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모시는 다래어멈의 집에 온 지 사흘 만에 잠에서 깨어났다. 아픈 곳은 없었지만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 안개가 잔뜩 끼어있는 듯 답답했다. 손으로 눈을 비벼 보았지만 좋아지지 않았다. 겨우 물건의 색깔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눈도 곧 나을 게야. 아무 걱정 하지 말자꾸나.”
다래어멈은 밝은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달모시는 완전히 눈이 멀게 되었다. 혼자선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다래어멈은 달모시의 손발이 되어 주었다. 세수를 하고 밥을 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방문을 나와 마당을 걷는 것까지, 달모시는 모든 것을 다래어멈에게 의지했다. 다래어멈은 달모시를 오래 전 잃어버린 손자로 여기며 귀한 보물을 다루듯 돌보았다.
양질과 양적은 보름마다 번갈아 가며 다래어멈 집을 다녀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죽현도 다녀갔다. 새미어멈은 종종 직접 만든 옷가지를 보내어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식량과 필요한 물건은 금아간이 챙겨주었다.
사람들이 다녀가는 날이면 달모시와 다래어멈은 궁금했던 소식들을 들을 수 있었다. 양질과 양적은 차례대로 혼인을 하였고 죽현의 집에는 어린 아이들이 생겨났다. 미설은 꾀꼬리로 변신하여 날아가 버린 후 다신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부리산은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으며, 달못에는 여전히 가엾은 달을 찾는 백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부리산에서와 마찬가지로 달모시는 보살펴주는 사람들 덕분에 부족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달모시는 늘 우울했다. 꿈에도 그리던 산 아래 세상에 왔지만 여전히 갇혀 살고 있는 자신의 신세가 슬펐다. 무엇보다도 눈이 보이지 않아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달모시는 지팡이를 짚으며 걷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그나마 부지런하고 유쾌한 다래어멈 덕분에 오두막에는 생기가 돌았다. 다래어멈은 하루 종일 호미를 들고 다니며 산나물과 약초를 캐 오고 텃밭도 일구었다. 밤에는 베를 짜고, 비가 오는 날에는 바느질을 했다. 달모시가 감기에 걸리면 정성스레 약도 달여 먹였다.
달모시의 유일한 즐거움은 다래어멈이 일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호미로 흙을 파는 소리, 베를 짜는 소리, 아궁이에서 마른 나무가 타는 소리, 마당을 쓰는 소리, 집 뒤꼍 개울에서 빨래를 하며 두드리는 방망이 소리……. 이 소리들만이 달모시의 우울한 마음을 종일토록 다독여주었다.
다섯 번의 겨울이 지나고 새눈이 돋는 봄이 왔다. 산나물이 돋기 시작하는 봄을 다래어멈은 무척 좋아했다. 다래어멈이 텃밭에 나가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냉이를 캐노라면, 달모시는 사각사각 흙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마당 가 너럭바위 위에 앉아 있곤 했다.
어느 날 아침 일찍, 다래어멈은 아침상을 치우고 나서 약초를 캐러 산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달모시야, 오늘은 뒷산에서 약초를 좀 캐어 올 테니 날이 더 녹을 때까지 방에서 쉬고 있으렴.”
다래어멈의 오두막 뒷산에는 철마다 갖가지 약초가 자랐다. 약초는 다래어멈에게 매우 요긴한 것이었다. 갓 돋아난 보드라운 약초 잎은 나물 반찬으로 만들어 달모시에게 먹일 수 있었다. 약초 뿌리는 잘 말려 두었다가 달모시나 자신이 아플 때 달여서 약으로 썼다. 그뿐 아니라 죽현과 금아간에게도 보내주었는데, 죽현과 금아간은 다래어멈의 약초를 매우 귀하게 다루었다. 그러니 약초는 다래어멈의 가장 즐거운 취미가 아닐 수 없었고, 새순이 돋아나는 봄철이면 다래어멈의 두 발은 산으로 가고 싶어 안달이 나곤 했다.
“네, 할머니. 지금쯤이면 약초가 많이 돋았겠네요.”
달모시는 아궁이 앞에 놓인 조그만 통나무 의자에 앉아 대답했다.
“아마도 지천으로 널렸을 게다. 할미가 멀리 가진 않을 테니, 할미가 필요할 땐 철 막대로 철판을 세게 치는 것 알고 있지?”
달모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의자 옆에 놓인 철 막대와 철판을 들어 올려 서로 부딪쳐보였다. 땅땅땅땅 요란한 소리가 났다.
다래어멈은 커다란 베주머니를 왼쪽 어깨에 걸고 오른손에는 호미를 잡았다. 그리고 마당을 벗어나 산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산중턱까지 오르자 다래어멈은 눈을 두리번거렸다. 그곳은 봄마다 산나물이 무더기로 돋아나는 곳이었다. 다래어멈은 금세 산나물이 소복이 모인 곳을 찾아냈다. 다래어멈은 반가워서 싱글벙글 하며 주머니를 내려놓고 그 옆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곤 호미를 꺼내어 신 나게 나물을 캐기 시작했다.
다래어멈은 보물을 따라가듯 산나물과 약초를 쫓았다. 봄나물은 초록 보석처럼 마른 낙엽을 뚫고 솟아있었다. 다래어멈은 달모시를 홀로 남겨두고 자주 집을 비울 수는 없었기 때문에 자꾸만 탐이 났다.
“올라온 김에 가득 채워서 가야겠어.”
다래어멈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자꾸만 초록 무더기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햇살이 점점 따뜻해져왔다. 다래어멈의 이마와 콧잔등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혔다. 다래어멈은 문득 그림자가 짧아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가 머리 위에 와 있었다.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켜 보니, 이미 너무 멀리까지 와 있었다.
“에구머니나! 이 일을 어째? 돌아가려면 반나절은 걸리겠네!”
다래어멈은 울상이 되어 허겁지겁 주머니를 어깨에 둘러메었다. 그리고는 집을 향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같은 시간, 달모시는 마당으로 나와 햇볕 아래 섰다. 햇볕의 세기를 느껴서 해가 어디쯤에 있는지 알아맞혀보려는 것이었다. 금세 정수리가 따뜻해졌다. 해는 바로 머리 위에 걸려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달모시는 지팡이를 더듬어 고욤나무 아래 너럭바위로 가서 앉았다.
다래어멈이 집을 비우는 일은 많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집을 비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적막했지만, 달모시는 이 고요함이 싫진 않았다. 햇살은 따뜻했고 이따금 포근한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와 귓전을 스쳤다. 산새 소리가 들리고, 윙윙거리는 꿀벌 소리도 들렸다.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문득 어디선가 꾀꼬리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달모시는 귀가 번쩍 뜨였다.
‘무지개!’
달모시는 떨리는 손으로 바위를 더듬으며 일어섰다. 꾀꼬리는 먼저 두어 번 ‘호이오.’하고 길게 여운을 두며 소리를 냈는데, 그 소리는 마치 사람을 부르는 소리 같았다.
그런 다음에는 꾀꼬리 본래의 소리로 지저귀기 시작했는데, 그 소리 또한 여느 꾀꼬리와는 달라서 마치 사람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달모시는 지팡이로 땅을 더듬으며 꾀꼬리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하여 걸어갔다.
‘무지개가 틀림없어. 할아버지가 무지개를 보내신 거야.’
달모시가 다가가자, 꾀꼬리가 가볍게 날아올랐다. 꾀꼬리는 다음 나무로 옮겨 앉더니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달모시도 꾀꼬리 소리를 따라 다음 나무로 옮겨 갔다. 달모시가 따라잡으면 꾀꼬리는 달아났다. 꾀꼬리는 달모시가 자신을 따라잡을 때까지 기다려주면서도 달모시에게 쉴 틈을 주지 않고 옮겨 앉았다.
달모시는 점점 오두막에서 멀어졌다. 달모시의 모습도 꾀꼬리의 노랫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얼마 후 꾀꼬리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달모시의 모습도 꾀꼬리 소리와 함께 사라져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