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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youlovearchive Feb 25. 2024

정용준, 세계의 호수

아르테(arte) (240218~240218)



* 별점: 4.5

* 한줄평: 우리 모두는 각자 ‘세계의 호수’를 품고 있어서

* 키워드: 여행 | 이별 | 재회 | 작별 | 대화 | 소통 | 마음 | 감각 | 용기 | 사랑 | 감정 | 선 | 기억 | 단절

* 추천: 이별에 관한 기억이 있는 사람, ‘소통의 불가능성’에 관해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


어쩌면 이별을 작별로 바꾸고 싶은 사람의 마음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쓰다 보니 작별을 이별로 바꾸려 애쓰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슬프게도(다행스럽게도) 작별을 이별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꿀 수 있는 건 이별에서 작별뿐.
/ 작가의 말 (p.140)


| 첫 문장: 다음 날 로비에서 만나기로 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p.7)


———······———······———


* 아르테 한국소설선 작은 책 다섯 번째 책인 정용준 작가님의 『세계의 호수』를 읽었어요. 윤기가 7년 전 헤어진 연인 무주와 낯선 이국에서 재회하고 서로의 진심을 털어놓는 대화를 나누며 진정한 ‘이별’로 나아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 윤기의 마음도, 무주의 마음도 조금씩 공감 가는 부분이 있어 누구 한 명의 편을 들 수도, 탓을 할 수도 없었어요. 작가의 말에서 작가님은 ‘이별이 같은 세계의 양끝을 향해 걸어가는 거라면 작별은 각각 다른 세계로 걸어가는 느낌’(p.139)이 든다고 말하는데요. ‘이별을 작별로 바꾸고 싶은 사람의 마음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쓰다 보니 작별을 이별로 바꾸려 애쓰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p.140)는 말로 짐작해 보면 윤기와 무주는 ‘작별’을 한 것 같습니다. 사실 정용준 작가님의 에세이 『소설 만세』에 이별과 작별의 의미 차이가 나오는 글을 먼저 읽었는데, 거기서는 ‘이별은 서로 갈리어 떨어지는 것을 뜻하고 작별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짐을 뜻한다.’고 나와 있었거든요. 이 문장으로 생각했을 때는 둘이 처음에 한 건 이별이고, 재회해서 한 게 작별이 아닐까 합니다.


* 세계의 호수, 그리고 세 개의 호수. 우리 모두 ‘세계의 호수’를 마음에 품고 사는 게 아닐까요. ‘잘못된 소통으로 만들어진 허상’(출판사 서평)이라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가 생각한다면 존재하는 곳. 그래서 더 비밀스럽고 소중한 ‘나만의 호수’. 다들 마음속으로 떠오르는 ‘세계의 호수’가 있으신가요?


 *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했던, 그러나 이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잃어버린 건 아니지만 잊어버린’ (p.98) 사랑했던 이의 표정. 설명할 필요 없이, 소통할 필요 없이 모든 걸 다 안다는 게 과연 좋은 걸까요? 설명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게 나쁜 걸까요? 마음을 들여다보며 만남과 이별, 사랑에 관해 생각해보고 싶은 분께, ‘소통의 불가능성’에 관해 생각해보고 싶은 분께 이 소설을 추천합니다. [24/02/19]


+ 『소설 만세』와 『저스트 키딩』을 읽은 독자라면 발견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있어 더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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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는 목소리, 눈빛, 한숨, 웃음만 보고도 내 마음의 모양을 알았다. 어제의 문장과 오늘의 문장의 다름과 뉘앙스의 차이를 짚어냈고 원래 쓰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어서 내 마음에 맞게 문장과 이야기를 고쳐주기도 했다. 무주와 헤어진 뒤 나는 그런 사람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사람이 된 줄 알았는데 지금 하필 느닷없이 오스트리아에서 콰콰콰 소리를 내며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p.36-37)


| 무주는 헤아리기 어려운 마음을 갖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고 속이 비치지 않는 바다와 같다. 무주는 마음을 말하지 않았고 묘사도 하지 않았다. 간혹 무슨 말을 하더라도 눈동자와 표정에서는 어차피 전해지지 않을 거라는 어두운 전망이 보였다. 말해보라고, 설명해보라고 채근하면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그저 나를 꼭 안아줬다. 걱정 마. 괜찮아. 이런 말만 했다. (p.101)


| 감춘 마음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그 마음이 품고 있을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알고 감춘 게 아니라 몰라서 감추고 있는 것. 사라지지도 소멸되지도 않은 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내가 모르는 마음.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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