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렵다 한국어 단어 학습!
작성 노운아 (盧韻芽)
도대체 언제까지 외워야 하는 걸까. 이 정도면 되겠지 싶어서 책을 덮어 버리고 어느 날이 되어서 또 누군가와 이야기를 해 본다.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즉시 사전을 뒤져본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또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어느새 나는 또 중얼거리고 있다. 영어 공부를 할 때 이런 경험은 누구나 있을 법하다.
그렇다면 한국어는 어떨까? 한국어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언어 공부에서 단어 암기는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도 꾸준히 이어가야 하는 작업이다. 단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 문법 오류의 비중보다는 단어 쓰임의 오류가 오히려 참을 수 없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물론 눈치 빠른 학습자들은 적당한 단어를 몰라도 그 뜻을 문법 형식에 맞춰 쉬운 단어로 나열하듯 풀어내면서 이야기를 할 순 있다. 그렇지만 더 높은 수준으로 전향하기 위해서 이 방법은 좋지 않다. 했던 말을 계속 반복해서 결국 상대방을 힘들게 할 뿐이다. 그만큼 어려운 것이 단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언어의 바다에 한없이 펼쳐진 모래사장의 모래만큼이나 끝도 없는 단어의 적정한 쓰임을 분별해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깊게 고민할 필요도 없다. 정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우리 모두 이번 생은 틀렸다. 다음 생은 이중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국적이 다른 부모 밑에서 태어날 수밖에…. 그렇다. 그만큼 문맥과 텍스트에 알맞은 단어를 쓸 때까지 기약 없는 연습의 문제는 이제 고통이다. 외국어 학습에서 우리가 쓰임에 맞는 단어를 입력하고 적정한 상황에서 출력하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외국어 학습에서의 문제점을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에 적용하여 단어 쓰임에 관한 다채로운 글을 찾아 과연 텍스트에 맞는 단어의 쓰임은 무엇인지 고민해 보기로 한다.
한국어에는 고유어, 한자어, 외래어, 외국어 단어가 각기 다른 비율로 섞여 있다. 그렇지만 한국어는 발음 표기법과 철자 표기법이 다르며, 한자어, 외래어, 외국어는 한국어 맞춤법에 따라서 표기를 하기 때문에 언뜻 봐서는 무엇이 고유어이고 한자어, 외래어, 외국어인지 정확히 분간하기가 힘들 때가 많다. 그래서 이번 패션 한국어Ⅱ에서는 외국어를 번역하지 않고 같은 뜻임에는 분명하나 직접 한국어로 표기한 외국어 단어가 과연 한국어와 일대일 대응하여 같은 단어의 뜻으로 작용하는지에 관해서 고민해 보려고 한다. 물론 본인의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갈 수 있으므로 전문성이 떨어지나 일단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라는 대의적 관점에서 한국어 고유 단어와 그것의 일대일로 상관되는 외국어 단어가 텍스트에서 어떻게 미묘한 단어의 의미 차이를 일으키는지 호기심의 일종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보그 코리아 2018년 9월호에서 재미있는 글을 발견하였다. 그중 일부를 추려서 아래와 같이 정리하였다. 제목은 High Rise라는 글이다.
[본문]
(1)
∎버켄스탁, 슬립온, 테바, 어글리스니커즈… 그동안 인기를 끈 슈즈는 우리 여자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신’세계를 선물했다. ∎이런 패셔너블한 아웃도어 슈즈가 스포츠 룩은 물론 드레시한 의상에 잘 어울린다 해도 과연 우리가 힐이라는 판타지를 포기할 수 있을까? ∎족저근막염, 무지외반증, 종자골염 등 온갖 발병치레를 해온 내가 3년 동안 가장 그리워한 건 맨발에 신는 아찔한 힐이었다.
(2)
∎3년의 재활 기간을 마치고 다시 높은 힐 위에 올라설 수 있게 된 내가 맨 먼저 찾은 구두도 ‘어느 정도는 낮아진’ 뮬과 슬링백. ∎내 경우 굽 높이보다 전족부의 압박이 발의 고통에 영향을 끼치기에 후족부에 여유를 줄 수 있는, 쉽게 말해 뒤가 트인 구두가 적당했다.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선보인 루이 비통 헤드라인(headline)은 뒤축을 컷아웃한 디자인의 슬링백이다. ∎흑백의 그래픽적 대비가 돋보이는 헤드라인의 앞코는 적당히 뾰족하고 라인 역시 꽤 날렵하며 9.5cm의 힐은 적절한 비율의 두께 덕분에 높이에 비해 안정적이다.
(3)
∎사실 북미 핵 외교 뉴스만큼 자주 등장하는 것이 멜라니아 트럼프의 아찔한 킬 힐이다. ∎그녀의 지위만큼 높디높은 힐을 볼 때마다 내 맘속 깊은 곳에서 킬 힐에 대한 욕망이 샘솟곤 하지만, 내 굽 높이가 슈퍼 ‘하이’에서 ‘로’로 내려오면서 50년대 지방시 모델의 구두 같은 복고풍을 사랑하게 됐다.
(4)
∎누군가 하이힐은 여성의 다리를 멋지게 만들어줄 뿐 아니라 세상에 대한 시야를 형성해 준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이런 슈즈는 내 옷차림을 발전시켜준다. 다시 말해 나 자신을 발전시켜주는 것이다.
보기만 해도 벌써부터 심장이 쿵쾅거린다. 글 배경으로 펼쳐진 사진이 한 사물을 가리키는 것 같지만 텍스트에서 보이는 단어의 개수가 너무 많아서 과연 한 사물을 가리키는 것이 맞는지 의아한 생각이 든다. 본인은 분석할 만한 부분이 있는 단어에 색을 표시해 두었다. 그리고 왜 글쓴이의 생각에 따라 크게 4개로 문단을 나눴다. 먼저 색으로 표시해 둔 단어를 축출하였다.
첫 번째 문단 두 번째 문단
-‘신’세계 -구두
-슈즈 - 어느 정도 낮아진 뮬
-힐 - 뒤가 트인 구두
-아찔한 힐 - 컷아웃한 디자인의 슬링백 높이
세 번째 문단 네 번째 문단
-킬 힐 -하이힐
-슈퍼 하이 -이런 슈즈
-로
이제 조금 글쓴이가 설명하려고 했던 어떤 사물이 무엇인지 짐작이 간다. ‘슈즈-> women’s shoes-> 하이힐’로 좁아지는 것이 아무래도 ‘신발->여성 구두-> 높은 굽’인 것 같다. 즉 구두를 묘사하는 다양한 단어가 모여서 구두와 관련된 국제 감각적 어휘로 이뤄져 있다. 즉 한 사물은 명사 신발로 통일할 수 있고 신발의 종류와 기능에 따라서 한국어 단어와 한국어로 표기된 외국어가 직접 쓰였다. 의미의 측면에서 단어를 분석해 본다. 어휘적/사전적 단어(lexical word)에 기준을 뒀다.
□신세계(新世界): 새로운 세계를 뜻하는 단어를 한국어 신발/ 신다와 동음이라고 하여 전혀 다른 의미의 신(靴)으로 처리하였다. 한자음 그대로 쓴다면 ‘화’세계라고 말할 수 있겠다.
□슈즈 (Shoes): 단수형 Shoe는 [슈/ʃuː]로 발음되고 복수형은 단수형 뒤에 –s를 붙여서 [즈/z]로 발음한다. 따라서 한국어로 슈즈라고 표기했다. 옥스퍼드 사전 정의를 보면 one of a pair of outer coverings for your feet, usually made of leather or plastic이라고 했다.
□구두: 주로 가죽을 재료로 하여 만든 서양식 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힐 (Heel) : 「3」 the raised part on the bottom of a shoe, boot, etc that makes the shoe, etc. higher at the back. (Oxford Advanced learner’s dictionary)
□굽: 「2」 구두나 운동화 따위의 밑바닥에 붙은 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왜 같은 색으로 단어를 묶었냐면 두 단어의 뜻은 동일하다. (그렇다고 100% 똑같다는 의미는 아니다) 비슷한 의미며 큰 차이점으로는 하나는 한국어고 다른 하나는 영어다. 인터넷에서 두 단어를 서로 대치해서 찾아보면 구두는 슈즈로 굽은 힐로 검색된다. 한 언어로 통일해서 써주면 좋을 텐데 패션이라는 전문적인 영역에서는 외래어든 한국어든 뜻이 같다고 하여 그 대상이 물리적으로 같지는 않은 것 같다. 패션 잡지 글쓴이는 세련된 감성을 드러내기 위해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단어를 화려하게 표현했다. 그래서 외래어와 한국어가 다채롭게 변용된 매우 화려한 텍스트가 탄생한 것을 아닐까 하고 본인은 추측한다.
외국어와 한국어가 뒤섞인 절을 축출해냈다. 그리고 외국어는 원래 철자로 고쳐서 표기해 봤다. 패션 한국어Ⅰ에서 확인해 본 형용사(descriptive verb) 또는 동사(action verb) 기능을 하는 접미파생어 ‘-하다’가 영어의 형용사에 붙어 체언 앞에서 이중 수식하는 재미있는 현상을 살펴봤다. 따라서 ‘–ㄴ/-한’으로 표기된 것과 체언과 체언을 연결하는 관형격조사 ‘–의’를 제외하고는 모두 외국어다.
∎아찔한 힐 아찔한 heel
∎어느 정도 낮아진 뮬 어느 정도 낮아진 mule
∎뒤가 트인 구두 Slingback
∎컷아웃한 디자인의 슬링백 높이 cutout한 design의 slingback 높이
∎킬힐 kill heel
∎슈퍼 하이 super high
∎로 low
∎하이힐 high heel
본문에 나온 이런 슈즈는 과연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진다. 철자로 적어 놓은 단어를 가만히 살펴보고 있자니 자꾸 동어반복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공통점이 있는 단어를 대등 표시해서 분류했다.
1. 아찔한 heel = kill heel
2. 어느 정도 낮아진 mule = low
3, 뒤가 트인 구두 = cutout한 design의 slingback 높이
4, high heel – super high
이렇게 분류해 놓고 보니 처음에 거론됐던 세 단어가 떠오른다. 신발, 여성화, 굽. 결국, 이 세 단어를 표현하기 위해서 다채로운 단어가 쓰였다. 더 재미있는 것은 단어를 직역하면 같은 의미지만 패션을 표현하기 위한 전문어 관점에서 보면 이 단어들은 직역과 상관없이 구두 종류를 분류하는 전문어이다.
이런 비슷한 의미를 지닌 단어들을 우리는 동의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완벽히 동일한 의미를 지닌 단어는 없기에 학문적으로는 ‘유의어’라고 칭하기를 선호한다. 여기서는 일단 동의어라는 정의로 기술해 나간다. 동의어의 생성 기준을 살펴보면 ①방언 차이에 의한 동의어 ②문체나 격식 차이에 의한 동의어 ③전문어에 의한 동의어 ④내포 차이에 의한 동의어 ④완곡어법에 의해 생성으로 나눌 수 있다. ‘신발’ 대신 ‘슈즈’라고 표현해서 얻을 수 있는 효과로 세련된 느낌을 패션 잡지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문체나 격식 차이에 의하여 신발을 슈즈라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국어교육에서는 이런 단어를 슈즈라고 쓰는 것보다는 신발이라고 순화하여 표기하라고 지침을 내릴 것이다. 그렇지만 동의어 생성 기준인 ⓹번에 초점을 두고 생각하면 ‘슈즈’의 하위어 슬링백, 뮬, 힐, 킬힐, 하이힐과 같은 개념을 포괄하기 위한 상위어라고 생각해 보면 굳이 슈즈를 신발로 순화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적어도 패션 잡지에서는 말이다.
이런 슈즈…의 의미는 글쓴이가 마지막 단락에서 심상으로 표현하였다. 여성의 인권 성장, 여성의 옷차림 발전과 같은 ‘여성화’의 ‘긍정적 의미’를 내포하기 위한 ④내포의 차이에 의한 동의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여성화 또는 구두라는 표현에서 현대 사회의 여성성이라는 특별한 의미가 크게 부각 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런 신발’보다는 ‘이런 슈즈’로 특별히 표현한 글쓴이의 의도를 이제 알 수 있다.
단어 학습은 극한의 작업이며 이것이 한순간에 이뤄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에 살펴본 경우처럼 텍스트에 맞게 감칠맛 나는 문장과 전문어가 뒤섞인 글을 대할 때마다 독자는 피곤함과 동시에 호기심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언어를 탐구하는 인내심만 있다면 그 피곤함도 유쾌하게 풀어낼 수 있음을 오늘 간단히 살펴보았다. 언어를 바라보는 감각적인 시선을 항상 환영하는 패션 한국어Ⅱ는 오늘 여기서 끝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