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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youlovearchive Jan 30. 2024

정용준, 저스트 키딩

마음산책 (240124~240126)




* 별점: 5.0

* 한줄평: 짧은 소설이 이렇게 완벽할 수 있다니

* 키워드: 멍과 돌 | 꿈과 현실 | 부서진 것과 낡은 것 | 죽은 자와 산 자 | 친구와 살인자 | 장난과 죗값 | 기억과 망각 | 기다림과 떠남 | 주객전도와 평온 | 익숙함과 외로움

* 추천: 부담스럽지 않은 짧은 분량의 소설부터 읽어보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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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산책에는 ‘짧은 소설’ 시리즈가 있다. 지금까지 18권의 짧은 소설이 출간되었는데 그중 가장 최근에 나온 정용준 작가님의 짧은 소설 『저스트 키딩』을 읽어보았다. 모두 13편의 짧은 소설을 중간중간 들어간 일러스트와 함께 감상할 수 있다.


* 읽기 전에는 ‘짧으면 얼마나 짧겠어’ 했는데 한 편이 생각보다 정말 짧긴 하다. 그럼에도 한 편 한 편이 완결성 있고 여운도 있어서 ‘짧은 소설도 이렇게 완벽할 수 있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세신사 신 씨와 소년 사이의 비밀이 담긴 「돌멩이」, 실패를 흉내 내고 있어 ‘시간 도둑’이라는 말이 씁쓸할 정도로 잘 어울리는 인물이 나오는 「시간 도둑」, 누군가에겐 친구지만 누군가에겐 살인자일 수 있는 이들에게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인물이 나오는 「친구들에게」, 과거, 현재, 미래가 뒤얽힌 기억으로 고통받는 노인의 이야기 「당나귀 노인」, 같은 상황에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두 남자」, 해야 할 일들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종이들」, 그 어떤 상상보다도 끔찍한 현실에 광기 어린 웃음을 터트리는 「해피 엔딩」, 헤어졌지만 헤어지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뮤트」까지. 밑에 특히 좋았던 짧은 소설 리스트엔 포함하지 못했지만 모든 단편들이 정말 좋았다.


* 보통 작가의 단편을 읽고 괜찮으면 장편을 읽는 편이라서 『내가 말하고 있잖아』(이것도 내 기준에는 장편은 아닌데, 장편소설로 분류되어 있긴 하다)를 제외하곤 아직 장편을 읽지 않았는데 정용준의 ‘장편’은 어떨지 너무 기대된다. 『프롬 토니오』가 제일 궁금해서 아마 이 책부터 읽을 듯!


* 작가님의 북토크에 갔다가 「겨울 산」의 첫 문장 낭독을 듣고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겨울 산」은 작가님의 중편소설 『유령』이나 『겨울 간식집』에 실린 단편 「겨울 기도」처럼 앞으로 겨울이 다가올 때쯤 의식처럼 꺼내 읽고 싶은 작품이 되었다. 북토크에서 작가님에게 겨울이라는 계절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 들을 수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겨울을 싫어하는 나도 이번 겨울은 그다지 싫거나 힘들지만은 않았다. 어떤 계절을 떠올리게 되는 작품을 만나고 간직하는 건, 그래서 그 계절도 조금은 좋아할 수 있게 되는 건 참 소중한 일이다. [2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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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좋았던 짧은 소설


- 「너무 아름다운 날」

: ‘끝없는 고통으로 이어진 현실과 끝없는 행복으로 가득한 꿈’. 당신의 선택은?


| “ (…) 때문에 나는 그가 왜 그리 어리석은 선택을 하려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생이란 그런 거 아닙니까. 후회와 어리석음은 인간의 영원한 양식이니까요.”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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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운 펜션」

: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곳


|  “죽어도 끝나는 거 없어. 사라지는 것도 없고. 나도 안 사라져.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한 어디도 갈 수 없더라고. 형이 나 생각하면 나는 형 옆에 계속 있게 되는 거야. 몸 없이 사는 거. 영혼이 되는 거. 자유로운 거 절대 아니야. 그러니까 형. 내 생각 좀 그만해. 아니, 하더라도 다른 생각 좀 해. 좋았던 것들도 있잖아.”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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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스트 키딩」

: 저스트 키딩, 장난일 뿐이라고? 억울하다고? 죗값을 치렀다고?


| “죗값. 당신이 지은 죄는 누군가를 모욕하거나 명예를 훼손한 것이 아닙니다. 형량은 그렇게 나왔겠지만 절대로 아닙니다. 그 사람은 존재 자체가 파괴됐거든요. (...)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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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모든 바다」

: 먼바다로 떠난 이들을 기다리다 찾아 나서는 길


| 저는 세상의 모든 바다를 갈 수 있어요. 바다로 향하는 모든 톨게이트를 알고 있지요. 이 톨게이트를 지나 저 톨게이트를 통과하면 이 세상은 저 세상으로 변한답니다.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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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산」

: 끝나지 않는 겨울에 막막하고 하염없어도 눈을 미워하지 말 것


| 바닥에 놓인 세 개의 물방울들. 영원은 그것들을 돌멩이처럼 버리고 떠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해요. 거품처럼 작고 얼음처럼 반짝이며 물처럼 투명한 아이들이 너무 아름다웠던 거예요.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내리는 나의 눈송이들. 영원은 아이들과 함께 살기로 결심했어요. (p.168-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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