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달모시가 살아있다

by 분촌

마차는 큰 길을 달려가다 속도를 낮추어 저잣거리로 들어섰다. 이사금의 행차에 백성들이 길 옆으로 비켜섰다. 백성들의 표정은 얼음장처럼 싸늘했다. 모두가 미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아로를 흘겨보았다. 아로는 백성들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 사로국은 살기 좋은 곳으로 소문난 나라였는데, 누구 때문에 이 꼴이 된 게야?”

한 노인이 말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장정 하나가 노파의 말을 받았다.

“사로국은 지옥이 되었어요. 우린 더 이상 지옥에서 살지 않겠어요.”

“암, 그래야지. 그래야 하고말고.”

또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백성들은 너나없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백성들의 말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지만, 아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앞만 바라보았다. 그러나 얼굴은 백짓장처럼 창백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배어나왔다.

조금 있으니, 이번엔 어디선가 작은 돌이 날아왔다. 돌은 아로가 앉은 자리를 비껴가, 햇빛 가리개를 받친 기둥에 부딪쳤다. 그리곤 마차 바닥으로 떨어져 아로의 발 앞으로 굴러왔다. 아로는 얼이 나간 표정으로 돌을 내려다보았다. 서리가 기겁을 하며 아로를 감싸 안았다.

“궁으로 돌아가세!”

서리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마부를 향해 외쳤다. 마부는 다음 갈림길에서 고삐를 돌려 말을 궁궐 쪽으로 몰았다. 저잣거리를 벗어나 행인이 적은 길목에 이르자, 아로는 참았던 눈물을 떨어뜨렸다. 아로는 발 앞에 떨어진 돌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궁궐로 돌아간 아로는 서리를 시켜 한 무리의 무사들을 불렀다.

“선왕을 모함한 자를 잡아들여라. 내가 직접 죄를 물어 백성들 앞에서 처형할 것이니 살려서 데려오너라. 한시가 급하니 당장 서둘러라!”

아로의 명을 받은 무사들이 방에서 나가자 죽현이 들어왔다. 죽현이 방에 들어섰을 때, 아로는 의자에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죽현이 맞은 편 의자에 앉자, 아로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할아버님, 백성들의 눈이 무섭습니다. 그 수많은 눈에는 오직 저를 향한 미움뿐이었어요.”

탁자 위에 놓인 아로의 두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로는 떨림을 멈추려고 주먹을 꽉 쥐고 있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마마, 그러니 지금이라도 일을 바로잡으셔야지요. 부디 달님을 풀어주세요.”

죽현은 애원했다. 그러자 아로는 잠시 멍한 눈빛을 한 채 죽현을 바라보더니, 창밖으로 힘없이 시선을 돌렸다.

“할아버님은 달못에 가보셨습니까?”

아로는 창밖을 응시하며 혼잣말 하듯 말했다.

“달은 죽어가요. 풀어준다고 해서 살아나진 못할 거예요. 이젠 너무 늦었죠. 할아버님도 아시면서 왜 자꾸만 달을 풀어주라고 하죠?”

갑자기 아로는 죽현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사나운 눈빛이 되어 소리쳤다.

“저를 괴롭히려고 그러시죠? 할아버님은 한 번도 제 편을 들어주지 않으셨어요. 백성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니 속이 시원하신가요? 제가 어서 빨리 비참한 꼴이 되면 좋겠죠?”

죽현은 기가 막힌 듯 할 말을 잃은 채 아로를 바로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로는 혼이 빠진 얼굴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방안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제가 죽으면 반역을 꾸몄던 길선이 돌아와 사로국을 차지할 거예요. 할아버님께선 그 교활하고 비루한 자가 사로국의 새 주인이 되길 바라세요? 부모님과 전 어떻게 될까요? 백성들을 열다섯 해나 끔찍한 고통에 빠뜨렸다는 불명예가 영원히 우리 가문을 따라다니겠죠! 저뿐만 아니라 우리 왕족이 다 죽게 될지도 모르고요.”

아로는 앙칼진 목소리를 드높였다.

“전 그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할아버님도 저의 핏줄이 아니십니까? 아버님의 유언을 잊지 말아주세요. 저를 지켜주세요!”

“마마, 사로의 왕실은 수백 년 간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열다섯 해의 고통이 비록 크지만, 지금이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노력하신다면 백성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든 달님을 되살려야 합니다!”

죽현은 불안에 떨며 방안을 돌아다니는 아로에게 다가갔다.

“마마, 백성들을 속이고 죽인 가문은 역적이나 다름없습니다. 불명예가 두렵다 하셨습니까? 백성을 죽인 왕이 되는 것보다 더한 불명예는 없습니다. 백성을 속이고 자신을 속여 거짓 명예를 누리고 계시니 행복하십니까?”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는 분노를 억누르듯 이를 악물고 있었다. 아로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죽현을 바라보았다. 아로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서리가 뛰어들어왔다.

“마마, 노래 지은 자를 알아냈다고 하옵니다!”

아로의 눈빛이 금세 바뀌어 독기를 머금었다.

“그래, 어떤 자라 하더냐?”

“눈이 먼 젊은이라 하옵는데, 나이는 열대여섯 쯤 되어보이고, 달못으로 가고 있다 하옵니다. 무사들이 다른 소국들까지 다니며 아이들을 추궁해보니, 아이들의 대답이 모두 한결같았다 하옵니다.”

서리의 말을 듣던 아로의 양미간이 좁아졌다. 아로는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열대여섯 나이의 소민들은 달을 본 적도 없는데, 무엇을 안다고 그런 노래를 지어 부른단 말이냐? 눈이 먼 채로 달못까지 혼자서 가다니 깊은 인연이 아니고서야 그럴 수 있겠느냐?”

서리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놀라운 소식에 정신이 팔린 아로와 서리는 죽현이 창백한 얼굴로 급히 방을 빠져나가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달모시가 살아있다면 그 나이쯤 되었을 것입니다.”

서리의 목소리는 가느다랗게 떨렸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놈이 분명하다.”

아로 역시 이맛살을 잔뜩 찌푸렸지만 목소리는 반가움과 희망으로 들떠있었다.

“참으로 질긴 목숨이 아니냐? 수많은 화살을 맞고 절벽 아래로 떨어졌는데도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했었지. 과연 무서운 생명력이로구나.”

아로의 입가에 쓰디쓴 미소가 흘렀다.

“그놈과 나의 인연도 참으로 질기지 않느냐? 이젠 이 지긋지긋한 인연을 끝내야겠다.”

아로는 골똘한 표정이 되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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