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okyoulovearchive Jan 25. 2024

목정원,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아침달 (240113~240123)



* 별점: 5.0

* 한줄평: ‘슬픔을 아는 아름다움’에 관해 말하는 책

* 키워드: 공연예술 | 시간 | 소멸 | 기억 | 공허 | 슬픔 | 아름다움 | 사랑 | 고유함 | 사라짐 | 흔적 | 사람

* 추천: 사라지는 것들에서 슬픔이 아닌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싶은 사람


우리는 실체가 있는 것만을 사랑할까. 혹여 본 적 없는 얼굴을 더욱 사랑할 수도 있는 걸까.
/ 「봄의 제전」 (p.28)


———······———······———


* 제목이 흥미롭고 공연예술에 관한 내용이라고 해서 예전부터 꼭 읽어보고 싶었던 공연예술이론가 목정원의 에세이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을 읽었다.


* 문학을 공부하며 희곡 수업은 거의 다 들었고 연극들을 많이 보러 다녔다.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하므로 희곡 자체는 무대에 오르는 순간 완성된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연극을 보며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텍스트를 읽을 때 상상만 하던 것들이 무대에서 구현되는 것은 마법 같았다. 상연되는 그 순간에만 존재하고 사라져 버리는 마법. 그때 본 연극들의 감상을 제대로 기록해 두지 않은 것이 아쉽다. 순간일지라도 기록해 두었다면 조금은 잡아둘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 작가도 ‘공연예술은 시간예술이기 때문에 발생과 동시에 소멸하며 남는 것은 기억뿐인데 그마저도 금세 바스라진다’(「뒤늦게 쓰인 비평」, p.5-6)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라지기에 실체가 없는 것’을 사랑할 수 있으므로, 사라지는 것들에서 슬픔보다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 작가가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도 참 좋았는데 그중에서도 솔렌과 장 끌로드 아저씨와의 일화가 인상적이었다. 무대 의상을 만드는 일이 ‘가상이면서도 실제인, 발생하면서도 소멸하는, 어떤 고유함을 위한 일’(「솔렌」, p.40)이어서 그 일을 좋아한다는 솔렌과 ‘차가운 새벽이나 뜨거운 한낮에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공연 티켓을 건네주는 것으로 작가에게 ‘아프지 않은 세계’를 선물’한(「장 끌로드 아저씨」, p.150) 장 끌로드 아저씨. 이들이 사라지는 것들의 슬픔보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 기대한 것보다 더 슬프고 아름다운 글들이어서 참 좋았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아득한 희망을 안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김동현 선생님께」, p.67)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다. [23/01/25]


———······———······———


| 그 시집을 영원히 돌려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저를 깊이 위로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일, 낯선 서울의 겨울을 산책하는 동안에도 아마 그것을 끝내 다행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덕분에 저는 아득한 희망을 안고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 「김동현 선생님께」 (p.67)


| 돈 지오반니가 내게 외치고 간 말은 분명 삶을 끝까지 노래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명령을 계속 울라는 말로 치환할 수 있다면. 그제서야 나는 그 무거운 지속을 짊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꽁띠뉴에. 나는 사라지지만 당신들은 울음을 계속 우세요. 나와 당신들이 외면하지 않은 세계의 아픔에 대해.

/ 「꽁띠뉴에」 (p.88)


| 아저씨가 내게 한없이 권한 먼 아름다움. 그것이 단순한 선의 이상의 것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차가운 새벽이나 뜨거운 한낮, 나를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준 사람. 그는 내게 아프지 않은 세계를 주었다. 고통을 다루더라도 화해가 이루어지는 세계. 때로 비참한 결말일지라도 죽음 직전엔 반드시 고결한 노래가 흐르는 세계. 연극에서와 달리 오필리어가 물에 빠지는 장면이 직접 다뤄지는. 우리가 몰랐던 말, 현실에 없었던 말, 영영 못 들을 말이 전해지는 세계. 나는 떠나지만 당신을 영원히 사랑했을 것이라는, 그녀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곳. 나는 장 끌로드 아저씨에게 오페라를 빚졌다.

/ 「장 끌로드 아저씨」 (p.150)


———······———······———

매거진의 이전글 오은, 왼손은 마음이 아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