어느 감정의 파편만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어렵다고 느껴 잘 찾아 읽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상상의 나래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기도 했다. 그래서 시인의 ‘어느 한 순간에 관해 쓰지만 독자들은 페이지 너머에 있는 장면을 상상하고 더 먼 세계까지도 갈 수 있다’는 말이 참 와닿았다.


 이 시집을 읽은, 읽을 사람들이 어떤 ‘온다는 믿음’을 떠올리게 될지 궁금해지는 시집이었다. 가볍게 집어 들었지만 마음에 오래 남을 시집을 만나 기쁘다.


———······———······———


| 그의 좌석 위로 먼지들이 떠돌아다녔다 창밖의 별들이 우주를 유영하는 것처럼 이곳에는 떠돌아다니는 게 많아 보였다 이젠 모리키 씨도 그들 중 하나겠지 그가 신을 믿는 것처럼 나는 그의 선택을 믿었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 「그래도 열차는 멈추지 않고」 (p.20)


| 사진은 포착된 순간을 프레임 안에 담아내지만 사진을 보는 우리는 프레임 바깥의 상황까지도 떠올릴 수 있었다. 시 또한 어느 한 순간에 관해 쓰지만 독자들은 페이지 너머에 있는 장면을 상상하고 더 먼 세계까지도 갈 수 있었다.

/ 에세이: 「필름 카메라—사진」 (p.9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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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시


1부 | 넓고 큰 창을 손바닥으로 쓸어보면 어둠이 흩어졌다

 「해변에서」

 「객실」

 「모리키 씨는 어디로 갔을까」

 「그래도 열차는 멈추지 않고」

 「온다는 믿음 1」

 「온다는 믿음 2」

 「컴컴한 것과 캄캄한 것」

 「화가의 일」

 「저수지는 깊고 고요해」


2부 | 여전히 그의 머리 위로 우주를 여행하는 자들이 있었다

 「숲 1」

 「깨진 백자」

 「숲 2—나무인간」

 「정월 대보름」

 「영원성」

 「마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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