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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youlovearchive Dec 18. 2023

김성중, 이슬라

현대문학핀시리즈 소설선 009 (231215~231215)



*별점: 4.5

*한줄평: 어쩌면 죽음이 있기에 아름다운 삶

*키워드: 삶 | 죽음 | 시간 | 영원 | 광기 | 공포 | 고통 | 절망 | 권태 | 사랑

*추천: 죽음이 없는 삶을 꿈꿔본 적이 있는 사람


‘각설탕처럼 네 몸에 녹아들어가면 어떨까. 내가 누군지 알게 되면 너는 나에게 사랑 대신 죽음을 원하게 될까?’ (p.129)


| 첫 문장: 내일이면 팔십사 세가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백팔십사 세가 되는 것이다. 나는 백 년간 열다섯이었으므로. (p.9)


(23/12/17) 최근 읽은 소설집 『겨울 간식집』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김성중 작가님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져서 현대문학 핀시리즈 소설선 9 『이슬라』를 읽어보게 되었다.


 올해 읽은 책들을 돌아보니 ‘삶과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이 참 많았던 것 같다. 우리의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니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일까.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도 삶과 죽음인데, 독특하게도 이 소설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고 또 아무도 태어나지 않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세상에서 열다섯 살로 백 년의 세월을 보낸 후 다시 시간이 흐르게 되어 곧 84세가 되고 죽음을 앞둔 ‘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죽음이 없는 삶. 어찌 보면 굉장히 모순적인 말이다. 죽음이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삶을 얻으려면 죽음이 필요했던’ 열다섯의 ‘나’에게 영생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영원한 건 결국 익사하게 되어 있다’는, ‘오직 유한한 인간만이 무한에 대해 상상할 수 있다’는 ‘나’의 말에 여운이 남아 문장들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게 되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세상의 생명들에게 죽음을 돌려주었고, ‘나’의 죽음의 순간에 찾아와 사랑한다고 이별의 인사를 건네는 이슬라. 각자 ‘자기만의 고유한 죽음’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죽어가는 모든 자들 역시 ‘고립되었다’는 뜻을 품고 있는 이슬라라고 할 수 있다는 말 또한 ‘모두가 각자의 고유한 죽음을 누리는 점에서 이슬라에게 인간은 신처럼 보였다’는 문장과 교차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말은 많은 문학작품에서도 하는 이야기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유독 마음 깊이 다가왔다. ‘나’에 대한 이슬라의 사랑은 인간에 대한, 그리고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되었다기보다는 ‘나’라는 고유한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가 영생 대신 택한 죽음이 있는 삶. 어릴 적 맛본 설탕과자처럼 달콤한 기쁨과 달콤한 슬픔의 맛. 그는 절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알고 있으므로.


———······———······———


| 하지만 이 놀라운 사건 역시 잊힐 날이 올 것이다. 백 년의 인간들이 전부 죽고 그 위로 두꺼운 시간의 퇴적층이 쌓이면 모든 것이 망각의 늪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한 세기 정도야 세월의 원근법을 당해낼 수 없고 백 년의 인간들 모두 소실점 너머 사라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슬프면서 안도감이 든다. 만물이 소멸의 질서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은 얼마나 자비로운 일인지. (p.18)


| “네 몸에서 빼낸 가시들이 도로 자라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다 없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야. 네 마음이 슬픔에 삼켜지지 않도록 조심해라. 실뿌리가 단단한 땅을 으스러뜨리는 것처럼 언제든 너를 파괴할 가시가 자라날 수 있으니까. 슬픔을 좋아하는 것은 나쁜 버릇이란다.” (p.58)


| 무한히 감정을 증폭시키는 폭도들도, 영혼을 파괴시키는 중독자들도, 기존의 사유에 기대 의미를 찾으려 했던 학자들도, 모두 죽지 않는 시간의 권태를 이기지는 못한다. 아무리 달라지려 해도 달라지는 것이 전혀 없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김성중이 그려내는 죽음이 사라진 세계의 모습은 이처럼 재앙에 가깝다. 죽음으로부터 놓여난 완벽한 자유는 사실 무의미라는 더 큰 고통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 무의미한 시간의 공포와 고통과 슬픔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 구원은 어떻게 가능할까. 어쩌면 너무나 손쉽고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그 해결책을 김성중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애착과 사랑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p.148-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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