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모시는 점점 부리마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고된 여행에 달모시의 몸은 상할 대로 상해 있었다. 달모시는 자신이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달못에 이르지 못하고 어딘가에 쓰러져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두려워졌다.
‘이 꽃을 어머니께 드리고 죽을 수만 있다면…….’
달모시가 바라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달모시는 뜨거운 태양 속에서도 쉬지 않고 걸어 마침내 부리마을 근처 작은 동네에 이르렀다. 조금 마음을 놓은 달모시는 한낮의 햇볕을 피했다가 다시 걷기로 하고 나무 그늘을 찾아 들어갔다.
아이들의 노는 소리가 골짜기마다 메아리쳤다. 이곳에서도 아이들은 노래를 불렀다.
사로에는 꽃의 여인 화령이요
하늘에는 달의 정령 선아라네
달아달아 귀를 닫아라
네 빛으로 아기를 빚어주면
사로의 꽃은 너를 묻으리
달모시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아이들의 노랫소리에 맞춰 흥얼흥얼 콧노래를 불렀다. 그때, 어디선가 타박타박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는 달모시 앞에서 멈추었다. 그러더니 바로 머리 위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보시오. 앞으로 그 노래는 부르지 마시오. 이사금께서 그 노래를 지은 이를 잡아들이라는 명을 내리셨소.”
달모시는 흠칫 놀라 몸을 세워 앉았다.
“나이가 열대여섯에, 남자이고, 두 눈을 잃은 분이라면 더욱 조심해야 하지요. 이사금의 무사들이 그를 뒤쫓고 있으니까요.”
달모시는 낯빛이 창백해진 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여인은 달모시 앞에 쪼그려 앉더니 달모시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잠시 후 여인이 말했다.
“칠 년이 지났지만 난 알아볼 수 있어. 달모시 맞지?”
달모시는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 이 세상에서 달모시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더구나 젊은 여인들 중에는 아로와 아로의 시녀들, 그리고 재리뿐이었기에 달모시는 등골이 서늘해지고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누구시오?”
달모시는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달모시, 나 재리야!”
달모시는 자신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난 노래를 만든 사람이 너일 줄 알았어. 네가 살아있다는 걸 알고 내가 어땠는지 아니?”
재리는 반가움과 감격으로 울먹이며 달모시의 손을 덥석 잡았다. 달모시는 곧 마음을 가라앉히고 살며시 손을 빼내며 물었다.
“또 함정인 모양이구나. 이사금의 무사들은 지금 어디 있지?”
달모시의 목소리와 표정은 흔들림 없이 평온했다.
“아니야, 달모시! 제발 나를 믿어줘! 함정도 아니고 무사들도 없어. 난 너를 살리려고 하는 거야. 난 네가 사라진 후부터 어머니를 따라 별궁 바느질아치로 일하고 있어. 이 노래를 지은 젊은이가 부리마을로 온다는 소식을 별궁에서 들었단다. 그래서 내 남동생 모비에게 눈 먼 젊은 남자를 보면 곧장 나한테 알려달라고 말해 두었지.”
“누나 말이 맞아요.”
열 살 남짓 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리의 동생 모비였다. 모비는 재리 옆에 서서 고개를 끄덕이며 재리의 말을 거들었다.
“제가 놀다가 형을 보고서 누나에게 알려주었어요.”
“이제 믿겠니? 난 집에서 일을 하다가 어머니 몰래 빠져나왔어. 널 구하려고 말이야.”
재리는 다시 달모시의 손을 꼭 잡았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무사들이 올 거야.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해. 하지만 그 전에 넌 뭔가를 좀 먹어야겠구나. 이런 몸으로 어떻게 여행을 했니?”
재리는 앙상한 달모시의 손을 잡은 채 울음을 터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달모시의 몸은 누가 보아도 지칠 대로 지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달모시의 감은 눈에서도 눈물방울이 맺히더니 또르르 흘러내렸다.
재리는 달모시의 손을 잡아끌고 버려진 빈 집으로 데려갔다. 달모시와 모비가 빈집에서 기다리는 동안 재리는 집으로 달려가서 별궁에 가져가려고 지어놓은 새 옷과 먹을 것을 가지고 돌아왔다. 재리는 먼저 달모시가 허기부터 달래도록 했다. 식사를 끝내자 이번에는 새 옷을 건네주며 옷을 갈아입게 했다. 모비가 달모시를 도와주었다. 옷을 갈아입는 동안 재리는 부엌방으로 옮겨가서 기다리며 말했다.
“달모시, 난 네게 큰 죄를 지었어. 정말 미안해. 비단 옷과 구슬을 준다기에 묻는 대로 다 말해버리고 말았어. 너를 죽이려고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단다. 다음 날 어머니한테서 얘기를 듣고 얼마나 놀라고 후회했는지 몰라. 난 그날 이후로 부리산엔 올라가지 못한단다. 어떻게 달님을 보겠니?”
재리는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어느새 옷을 다 갈아입은 달모시가 다가와 재리의 어깨에 자신의 손을 살며시 얹었다.
“울지 마, 재리야. 난 널 미워하지 않아. 그러니 너도 이젠 너 자신을 용서하렴.”
재리는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쳐낸 후 달모시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빨리 떠나자. 시간이 없어.”
재리의 말에 달모시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도 가겠단 거니?”
“응. 나와 함께 있으면 더 안전할 거야. 내가 널 꼭 달님께 데려다 줄게.”
옆에 있던 모비도 재리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누나, 나도 갈래. 나도 도와 줄 수 있어.”
“그래, 모비야, 우리 같이 가자. 우리가 달모시를 구하는 거야.”
재리가 웃으며 모비의 어깨를 안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