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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youlovearchive Feb 02. 2024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민음사 (240127~240127)



* 별점: 4.5

* 한줄평: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에게 치유받고

* 키워드: 언어 | 말 | 말하기 | 교정 | 마음 | 사랑 | 상처 | 글쓰기 | 복수 | 용서 | 삶

* 추천: 말하는 것이 어렵고 무서운 적이 있었던 사람


| 첫 문장: 나는 잘해 주면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다. 누군가 한 손을 내밀어 주면 두 손을 내밀고, 껴안아 주면 스스스 녹아 버리는 눈사람이다. (p.7)


———······———······———


*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28 정용준 작가님의 『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읽었다. 매일과 영원 시리즈 중 한 권인 정용준 작가님의 에세이 『소설 만세』를 읽다가 이 책이 언급된 글이 나오길래 궁금해서 『소설 만세』는 잠시 덮어두고 이 책부터 읽게 되었다.


* 말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모인 스프링 언어 교정원. 말더듬증을 고치고자 그곳에 다니는 열네 살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자신에게 잘해 주면 ‘너무나도 쉽게 사랑에 빠져 돌멩이도 사랑하는 바보’라는 소년은 사람들에게 수없이 상처 받은 끝에 미워하고, 속지 않고,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 가장 예민한 시기에 말의 어려움까지 겹쳐 소년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가족, 친구, 선생님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어 드넓은 바다 위 홀로 떠 있는 외딴섬보다도 더 외롭지 않았을까. 본인이 가장 말하기 어려운 단어로 계속해서 별명을 바꿔 가는 스프링 사람들과 함께 소년은 조금씩, 천천히 말을 더듬지 않고 할 수 있도록 여러 훈련들을 해 나간다.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던 스프링 언어 교정원 사람들의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소년의 마음은 다시 사르르 녹아내린다.


* 말. 말의 무게. 말에 대한 어려움과 두려움. 말은 한 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말을 하는 게 힘들고 무서워지기도 한다. ‘마음의 세계에서는 막힘이 없는데 소리 내서 한마디 하는 것조차 힘든’(p.66)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정도는 다를 수 있겠지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닐까.


*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려면 아무 데나 공격해서는 안 되고 약한 부분, 아킬레스건을 찾아야’(p.83) 한다던 소설가의 말. 누군가에게 제대로 상처를 주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건, 그렇게 상처를 받아본 적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이 말이 많이 아팠다. 책을 읽으면서 스프링에 다니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궁금해져서 짧은 분량이 아쉬울 정도였다.


* ‘작가의 말’이 정말 좋았다. 특히 ‘계속 쓸 수 있다. / 계속 살 수도 있다.’(p.163)라는 말. 쓰는 일이 사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말처럼 다가와서 마음에 남았다. 오래도록, 많이 많이 써주세요


*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에 궁금했던 작가님들이 참 많았는데 좋아하는 정용준 작가님으로 시리즈를 시작하니 다른 작품들도 완전 기대된다. 윤고은, 최진영, 박서련, 문지혁, 조예은 작가님 작품부터 천천히 읽어 봐야지! [2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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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한 조각 빼곤 다 고쳤지. 이상하게 편한 사람. 더듬는 모습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사람 앞에서는 더듬어. 노력하지 않아도 되니까. 더듬는 모습 그대로도 괜찮으니까. 아마 무의식조차 아무 노력도 안 하고 자연스럽게 말하고 싶나 봐. 아! 24번은 무의식이 뭔지 알아?

  알아요.

  그리고······ 더듬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도 안 더듬는 건 아니야.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것도 아니야. 다들 어느 정도 말더듬이들이야. 우리는 보기에 조금 튀는 거고. 너도 나중에 더듬지 않게 되면 알게 될 거다. (p.75)


| 왜 사냐니. 무슨 질문이 그래. 아들. 알려 줄 테니까 잘 기억해. 왜 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냥. 그냥 살아.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 그래. 그냥 사는 게 사는 데 있어 가장 큰 이유야. 다른 이유는 없어. 돌멩이가 왜 딱딱한지 아니? 왜 나무는 말을 못 하게? 몰라. 나무도 돌도 몰라. 사람도 그래. 사는 데 이유는 없어.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 사는 건 피곤해지고 슬퍼진단다.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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