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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youlovearchive Jan 16. 2024

이유리, 잠이 오나요

위즈덤하우스 (240110~240110)



* 별점: 4.0

* 한줄평: ‘잠이 오나요’라는 말에 담긴 여러 의미들

* 키워드: 잠 | 불면 | 밤 | 베개 | 목소리 | 미움 | 복수 | 망설임 | 후회

* 추천: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품어본 적 있는 사람


눅눅한 냄새가 섞인 복숭아 향. 그래, 복수가 풍기는 냄새가 있다면 꼭 이럴 것 같았다. (p.38)

| 첫 문장: 베개를 사 온 건 오늘 가게를 닫은 후의 일이었다. (p.5)


———······———······———


*결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위즈덤하우스 홈페이지에 공개되었을 때 읽었던 이유리 작가님의 단편이 단행본으로 출간된 후 작가의 말이 궁금하기도 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위픽 시리즈는 단편을 한 권의 단행본으로 만드는 것이니 분량 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항상 있다. 그래도 좋아하는 작가님의 작품은 소장하고 싶을 만큼 책이 특색 있고 예쁘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읽을 땐 ‘잠이 오나요’라는 제목을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었는데, 이번에 읽을 때는 이 말을 여러 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그 베개를 베면 잠이 오나요?’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왕방울 당신은 그렇게 행동하고도 잠이 오나요?’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양양미와 박세희 씨는 복수를 하고 나니 잠이 오나요?’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고, ‘왕방울 당신은 자신이 했던 행동을 돌려받으니 잠이 오나요?’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몇 번이고 샤워를 하고도 자신에게 미약한 페인트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수시로 냄새를 맡고, 복수를 성공적으로 해내고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양양미의 모습에서 어쩐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가 떠올랐다. 후회와 불안으로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왕방울 씨에게 잠을 빼앗았음에도 그 복수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동네 사람들을 예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양양미는 왕방울 한 사람으로 인해 그 기쁨을 박탈당하고 모두를 의심하게 된다. 사실 이건 양양미와 왕방울 개인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사회 전반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소설 자체가 좀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미움과 두려움 없는 포근하고 편안한 곳이 당신에게 있었으면 한다는 작가의 말. 이유리 작가님이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좋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앞으로도 계속 읽고 싶다. [24/01/11]


———······———······———


| 울면 지는 거라면 펑펑 울어본 우리는 이미 펑펑 진 거였으니까. 울다뿐인가, 이렇게 불면증까지 얻어 뒤척거리며 밤마다 타들어가는 속에다 소화기를 뿌려대고 있으니 이건 그야말로 완벽한 패배였다. (p.14)


| 그러고 보니 이런 신기한 물건을 두고서도 베개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못하고 그저 복수할 생각에만 눈이 뒤집혔구나, 우리. 나는 베개 밑에 팔을 집어넣고 웅크렸다. 차갑고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한을 품은 사람의 마음에 손이 닿은 것 같았다.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그래도 복수는 해야만 한다고. (p.41-42)


| 하지만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마음 한복판에 뾰족 튀어나온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얇디얇은 잠의 천은 내 지친 몸을 쓸다 말고 거기에 걸려서 자꾸 찢어지고 이지러졌다. 비몽사몽, 잠에 빠져들락 말락 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금세 뭔가 잊은 사람처럼 나는 훅 하고 현실로 도로 불려오곤 했다. (p.6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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