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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youlovearchive Jan 10. 2024

김개미, 작은 신

문학동네시인선 190 (240107~240109)



*별점: 4.5

*한줄평: 작은 나, 작은 신, 그리고 작은 희망

*키워드: 천사 | 신 | 몬스터 | 고양이 | 죽음 | 유령 | 밤 | 사랑 | 희망 | 외로움

*추천: ‘생의 동력이 되기도 하는 고통’에 관해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


도무지 근원을 알 수 없는 나의 태풍이
도망칠 수 없을 만큼 가까이 와 있다
/ 「조용한 여름」 (p.51)


 ‘나를 괴롭히는 건 칠할 벽이 아니라 칠한 벽’(「결국 수정액도 페인트 아니겠어?」, p.25)이고, ‘생각하지 않아도, 선택하지 않아도 되고, 모래가 아니어도 되는 모래를 부러워하고’(「모래의 형식」, p.41), ‘여기는 춥고 저기는 덥지 말고 온전히 춥고만 싶다’(「이상한 사람의 이상한 밤」, p.55)는 화자. ‘희망이란 하늘에 떠가는 비행기 같은 것이라 나를 구할 모든 것을 갖췄지만 나를 보지 못한다’(「숲속엔 저녁이 없어요」, p.66)며 희망을 품지 않고, ‘외로움이 외로움인지 몰라 외로움을 너무 오래 방치’(「빌라라는 세계」, p.86)해두기도 하며, 어떤 날은 ‘내가 카프카의 소설에 나오는 그 유명한 벌레 같아서 밥을 먹지 못하기’(「파란 빈백이 있는 집」, p.106)도 하는 화자.


 그럼에도 ‘죽고 싶지 않지만 죽음에 대한 농담은 통쾌하니까 목숨을 가지고 농담을 하기’(「수국이 창문을 들이받으므로」, p.22)도 하고, ‘죽고 싶은 날이 많아 살고 싶은 날도 많은’(「모래의 형식」, p.40) 화자. ‘오늘의 나를 데려가 달려가고 날아가고 달아나자’(「버드나무 그림자가 떨리는 손으로 미친듯이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p.44)고 말하기도 하며, ‘살아 있는 것들은 밤에 자란다니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이상한 사람의 이상한 말」, p.54)고 소망하기도 하고, ‘외로움의 힘 말고도 모르는 사람들의 힘으로도 사는’(「빌라라는 세계」, p.87) 화자. 이런 화자가 나는 좋았다. 원래 사람은 하나의 마음만 품지 않으니까. 죽고 싶다가도 살고 싶고, 외롭지만 또 그 외로움의 힘으로 살아가기도 하며, 나를 미워하다가도 사랑하곤 하니까.


 해설에서 임지훈 문학평론가는 ‘고통, 그것은 나를 괴롭게 만들지만 결코 죽이지는 못하는 생의 동력’(p.126)이라고 다르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묻고 있다. ‘무서운 곳에서도 나는 낙천적일 것’이고, ‘오늘의 나는 무엇이든 다 이룰 것 같고, 누구에게든 이해받을 것 같고, 언제까지나 들뜰 것 같다’(「버드나무 그림자가 떨리는 손으로 미친듯이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p.44)는 화자. 그런 화자라면 ‘도무지 근원을 알 수 없는 태풍이 도망칠 수 없을 만큼 가까이 와 있어도’(「조용한 여름」, p.51) 우울과 불안, 외로움과 괴로움, 공포와 고통과 혐오로 몸집을 키운 태풍에 잠식되지 않고 버텨낸 후 다시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24/01/10]


(*문학동네 우필사 특별반 이벤트 당첨자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


시인의 말

매일 아침
절벽 아래 떨어진
참혹한 인간을 발견한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무것도 아닌 인간
제로의 인간
내 얼굴을 한 물거품의 인간
기다림은 그의 전문이 아니지만
그가 할 일은 그것뿐이다

2023년 3월
김개미


| 그의 눈이 보이지 않아서

  나는 아름다울 수 있었다

  아름다울 수 있어서

  착할 수도 있었다

/ 「몬스터 일기 1」 (p.32)


| 무서운 곳에서도 나는 낙천적일 거예요

  오늘의 나는 무엇이든 다 이룰 것 같고

  누구에게든 이해받을 것 같고

  언제까지나 들뜰 것 같아요

/ 「버드나무 그림자가 떨리는 손으로 미친듯이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p.44)


| 나는 두 가지 때문에 놀란다

  다시는 누구도 사랑하지 못할 것 같던 메마른 내게

  이토록 진하고 무한한 사랑이 있다는 것과

  결코 시간은 약이 아니라는 것

/ 「작은 동물의 방문」 (p.60)


| 세상 어딘가에 머리통만한 장미꽃이 있다고 해도

  죽기 전에는 이 꽃이 생각날 거야

/ 「찔레꽃」 (p.110)


———······———······———


*좋았던 시


1부 | 화장실은 몰라도 해당화는 있어야지

 「들판의 트레일러」

 「파랑의 감각」

 「수국이 창문을 들이받으므로」

 「결국 수정액도 페인트 아니겠어?」

 「몬스터 일기 1」


2부 | 모래 옆에 모래 모래 옆에 모래

 「모래의 형식」

 「버드나무 그림자가 떨리는 손으로 미친듯이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조용한 여름」

 「이상한 사람의 이상한 밤」

 「아스팔트 위의 지렁이」


3부 | 사랑 고백이 그렇게 시시한 거였나

 「작은 동물의 방문」

 「틈새 일기」

 「숲속엔 저녁이 없어요」

 「카카의 기차역」

 「빌라라는 세계」


4부 | 슬픔은 걱정보다 잔잔해서

 「나는 여기 없어」

 「금요일 밤의 정체」

 「다리 밑의 눈」

 「파란 빈백이 있는 집」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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