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로컬리] 크리에이터 인터뷰 vol.6 최원서
호명에는 힘이 있다. 기후변화(climate change)라는 단어를 기후위기(climate crisis)로 변주한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의 시도가 좋은 예다. 그들은 환경 오염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길 표현 대신, 새로운 단어의 집을 지어 사태의 심각성을 알렸다. 명명(命名)에는 세계를 추동하는 능력이 있다.
1995년, 대기학자 파울 크리춴(Paul Crutzen)은 오늘날 지질 시대를 인류세(Anthropocene)라 칭했다. 불을 통제할 수 있던 초기 인류를 기점으로 삼을지, 방사능 낙진이 최고조였던 1964년을 기점으로 할지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다. 다만, 하나의 합의점은 분명해졌다. 공생의 대상이었던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상정한 이래 지구가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단어는 진단의 성격을 띤다. 물론, 진단만으로 완치가 보장되진 않는다. 하지만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는 방향 설정에는 분명 도움이 된다. 변화는 거기서 시작된다. 인류세란 개념을 만난 최원서는 어딘가 찌릿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던 중, 쓰고 버려진 폐플라스틱에 눈길이 향했다. 산업이 낳은 잔류물에 대해 고찰하는 사람, 최원서 작가를 경기도 수원에서 만났다.
녹음을 진행을 해도 될까요?
네 좋아요. 음악을 끄는 게 좋을까요?
아뇨. 자연스럽고 좋은데요. 음악이 없으면 너무 적적하지 않을까요?
그럴 것 같긴한데 녹취에 방해될까 싶어서요. 괜찮을까요?
생각보다 스마트폰 기능이 좋더라고요. 지난번에는 음악소리가 제법 큰 카페에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기우였어요. 이 정도 소리라면 전혀 지장 없습니다. (웃음)
다행이다.
저는 과거 을지다락이란 공간에 방문했을 때 패턴 오브 인더스트리(pattern of industry)를 봤어요. 그 작업을 통해 작가님을 알게 됐고요.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를 하셨더라고요.
인터뷰는 사실 되게 오랜만이에요. 최근에는 잘 안 하려고 하기도 했고.
이유를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뭐라고 해야 될까. 음, 부끄러워서요. 데뷔 초기에는 신나서 인터뷰도 많이 하고, 제가 가진 생각도 가감 없이 이야기했거든요. 근데 살아보니 생각이 계속 바뀌더라고요. 과거의 제가 했던 말과 생각이랑, 지금의 제 생각이랑 조금 다른 부분도 있는데. 과거에 제가 한 말이 어딘가에 기록으로 남아있으니까. 그런 게 좀 부끄러워서 인터뷰에 좀 더 신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최근에는 일도 좀 몰려 있기도 했었고요. 지금은 굵직한 일들이 끝나서 좀 여유로운 상황이에요.
다행이네요. 너무 감사합니다.
인터뷰 요청을 친절하게 해주셔서. (웃음)
하던 이야기를 이어가면 좋겠어요. 사람은 정물이 아니니까. 생각도 당연히 바뀔 수밖에 없다는데에 동의해요. 근데 그런 부분은 생각해 보지 못했네요. 작가님의 말이 어딘가에 새겨지면 그게 고정되는 느낌 때문에 조심스러워진다는 것 말이에요.
그것도 그렇고 옛날에는 뭔가 열의가 가득하기도 했어요. (웃음) 하고 싶은 얘기가 참 많았었는데. 최근에는 뭔가를 말하고 싶으면 그걸 작업으로 풀어내자는 쪽에 집중하고 있죠. 그래도 인터뷰하면 좋아요. 누군가 제게 질문을 해주면, 생각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거든요.
알겠습니다. 사실 제가 굉장히 진부한 질문을 하는 편인데요. 형식적으로 느껴지시더라도 감안해주세요. 작가님에 대해서 간단하게 한번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게 제일 어려워요. (웃음) 요즘 그냥 작업하고 있는 최원서라고 합니다. 오스오프(osof)라는 창작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고요. 가구, 제품, 공간 디자인을 기반으로 디자인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작업에 첨단 기술도 융합해 보고, 설치 작업도 시도하고 있어요.
오스오프(osof)는 무엇의 약자인가요?
원서(Oneseo) 크리에이티브(Creative) 오피스(Office)요. 처음에 ‘스튜디오 원서’라고 지었다가 미래에 팀원이 생길 걸 대비해서 오스오프로 결정했어요.
스튜디오 원서도 좋은데요?
제 이름을 팀 이름으로 내거는 게, 언젠가 합류할 동료들 입장에선 좋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바꿨어요.
아, 저도 특정 인물의 이름이 스튜디오에 들어가 있으면 그곳에서 만든 작업물을 전부 한 사람의 결과로 치환한 적이 있어요. 사려 깊으시네요.
맞아요. 그런 부분 때문에 이름을 수정했죠. 아직 팀원은 없지만요. (웃음)
앞으로 생기겠죠. 진부한 두 번째 질문입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 길을 택한 배경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 질문하신 내용이 디자인을 전공하게 된 계기인가요? 아니면 가구 디자인을 하게 된 이유인가요?
둘 다요. 전공 선택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시고, 그중에서 가구에 집중하게 된 계기까지요.
디자인 전공한 거는 입시가 제일 큰 이유였죠. 근데 어릴 때부터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걸 엄청 좋아하기도 했어요. 나무젓가락 깎아서 장난감을 만들기도 하고, 조립한 피규어를 사진 찍어 피규어 카페에 올리기도 했거든요. (웃음) 이런 게 학창시절 취미였어요.
저는 취미가 게임이었는데.
고등학교. 진로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는데요. 목공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서 목공 관련 작업을 할 수 있는 길을 찾아봤어요. 미대에 가면 할 수 있구나, 해서 미대 입시를 준비했고요. 근데 그때쯤이면 여러 말들이 들리잖아요. 가령, 그런 거 해서는 나중에 취업 못한다는 얘기 같은 거. 그런 현실과의 간극을 좁히면서 제가 좋아하는 만들기를 할 수 있는 게 산업디자인이라고 판단을 했어요.
막상 입학해보니 어떠셨나요?
당시 학부 명칭이 테크노프로덕트 디자인이었어요. 소위 말하는 인하우스 디자이너(기업이나 회사에 속해서 일하는 형태)를 양성하기 위한 커리큘럼이 많았죠. 기성품을 제작하는데 최적화된 내용들이었어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기분이었죠.
힘드셨겠네요.
당시 학부가 금속 공예와 산업디자인이 합쳐진 형태였는데요. 그러다보니 공예 수업도 들을 수 있었어요. 공예는 꽤 잘 맞았어요. 다행이었죠. 무엇보다 공예 수업을 담당하셨던 교수님의 가치관, 철학, 태도도 너무 좋았어요. 공예를 베이스로 한 작업을 해야겠다 싶었죠.
당시 공예 교수님이 작가님에게 많은 영향을 많이 끼친 것 같은데요.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에피소드 같은 게 있을까요?
교수님 작업실이요. 혹시 tvN <유퀴즈 온 더 블록> 보셨나요? 거기 연희동 나온 회차보면 궁동근린공원 근처 버스 정류장이 나오는데요. 바로 그 근처에요. 작업실 앞에 ‘상식은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다’라는 간판을 달아놓으셨어요. 그 문장이 지금도 인상 깊어요.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마음에 와닿는 것 같기도 하고요.
동의해요. 살수록 상식이란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 부분이 많아져요. 그리고요?
작업실이나 연구실을 가면 꼭 그렇게 차를 대접해 주셨어요. 수집한 찻잔 중 하나를 골라 정갈하게 말이죠. 대화방식도 좋았어요. 직접적인 의견이 누군가에게는 상흔을 남길 수도 있다는 걸 아셨던 거 같아요. 항상 비유를 하셨어요. 가령 작품의 크기에 대해 조언 해주실 때 “개미만한 코끼리, 코끼리만한 개미”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죠.
휴학 후 시작하신 작업이 패턴 오브 인더스트리로 알고 있어요. 작업하게 된 배경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앞서 말씀드린 교수님께서 을지로 탐방을 시켜주신 적이 있어요. 을지로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작가분들의 작업실도 소개해 주실 겸 말이죠. 답사를 마치고 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 알루미늄 가게에 쌓여있는 프로파일을 보게 됐는데요. 문양이 너무 예쁜 거예요. 이걸로 뭔가 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 직후 바로 하신 거예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9년 2월쯤이었어요. 디자인프레스에서 크리에이터스 그라운드(CREATORS’ GROUND)라는 코엑스 전시를 개최했는데요. 전시에 앞서 진행된 공모전에 선정돼 제작 지원비와 전시 부스를 제공 받았죠. 이후,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인턴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당시 전시를 본 분들에게서 연락이 계속 오는 거예요. 제품 제작과 전시회 참여 문의부터 인터뷰 요청까지 다양했죠. 좋은 기회들이 계속 찾아오길래 움켜 쥐기로 마음 먹었죠.
패턴 오브 인더스트리의 문양(pattern)을 보며 옛 건축물의 단청이 떠올랐어요. 근데 이게 단면을 잘랐을 때 나오는 형태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연출을 위해 의도적으로 재료들을 자르고 덧대어 재배치 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 많으세요. (웃음) 단청 혹은 아라베스크 문양 같다고 말이죠. 그런 분들한테 이거 기성품이에요, 하고 말하면 따로 문양을 만들고 금형을 파서 압출 했냐고 되묻기도 하시죠. 이런 반응이 재밌어요.
을지로의 일상에 스며든 사물. 그걸 약간 다른 방식으로 비틀어 보는 접근이 멋지기도, 부럽기도 하네요. 차별성이란 그런 틈새에서 발아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평소에도 그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시나요?
항상 창의적으로 접근하고자 노력해왔던 거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말이죠. 왜, 초등학교 때 만들기 수업 같은 거 하잖아요. 그러면 선생님이 제안하는 예시 같은 게 있으면요, 저는 절대 그렇게 안 만들려고 했어요. (웃음) 이런 건 이렇게 만들어야 해요,라고 누가 말하면 절대 그런 방식으로 하지 않으려는 성격. 그런 친구들이 있잖아요.
저는 반골이라는 표현을 되게 좋아하는데, 그 단어가 생각나네요. 프로파일이 가구 제작에 흔히 쓰이는 소재는 아닌 것 같은데요.
프로파일은 구조물을 효율적인 방식으로 만들 때 쓰이거나, 레일이나 기계 부품을 만들때 쓰여요. 3D 프린터에도, 자동차 정비 기계에도 활용되고요. 수직으로 결합되는 게 일반적인데요. 저는 이걸 수평으로 이어 붙였어요. 기성의 결합 방식인 수직 대신 수평으로.
수평으로요?
네. 그래야 프로파일이 가진 단면의 문양을 드러낼 수 있거든요. 기성품이 쓰이는 기성의 방식을 쓰지 않다 보니 처음엔 시행착오도 많았죠.
자재에 대한 탐구는 어떻게 하셨어요?
몸으로 부딪혔어요. 공장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여쭤봤죠. 이렇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요,라고. 그러면 대개 이걸 왜 하는지에 대해 어리둥절해 하시면서 잘 안 알려주셨어요. 그렇게 쓰는 거 아니다, 하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셨고요. (웃음) 다행이도 제 모델링과 렌더링을 보고 흥미를 보이는 공장 선생님이 한 분 계셨어요. 그때 제작과 결합 방식을 찾는 데 많은 도움을 얻었어요.
제작 과정에 대해서도 얘기해주세요.
잘라낸 프로파일 단면이 사실 엄청 날카로운데요. 그 부분을 일일이 갈아야 해요. 달리 방법이 없거든요. 얇은 줄로 된 사포를 들고 모서리를 계속 문지르죠. 이것만 하루종일 붙들고 있어야 되는 상황이 많았어요. 생각보다 오래 걸리더라고요.
힘드셨겠어요.
한때는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하면 할수록 이 방식이 이 작업의 정수 같다고 느꼈죠. 이런 지난한 과정이 있다는 건, 뒤집어 말하면 아무나 할 수 없는 이유기도 하잖아요. 이게 또 반복적인 작업이다 보니 ‘열심히 갈아야지’ 속으로 곱씹으면서 상상도 하고 다음 작업도 구상도 해요. 영상 같은 걸 틀어 놓을 때도 있고. 힘든 과정이었는데 지금은 좋아하는 과정이기도 해요.
뭔가 작업인데 일종의 휴식 혹은 다음 작업을 구상하는 시간처럼 들리네요.
맞아요. 사포질을 하며 문양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보면 그 이미지가 다른 상상력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그게 다음 작업의 영감으로 오기도 하죠.
알루미늄 프로파일이 아트퍼니처(art furniture)에 용이한 소재라고 여겨지시나요?
네.
이유는요?
기성품의 용도를 기성의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죠. 알루미늄 프로파일을 장식적인 느낌으로 전할 수 있던 건, 자재가 가진 속성의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줬기에 가능한 거고요. 그런 면에서 작업성이 있는 소재라고 생각을 해요. 새로운 내러티브를 입혀, 주목하지 않던 부분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죠.
네.
근데 아트가 아니라 ‘아트퍼니처’잖아요. 생산성도 고려해야 했죠. 재료 수급, 내구성, 표준화 가능성 등이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계속 일률적으로 찍어낼 수 있어야 공급에 무리가 없을 거라 판단했는데. 그러기에도 매우 적합한 소재라고 생각해요. 재료 자체는 견고하기도 하고 이미 검증된 여러 현장에서 많이 쓰인 재료다 보니까 내구성 부분에서도 문제가 없었고요.
작업을 보고 연락하는 공간 디자이너분들이 많았던 걸로 알아요. 과거 을지다락을 설계하셨던 임태희 소장님도 그렇고. 공간 관련 업계 분들은 뭐라고 코멘트해 주시나요?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엄청 긍정적으로 말해 주시죠. 아무래도 제 작업을 긍정적으로 봐주신 분들만 그런 의견을 제게 전해주시기도 하실 거고요. 별로인데 별로라는 말을 굳이 하시진 않을 거 아니에요. (웃음) 보통은 되게 재밌다, 혹은 색다르다는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던 거 같아요.
그런 반응이 나오는 이유가 뭘까요.
조형을 잡을 때 건축적 요소라들을 적용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지금 여기 보이시는 조명은 큰 빌딩의 형상, 이런 단이 켜켜이 쌓인 것들은 계단의 형태감에서 가져왔다든지. 그렇다 보니 건축을 베이스로 하신 분들 눈에는 익숙한데 그게 가구에 적용되어 있다는 걸 흥미롭게 봐주시는 것 같기도 해요.
그게 사실 되게 어려운 거잖아요. 익숙하면서 새로운. 그래서 좋아하셨던 것 같은데
가끔 가구를 납품하러 가거나, 보수 차원에서 공간에 방문한 적이 많은데요. 그러면 거기서 일하시는 분들이나 이용객들에게 일부러 물어보곤 했어요. "저거 어때요?" 하고 말이죠. 제 작업이라고는 말 안 하고요. (웃음) 그럴 때 돌아오는 반응들이 재밌어요. 가령, 버스 정류장 벤치 같다는 말씀부터, 너무 차가 차가워서 다른 데 앉으려 한다는 둥의 이야기까지 날 것의 평을 들을 수 있었죠.
과거 디자인 프레스와 나눈 인터뷰 기사를 봤는데요. 박스툴(Boxtool)이라는 작업 있잖아요.
네. 진짜 옛날에 한 작업이죠. 2018년도였을 거예요.
그 작업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여쭤보고 싶은 내용이 있어서요.
2018년도에 봉사활동을 위해 우간다에 간 적이 있어요. 전공이 전공이다보니 디자인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하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왔죠. 뭘 할지 구상하다가 눈에 들어온 게 박스였어요. 기부 물품들을 담을 때 썼던 박스들이 많았는데요. 이게 뜯겨지고 난 후 버려진다고 생각하니 좀 아찔한 거예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재활용, 지속가능성 같은 주제에 관심이 좀 많았거든요. '이걸 디자인이으로 풀어낼 수는 없을까?' 생각하다가 조립형 스툴을 고안해냈어요. 아무래도 봉사활동에 참여한 다른 분들은 디자인이 전공이 아닌 분들도 많았기에, 쉽게 제작하고 활용할 수 있는 매뉴얼이 필요했죠.
좋은 기획과 의도, 그리고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2018년 당시 인터뷰에서는 일종의 회의감이 든다는 답변을 하셨어요.
네. 그건 지금도 같은 생각이에요. 제가 교회를 다녔어요. 봉사, 헌신 같은 단어가 머릿속에 항상 있었고요. 우간다뿐만 아니라 에티오피아 등 해외 봉사를 다닌 이유도 그런 배경이 있었죠. 내가 가진 능력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디자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해 있었어요. 우간다 학생들에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면 좋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만든 게 박스툴이죠.
그런데 어느 부분에서 회의감을?
착한 명목을 앞세운 거요. 비판받을 수 없는 주제를 내세워 거기에 매료된 느낌이 들었거든요. 정작 그게 그 친구들에게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은 없었는데 말이죠. 실제로 스툴이 금방 망가지더라고요. 망가진 박스툴은 결국 쓰레기가 됐고요. 그건 제 의도하고도 맞지 않는 결과였죠. 선한 의도와 작업 과정, 그리고 결과물만 보여주고 박수받은 느낌. 거기서 오는 회의감이었어요.
결국 우리들은 사람이니까요. 완벽할 순 없죠. 사용자(당사자)를 고려하는 관점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당시 상황을 다시금 돌아보고, 지난번에 놓친 오류를 바로잡는 성찰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작가님의 태도가 윤리적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때 이후로 마음속에 새겨 넣은 게 ‘조금 더 솔직해지자’라는 거였어요. 스스로에게 늘 말했죠. 하고 싶은 걸 할 거면 하고 싶은 걸 하든지, 남을 위해 할 거면 정말 타인을 위하자고. 내가 하고 싶은 걸 남을 위해 하는 것인 양 착각하거나 말하는 건 하지 않기로요. 그 후로는 솔직하게 임하려 애쓰고 있어요. 작업을 소개할 때는 뭔가 대의적인 단어나 표현, 개념 같은 것들을 뺐고요. 최근 작업한 프로젝트에도 그런 부분들을 고려했어요.
최근에는 어떤 작업을 하셨나요?
플라스틱세(plasticene)라는 작업으로 전시를 했어요.
플라스틱세?
네. 예전부터 줄곧 환경문제에 대해 생각해 왔어요. 그러다 인류세라는 개념을 접하게 됐죠. 인류세는 지질학적으로 시대를 구분하는 명칭이에요. 이전 지질시대와 달리 인간이 자연의 거대한 힘이 되었음을 표시하기 위한 용어 제안이죠. 인류로 인해 빚어진 시대이기 때문에 인류라는 말이 붙었다고 해요. 보통 우리가 사는 땅을 홀로세라고 칭하는데, 최근 인류세라는 개념을 도입하자는 논의가 있다는 얘기를 알게 됐거든요. 이게 뭔지 나름 공부를 하다가 인류세의 주된 재료들 중 하나가 폐플라스틱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이걸 한번 쌓아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적층, 그러니까 뭔가를 쌓아 올리는 형태로 작업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지층의 층리가 가진 역할이 있잖아요. 당시 시대상을 어림잡을 수 있는 일종의 역사기록물로서요. 우리가 쉽게 뜯고 쉽게 버리는 플라스틱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여주는 방식도 있지만, 저는 이 버려지고 땅에 묻힌 플라스틱이 썩지 않고 고착화되는 형태로 표현하는 것도 현시대를 보여주기 용이하다고 생각했어요. 먼 미래세대가 플라스틱 층리를 보며 지금 이 시대를 추론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요. 그러려면 기계가 필요했어요.
기계요?
네. 3D 프린터요. 3D 프린팅에 fdm(fused deposition modeling)이라는 방식이 있어요. 일정한 두께로 선을 그리며 층을 만들고 그 층을 계속 쌓아올려 출력물의 형상을 만드는 건데요. 이전부터 작업 전, 원하는 형상을 테스트 겸 제작할 때 3D 프린터를 많이 썼어요. 그러다보니 프린터가 형상을 주조하는 모습을 자주봤는데요. 이게 앞서 말씀드린 지층의 층리가 형성되는 과정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아, 이거다, 폐플라스틱으로 적층된 단면 자체를 보여주자, 생각했어요.
그러면 3D 프린터에 폐플라스틱을 넣으신 건가요?
아뇨. 보통의 3D 프린터는 필라멘트를 사용해요. 폐플라스틱을 넣을 순 없었죠. 그래서 기계를 제작했어요.
어떻게요?
2021년도에 아르코(ARCO)에서 '예술과기술융합사업'이라는 걸 운영했는데요. 기획서를 들고 가서 이런 기계를 제작하고 싶다고 제안해 도움 받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까지 하신 이유가 뭔가요?
기성의 재료 혹은 기성의 방식을 다르게 보거나 거기에 새로운 이야기를 부여하는 방식이 저만의 작업 태도 같아요. fdm도 마찬가지였죠. 기존의 작업 형식에 새로운 서사를 부여하고 싶었어요. 그게 폐플라스틱이었던 거예요. 이런 맥락과 과정을 쌓으면 결과물도 진부하지 않을 수 있다고 봤고요.
경각심을 전하는 메시지가 담긴 것 같은데, 지속가능성이란 이야기는 전면에 나오지 않은 느낌이에요.
네. 작업을 전하는 데 있어 박수받을 만한 용어들은 지양했어요. 업사이클이라던지 지속가능성 같은 단어들. 과정에 서사를 부여하고 결과물에 대한 근거도 마련하고, 무엇보다 이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전하려는가에 집중했죠. 재료의 경우, 계속 순환해서 쓸 수 있어요. 실제로 원하는 형태가 나오지 않으면 그것들을 다시 분쇄기에 넣고 그걸 계속 다시 쓰는 형태로 작업했거든요. 그럴듯한 단어 대신 앞뒤가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작업하는데 힘을 쏟았죠.
작업으로 전하려는 메시지와, 이를 구현하는 실천 방식 모두 일관됐네요.
적어도 거짓말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어요.
천장에 매달린 천은 뭔가요?
탁본 방식으로 만든 작업물이에요. 탁본은 광개토대왕릉비처럼 보존이 필요한 사물을 오염시키지 않고 문양만 추출하는 건데요. 한지에 물을 묻혀 붙이고 좁쌀을 넣은 솜방망이에 먹을 묻혀 치면 문양만 떠낼 수 있어죠. 제가 제작한 프로파일이 이런 기법을 쓸만큼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사물인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웃음) 이런 방식을 적용해 문양만을 드러내면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했어요.
패턴 오브 인더스트리 시리즈에서 기능을 소거한 형태인 거네요?
네. 문양만으로 저란 사람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해봤는데. 헷갈리는 상황이에요. 지금 내가 뭐에 집중해야 되지. 어쨌든 지금의 관심사는 제가 하려는 이야기를 작업물로 전하는데 초점이 맞춰진 것 같긴 해요.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답변도 하신 적이 있어요. 공간과 사물, 사물과 사람 간의 관계성에 집중하신다고.
조형의 근거를 관계에서 가져온다는 얘기였어요. 가령, 저기 있는 조명의 경우는 사람과의 관계보다는 공간과 관계하는 접점이 더 크다고 판단하거든요. 근대 이후의 공간은 각진 형태가 많다 보니, 거기에 들어갈 사물 또한 공간과의 관계를 고려해 만드는 거예요. 모서리에 공존할 수 있는 형태로 말이죠. 여기 있는 브래킷 조명 같은 경우도 R 값(곡선)을 거의 쓰지 않아 각진 형태로 한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반대로 사람과 좀 더 접촉하는 테이블이나 스툴은 사람과의 관계성을 고려해 곡선을 가미했죠.
저는 보통 상업 공간을 방문하면 규모나 구조도 살펴보지만, 결국 제 눈높이와 잘 맞는 부분들에 시선이 조금 오래 머무는 편인데요. 그런 것들 중 하나가 가구죠. 저는 가구가 공간의 감도를 좌우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작가님은 가구가 공간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제작한 가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혹은 가구 전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둘 다 궁금하네요. (웃음)
이게 공간마다 다 다르기는 한데. 어떻게 말씀드리면 좋을까. 아, 음 그러면 우선 제가 아트퍼니처 쪽으로 작업을 하게 된 이유부터 말씀드리는 게 좋겠어요.
질문을 바꿔야겠네요. 아트퍼니처 작업을 하시게 된 이유는?
시장에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젠틀몬스터, 탬버린즈처럼 상공간이 뭐랄까. 소비 행위를 하는 공간에서 벗어나 문화적인 공간으로 바뀐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런 공간에 가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요. 꼭 미술관이나 갤러리라는 특정 장소에 방문했을 때만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게 아닌, 쇼핑을 하러 가서도 관람과 경험이 가능할 때 독특하면서도 재밌었거든요. 당시에는 그런 공간이나 요소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지만 분명수요가 있을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 있을 거라는 낙관에 기댔죠. 상공간이 문화화되는 시기, 아트퍼니처가 가교가 될 것 같았어요. 그 역할을 하고 싶어 아트퍼니처 작업을 하게 된 거죠.
문화적인 공간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상업 공간의 문화화라고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기능이나 목적에 국한된 디자인 언어로 새겨진 공간보다,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의 취향이 담긴 요소들을 담은 공간이 점점 더 많아지는 현상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공간에 새겨진 디자인을 통해 회화부터, 종국에는 예술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문화적 저변을 넓혀주는 공간을 문화적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더 직관적으로 말하면 매뉴얼화된 공간과 자율성이 높은 공간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은데. 음, 뭐가 있을까. 예시를 들어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어떤 프랜차이즈 카페 하나를 떠올려보면 되게 명확해요. 의자가 있고 카운터가 있고 동선이 딱 정해져 있죠. 저는 이게 강요처럼 느껴졌어요. 공간이 사람을 잡아채는. 과거 앤트러사이트 연희점을 갔을 때 했던 경험이 떠오르네요. 처음에 조금 불편했어요.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가는데 복도에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요.
맞아요.
근데 올라갔을 때 펼쳐지는 장면이 뭐라고 해야 할까요. 뭔가 신성한 기분이 들잖아요. 이게 뭐지, 싶은. 문화화 된 상업 공간은 미술관과 유사한 속성이 있는 거 같아요. 모든 걸 다 친절히 설명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그 안에서 요소를 발굴하려는 사람들이 찾아가고, 무언가를 발견하거나 경험할 때 기쁨을 얻는다는 점에서요.
요즘에는 자율성 높은 공간, 누군가의 취향이 담긴 공간, 이색적인 경험을 주는 공간들이 소위 ‘핫플’ 로 퉁쳐지고 소비되는 것 같아요.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야지 저 같은 사람도 작업을 계속할 수 있고, 한 주를 또 버티고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웃음) 자연스럽다고 보여요. 천편일률적이지 않아서 좋고요. .
지난번 인터뷰했던 요를레이 스튜디오는 일종의 과도기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공간이 다채로워지는 느낌이에요. 일상적인 예시를 들자면, 연인과의 데이트 코스가 예전에는 조금 뻔했던 거 같거든요.
그렇죠. 보통 영화관 갔다가 카페 가고 하는 식이었죠.
혹은 미술관도 있겠죠. 요즘에는 중간지대가 생긴 것 같아요. 클럽만 놓고 봐도 예전에는 강남, 홍대에 있는 술을 곁들이는 형태의 클럽이 많았다면, 요즘에는 정말 음악만 감상할 수 있는 클럽도 많아졌잖아요. 시대에 맞는 변화라고도 보여요. 생김새가 다르듯 삶의 패턴도 제각각이듯 말이죠. 다양한 경험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지는 건 그만큼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대의 흐름이 반영된 것 같기도 해요.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어요. 공간이 다채로워져 다양성이 확보되는 건지, 다양성을 존중하다보니 공간이 다양해지는 건지.
저처럼 철학을 전공한 사람은 을지로에 갈 일이 거의 없어요. 자재를 살피러 갈 일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뭐랄까. 흥미로운 공간이 생기면 저도 모르게 그 공간을 보러 을지로를 가게 돼요. 그러면 자연스레 자재들과도 눈을 마주하게 되죠. 그곳에서 오래 일하신 노동자분들의 모습도 보게 되고요. 공간 덕에 동선이 다채로워지고, 경험치가 확대되는 느낌이 들때가 많아졌어요. 저는 이런 상황을 선택지가 많아진다는 표현으로 정리하곤 해요.
듣고 보니 그러네요.
보통 작업실에는 얼마나 계세요?
거의 뭐 10시에 와서 7시에 퇴근은 지키려고는 하죠.
직장인들의 타임라인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웃음) 주말에는 뭐 하세요?
데이트요.
제 선입견일지 모르겠는데 저는 작가분들은 주말도 없이 사실 것 같았어요.
일이 있을 때는 주말 없이 살기도 하죠.
애인분과 데이트하실 때 ‘핫플’ 같은 곳도 다니시나요?
일단 ‘핫플’이 뭔지, 어딘지도 잘 몰라서요. (웃음)
SNS 피드에 많이 노출되거나, 주변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공간.
저는 제가 보고 싶은 게 있으면 가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공간이라고 해서 방문하지는 않아요. 그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업이 있다거나. 좋아하는 공간 스튜디오가 작업을 했다거나 하면 그 사람들의 시선을 보러 가는 거. 아니면 커피가 진짜 맛있다거나.
목적성이 뚜렷하시네요.
네. 목적성이 없으면 잘 안 가요. 동선도 꽤 신중하게 짜는 편이고요.
그렇구나. 작업실 근처에는 자주 가시는 공간 없나요?
행궁동 종종 가긴 하는데. 수원은 잘 안 돌아다니는 거 같아요. 수원에서 태어나고 수원에서 자랐어도. 여기 작업실 근처 산책은 자주 하는데 여기 말고는 서울을 많이 가죠. 근데 그러니까 계획도시보다는 작은 이벤트들이 많은 데 있잖아요. 한남동이라거나 연희동이라거나 성수는 이벤트가 너무 많긴 한데 거기도 골목을 좀 돌아다닌다든지.
아까 커피 말씀하셨는데, 커피 좋아하시나 봐요.
네. 즐겨 먹는 편이에요
혹시 연희동 라우터커피 아세요? 굉장히 협소한 장소인데요. 동네 주민분들이 정말 많이들 찾아오세죠. 반려견, 길냥이들도 자주 오고요. 여기 커피가 정말 맛있거든요. 제가 입이 까다로운 편이 아닌데요. 라우터커피에서 커피 몇 잔 마시고 다른 카페에 갔더니, 맛이 별로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더라고요.
궁금하네요. 거기서 보통 뭐 드세요?
필터 커피 마셔요. 원두가 되게 다양해서
좋아하시는 원두가 뭐예요?
에티오피아 게이샤, 에티오피아 시다모 룰루게타요. 저는 산미가 강한 원두를 좋아해요.
적어놨어요. 기억해둬야지. 저도 한 군데 추천해 드릴게요.
너무 좋죠.
홍대 근처에 있는 이너커피라는 곳인데요. 여기 브루잉 커피 맛이 진짜 좋아요.
저도 꼭 가볼게요. 마지막도 형식적인 질문이 될 것 같은데. 작가님은 주로 영감을 어디서 받으시나요?
그냥 평소에 재밌는 접근과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인 거 같아요.
예를 들면요?
얼마 전에 버스에 적힌 노선표를 봤는데요. 행궁동, 정자동, 탑동 같은 동네 이름이 세로로 나란히 쓰여있었어요. 근데 이게 제 눈에는 ‘행정탑’ ‘동동동’으로 보이더라고요. (웃음)
세로로 읽을 걸 가로로.
네. 여기에 저만의 내러티브를 곁들이면 이것도 작업이 될 수 있거든요. 어떤 글자를 어떤 방식으로 읽느냐를 통해 일종의 세대 간 차이를 보여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세대마다 읽는 순서가 다르잖아요. 시대마다 활자를 인쇄하는 방식이 달랐으니까요. 물론 이걸 제 작업 형태로 풀어낼 수 있는 주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이런식으로 사물을 관찰해요. 그리고 저만의 서사를 곁들이는 걸 습관처럼 하죠. 일상에서 재밌는 장면들을 포착하면 거기에 그냥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의미를 부여해 보는 식으로요.
학창 시절의 반골 기질 여전하신 것 같아요. (웃음)
오늘 인터뷰하면서 저도 조금씩 느낀 건데요. 지금까지 해온 작업의 이유를 톺아보니 일관된 무언가가 제 안에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렇게 흘러온 이유가 있었구나 싶은. 제가 한 작업의 과정과 서사가 다음 작업의 영감이 되기도 했고요.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인터뷰(대화)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시게 된 거네요. 특별히 좋아하는 디자이너는 없나요?
좋아하는 디자이너 있죠. 물론 있고 영향받은 사람도 있는데 이런 걸 말하면 항상 나중에 부끄럽더라고요.
알겠습니다. 오늘 인터뷰는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해요. 조만간 연희동에서 커피 한잔해요.
좋아요.
에디터 김승훈
인터뷰 최원서 www.oneseocho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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