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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youlovearchive Dec 20. 2023

루리, 긴긴밤

문학동네 (e-book, 231218~231218)



*별점: 4.0

*한줄평: 서로에게 기대어 수없는 기적과 사랑으로 만들어 가는 우리의 삶

*키워드: 사랑 | 연대 | 의지 | 삶 | 죽음 | 세상 | 지평선 | 여정 | 우리 | 기적

*추천: 전혀 다른 존재들의 사랑과 연대를 담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저 바닷물 속으로 곧 들어갈 것을,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을,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 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 첫 문장: 나에게는 이름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23/12/19)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을 받은 루리 작가의 그림책 『긴긴밤』을 읽었다.


 그림책을 읽는 건 아주 오랜만인 것 같다. 어린이문학상 수상작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충분히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이야기와 잘 어우러지는 그림의 색채가 정말 좋았다.


 생각했던 것만큼 엄청 슬프진 않았다. 그럼에도 ‘나’와 노든이 오래도록 서로의 눈을 마주 본 후 이별하는 장면, 힘들게 올라간 절벽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내’가 노든과 노든에게 들었던 수많은 이야기 속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장면, 그리고 두려움을 이겨 내고 모험을 떠나 다시 수많은 긴긴밤을 기약하는 ‘나’의 모습을 그리는 장면에서는 눈가가 촉촉해졌다.


 나만의 것이 아닌 나의 삶. 많은 이들의 긴긴밤과, 그리고 수없는 기적과 사랑으로 우리는 성장하고, 서로에게 기대고, 배려하고 연대하는 법을 배우고, 다시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 간다.


 어쩌면 ‘긴긴밤’ 자체가 인생일 지도 모른다. 고통과 슬픔, 두려움이 찾아오는 밤에는 다시 빛이 들 아침까지 잠을 이루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앙가부처럼 기꺼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내 곁에 있어 줄 이가 하나라도 있다면, 혹은 노든처럼 악몽을 꾸지 않도록 오래오래 이야기를 들려줄 이가 하나라도 있다면 ‘긴긴밤’이 그렇게 무섭지만은 않을 것이다.


 결국 사랑이 사람을 살아가게 만든다는 이야기는 어떤 말로 변주되더라도 나에게 큰 감동과 울림을 준다. 홀로서기를 하게 된 ‘내’가 바다에서 어떤 모험을 하게 될지, 얼마나 많은 긴긴밤을 보내게 될지 모르지만, 언젠가 결국은 다시 사랑할 이를 만나게 될 거라는 걸, 그리고 사랑했던 이들과 재회하게 될 거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


| “하지만 너에게는 궁금한 것들이 있잖아. 네 눈을 보면 알아. 지금 가지 않으면 영영 못 가. 직접 가서 그 답을 찾아내지 않으면 영영 모를 거야. 더 넓은 세상으로 가. 네가 떠나는 건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괜찮을 거야. 우리가 너를 만나서 다행이었던 것처럼, 바깥세상에 있을 또 다른 누군가도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여기게 될 거야.”


| 노든은 목소리만으로 치쿠가 배가 고픈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게 되었고, 발소리만으로 치쿠가 더 빨리 걷고 싶어 하는지 쉬고 싶어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라고 불리는 것이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 “그치만 나한테는 노든밖에 없단 말이에요.”

  “나도 그래.”

  눈을 떨구고 있던 노든이 대답했다.

  그때 노든의 대답이 얼마나 기적적인 것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우리가 서로밖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때는 몰랐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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