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한국어
작성 노운아(盧韻芽)
예전에 형태소를 분석하는 시험을 쳤다. 그때부터 시작됐다. 잠을 자려고 침대에서 뒤척거리다가 문득 그때 왜 그걸 분석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드는 단어들이 떠오르곤 했다. 이상하게도 불면증이 심해지면 과거의 어느 풀리지 않는 감정이나 사건들이 생생히 밀려 들어온다. 그런 날은 잠자기를 포기해야 한다. 형태소 분석에 관한 기억이 점점 생생해진다 싶으면 병적으로 벌떡 일어나서 책장을 넘겨보기도 한다. 아니면 조급한 마음에 포털 사이트에서 떠돌아다니는 지식을 검색해 보기도 한다.
‘압력밥솥’
맞아. 그 단어였다. 내가 압력을 나눴던가 나누지 않았던가.
이런 끝없는 지난 시간의 의심으로 날은 점점 밝아오곤 했다. 직관을 믿고 형태소 분석을 해 봤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왜 어려운 것일까.
그것은 매우 간단하다.
나는 한국인이므로 한국어의 통사적, 형태적 관점에서 한국어를 의식적으로 공부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공부를 해보지도 않은 것에 갑자기 직관적으로 형태·통사를 분석하려 하니 힘들 수밖에. 그렇지만 한국어 형태소 분석은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그리고 단어의 형태소 분석은 정말이지 지금까지도 필자의 밤잠을 설치게 한다.
다시, 왜 단어를 구분하는 것이 어려운 것인가. 이 매거진의 정체성, 패션한국어라는 관점에서 신문을 읽다가 본인은 재미있는 기사를 발견하였다. 중앙일보 기사다. 유명한 한국 브랜드 화장품을 소개하는 글이다. 해당 화장품은 자연의 진귀한 원료를 사용하여 만든 제품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그 미용 효과의 명성이 대단하다. 본인도 이 회사의 화장품의 성능을 익히 경험하였다. 과연 그 성능은 어떤 식으로 워딩(wording)되었을까. 기자의 글을 읽어보자.
[ 제품 홍보 ]
1) … 눈 속에서 피어나는 매화, 그 절정의 아름다움을 품은 럭셔리 뷰티 브랜드 설화수는 수분과 영양을 공급해 탄력 있는 피부 바탕을 선사…
2) …시그니처 안티 에이징 크림인 ‘자음생크림’과 같은 라인에 자음생수와 자음생유액이 추가돼 보습부터 영양, 탄력 케어까지 가능한 안티 에이징 …
본인은 기사 본문에서 대표적인 두 문장을 적어봤다.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키워드로 수분, 영양, 탄력, 보습이 사용됐다. 보습을 빼고 세 단어 모두 한자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으로 뜻을 확인하였다.
□수분 (水分) : 물기 (물氣 촉촉한 물의 기운) 명사
□영양 (營養) : 생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몸을 구성하는 성분을 외부에서 섭취하여 소화, 흡수, 순환, 호흡, 배설을 하는 과정. 또는 그것을 위하여 필요한 성분. 명사
□탄력 (彈力) : 탄성체가 외부의 힘에 대항하여 본래의 형태로 돌아가려는 힘. 명사
□보습 : 국어사전에 단어가 없다. ‘습기를 보호하다’ 또는 ‘습기를 보충하다’ 의미로 유추
그렇다면 이러한 좋은 성능을 선사하는 제품을 사용했을 때 그 예상 효과는 어떻게 표현됐는가.
1) 피부에 수분과 영양을 공급해 촉촉하고 탄탄한 피부 바탕을 선사한다.
수분= 촉촉 영양 공급= 탄탄한 피부 / 즉 이해하는 데 큰 무리가 없는 내용이며 외래어 남용이 없다. 좋다. 이 화장품 정말 순수하다 싶은 생각이 든다.
2) 손끝에서부터 탄력감과 수분감을 느낄 수 있는 자음생수는 오일을 바르는 듯한 매끄러운 질감…
이제부터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감感이 등장했다. 문제는 뒤에 있는 느끼다 동사와 계속 중첩되면서 사용된다. 한국 화장품의 –감感이 폭발한다. 기초 화장품의 질감(質感)을 살리기 위해서 단어에는 느낌이라는 의미의 感이 계속 사용된다. 탄력+감, 수분+감 이런 식으로 단어를 조어했지만 어쩐지 너무 남발한다는 생각이 든다.
3) 자음생유액은 피부에 부드럽게 발리면서도 흡수 후에 산뜻한 느낌을 준다.
이해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 그렇지만 -感을 이용해서 산뜻한 느낌을 청량感으로 쓰지 않아서 이 역시 조금은 순수하다고 볼 수는 있겠다.
4) 풍부한 영양감을 선사하지만 산뜻하게 마무리된다.
이 문장에서의 –감은 다소 어색한 느낌을 준다. 글쓴이가 홍보하려는 의미가 많으나 문장을 간결하게 쓰려 하다 보니 –感을 너무 많이 쓴 感이 든다고 필자는 자조해본다.
1) 자음생수와 자음생유액을 함께 사용하면 더 오래 지속되는 보습력과 탄력감을 경험할 수 있다.
강력(力)한 성능을 강조하다 보니 –력이 많이 붙어 있다. 정말 힘 있는 한국 화장품 힘찬 한국어 어휘다. 어휘 보습의 의미는 다소 불분명한데 거기에 –력까지 붙였다. 탄력은 원래 탄력이 하나의 단어다. 보습-력처럼 억지로 –력을 붙인 단어는 아니다. 그렇지만 탄력에 다시 –감感을 붙여놨다. ‘탄력을 느끼다’를 탄력감으로 다소 억지스럽게 조어했다. -감을 빼도 될 법할 텐데. 필자는 조심스럽게 혼잣말해 본다.
2) 시그니아 라인은 수선화의 강력한 생명력이 응집된 나르시스 스템셀 성분을…
생명력은 원래 생명을 유지해 나가는 힘이라는 의미로 한자어 명사에 –력을 붙이기는 했지만 억지로 붙인 단어가 아닌 생명력이 한 단어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필자 개인적으로 강력한 생명력에서 –력-력이 두 번 쓰이다 보니 무척 힘을 강조한 느낌이 들어서, 강한 생명력으로 고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감, -력이 붙은 단어를 국립국어원 사전에서 찾아보면 원래 –감과 –력으로 이루어진 단어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한 단어로 나오지 않는다. 불필요하게 많이 쓰는 –감과 –력은 한국어의 고유어 동사, 한자어 단어, 고유어 단어로 고쳐서 쓸 수 있다. 특히 –감 은 느낌 또는 느끼다와 중첩돼서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너무 느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느낌이다. 정말 감각적인 뷰티 한국어가 아닐 수 없다. 한국 뷰티의 효과를 이미 감각적인 한국어가 보증하고 있음을 텍스트에서 확인하였다.
저번 패션 한국어와 비교해보면 이번 뷰티 한국어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한국어의 특징으로는 한자어 단어가 많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화장품이라는 특성 때문에 어떤 느낌이라든가 효능에 초점을 두고 글을 쓰려다 보니 한자어가 많이 사용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한자로 단어를 조어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의미 표현으로 길어질 수 있는 단어를 한, 두 단어로 짧게 요약하여 나타낼 수 있다. 한국어의 많은 단어 중에 한자어 단어가 많다. 문제는 한자어가 –감/ -력 처럼 한자임이 분명해 보이는 것도 있지만 가끔 한자가 맞나 싶은 단어도 있다. 영어로 된 외국어나 외래어는 한국어로 적어놓으면 외래어인지 금방 알겠지만, 한자어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이 한자어로 형성된 단어를 어떻게 틀리지 않고 완벽히 형태소 분석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분명 100점을 맞을 것이다. 그렇지만 본인은 자신이 없다. 분명 또 형태소 분석을 하는 시험을 치고 난 후 불면증이 밀려올 때 해당 한자어 단어를 마주하면서 밤새도록 후회하는 시간을 보내리라. 그리고 완벽히 형태소 분석을 하더라도 보습력, 영양감과 같은 다소 작위적으로 한자어를 써서 만들어진 단어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머리가 점점 복잡해진다. 한국어 단어는 상상 그 이상이다. 이상 뷰티 한국어 끝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