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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밍북 Apr 24. 2018

버림받은 아내로서 남편에게 가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

메데이아/메디아 , Μήδεια, Mēdeia 연극 감상문

극작가: 에우리피데우스  

각색 및 연출: 로버트 알포디(헝가리) 

공연일시: 2017년 3월

공연장소: 명동예술 극장


  

사진 명동예술극장 공식 홈페이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비극은 너무도 비극적이다. 어떤 틈을 보이지 않는, 말 그대로 비극에 충실한 비극. 꽤 오래전에 나는 그리스 비극을 소개하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때 읽은 단 한 줄이 머릿속에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자기가 낳은 자식을 자기 손으로 죽인 여인.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에 자신의 아이를 죽여야만 하는 걸까. 

  그러다 시간이 흘렀고 나는 어느 날 서점에서 고대 그리스 비극을 실은 책을 샀다. 소설의 역사와 연극의 역사를 단순히 태동기로 비교하자면 소설은 그 역사가 짧다. 연극은 시와 마찬가지로 긴 시간의 역사가 있으니 고대 그리스 시대의 연극은 살아있는 유물을 보는 것과 다름없다. 고대 그리스 비극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관람할 기회를 얻는 것도 어렵다. 그리고 현재 관점에서 보면 그 내용이 조금 억지스럽고 심각히 극적이다. 


  ‘Deus ex Machina, 기계장치의 신’이 등장하여 모든 갈등을 한꺼번에 해결한다는 구조가 지금 보면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든다. 흥행성에서도 의문을 품을 법도 하다. 어쨌든 나는 이러한 고대 그리스 극의 희소성을 고려하여 대본을 읽는 것에 만족하였다. 구입한 책은 고대 그리스 연극 대본에 충실하였다. 따라서 등장인물과 정령이 시를 읊듯이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설정이 꽤 흥미롭게 느껴졌다.      


   ‘남편이 결혼한다. 메디아를 버리고 한 나라의 공주와 결혼한다!’ 

메디아는 맨 정신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이 상황에 맞서 남편에게 복수할 생각을 한다. 기승전결을 무시한 채 대본은 바로 갈등의 최고점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그녀는 끊임없이 정령들에게 자신의 행위가 합당한 것이라는 일종의 자기 합리화 적 화술을 펼친다. 극은 이미 ‘복수’를 하겠다는 메디아의 결심을 이루기 위한 투쟁적 대사들로 채워져 있었다.      

 영화배우 이혜영을 내세운 메디아. 명동 예술 극장의 연간 스케줄을 확인하는 것이 일종의 습관으로 굳어진 나는 ‘메디아’를 본 순간 바로 예매를 해버렸다. 대본으로만 읽은 메디아를 직접 관람할 기회. 그리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해석한 헝가리 출신 연출가의 메디아는 어떨까를 상상하며 무대를 관람하였다. 

 

  대본으로 접한 메디아라는 여성은 내 개인적으로 남편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선택한 사랑에 배신당한, 지극히 여성적인 인물일 거라고 상상했었다. 하지만 이혜영이 연기한 메디아는 극 초반부터 독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극한 감정을 뿜어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감정의 분출이 너무도 강해서 오히려 비극성이 떨어졌다. 물론 그녀의 처절한 감정 분출을 이해할 순 있다. 왜냐하면, 그녀는 사랑을 위해 자신의 혈육까지 죽이고 남편을 선택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녀가 행한 극악한 행위에만 초점을 맞춰 그녀를 설명할 순 없었다. 이 대본이 써진 시대는 기원전 431년이라고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누군들 그릴 수 있었을 시대였을까.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에우리피데우스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깨진 믿음에 저항하며 복수로써 남편에게 자신이 겪은 혼란과 분노를 보여준다. 그 행위의 결과로 남편 앞에서 두 아들이 죽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 모든 악행을 저지르고 홀연히 마차를 타고 사라진다. 

 

  남편의 불륜으로 버림 당한 비참한 여인에서 점차 도덕성을 잃은 잔인무도한 여성으로 변한 메데이아를 통해서 극작가는 무엇을 보이려 했을까. 굉장히 좁은 관점에서 메디아를 평가하자면 그녀는 그 시대의 보기 드문 주체적 여성상이라고 생각된다. 잔인한 행적을 일단 접어두고 메디아는 철저히 자기 생각에 맞춰 행동한 여성이었다. 이것이 그리스 비극 극작가들 사이에서 현재까지도 그가 위대한 작가로 칭송받는 여러 이유 중에 하나다. 그는 현실적인 여성 인물을 매우 잘 묘사해냈다. 하지만 더 큰 관점에서 보면 메디아의 혼란을 통해서 본 무너진 가치관, 그것이 인간의 도덕이나 법칙에 무심한 신들의 세계와 배신과 분노가 극단적인 폭력으로 이어지는 어두운 인간 세상을 냉정하게 비추어 낸다고 평가하는 관점도 있다.      

  

   그럼 이번에 상연된 메디아에서 이러한 점들을 나는 느낄 수 있었나. 

 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다소 아쉬운 점이 든 연출과 대본의 각색이었다. 연출가 로버트 알포디는 비극의 끝 장면을 원작과 매우 다르게 구성하였다. 아들을 죽인 메디아는 남편 이아손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아직도 이 끝맺음에 많은 아쉬움이 든다. 에우리피데우스가 만든 여성의 캐릭터가 어떤 평가를 받는 극작가인지를 연출가가 더 고려했다면 남편의 손에 의해 힘없이 살해당하는 부인의 모습으로 연출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다면 로버트에 의해 재창조된 결론은 과연 어떤 의미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그래서 나는 로버트 알포디가 어떤 의도로 이 극을 연출했는지를 찾아보았다.


  그는 이 메디아를 ‘러브 스토리’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이 관점에 따라 철저히 메디아를 분석하였다. 이 지점은 나도 관객 또는 독자로서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나도 처음에는 메디아가 지극히 여성적인 인물일 거라 예상했다. 다만 연출가는 이 메디아를 ‘용서받을 수 없는 여인’이라는 관점에서 인물을 분석하였다. 그러므로 그녀는 어떠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용서받을 수 없는 여인, 사랑에 배신당한 초라한 여인이라는 한계성을 지닌 인물로 연출된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남편 이아손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이 어쩌면 다른 의미의 구원이 될 수도 있었다. 나는 그의 연출 의도를 이렇게 이해하였다.  그런데도 이 결말은 나의 아쉬움을 설득하지 못했다. 메디아를 남편에게 살인당하도록 설정하지 않아도 그녀에 대한 평가는 관객이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원작에서 그녀가 홀연 불 마차를 타고 떠나는 것이 극작가가 노린 점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비극을 관람한 점, 영화배우 이혜영을 가까이서 본 점.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인상적인 점도 많았던 연극, 메디아. 

 내가 정한 제목처럼 단순히 생각해보면 남편이든 아내든 배우자에게 버림 당한 존재가 가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바로 둘 사이에서 나온 자식을 제 손으로 죽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나는 결혼하지 않아서 이런 생활의 염려를 느낄 필요가 없는 처지지만. 어쨌든 현재까지도 에우리피데우스의 비극, 메디아는 여러 의미에서 회자하는 연극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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