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OOSTERS CREW

취향의 기준을 세우는 일

서벼리 부스터스 디자인 실장의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by 부스터스 boosters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공간에 첫 번째 붓질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디자인은 기획의 첫 단추를 꿰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들 때에는 무한한 상상력을 담는 그릇이 되어주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이 길이 맞는지 방향을 잡아주는 가이드가 되기도 하죠. 브랜든과 이퀄베리, 두 개의 브랜드와 부스터스라는 기업까지. 보이지 않는 브랜드 가치를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디자이너 서벼리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벼리님 1.jpg

Q. 안녕하세요 벼리님, 자기 소개 한 번 부탁 드립니다.


벼리 안녕하세요. 부스터스 디자인실을 리드하고 있는 서벼리입니다. 부스터스라는 기업과 자사 브랜드 전반의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저는 디자이너를 통역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각자 다른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도록 돕는 역할이죠. 디자이너로 15년 넘게 일하며 자연스럽게 정립된 저만의 디자인 철학이기도 합니다.


Q. 디자이너가 통역하는 사람이라는 발상이 흥미롭습니다. 더 설명해주시겠어요?


벼리 많은 분들이 디자인을 ‘입히는 단계’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다르게 봐요. 디자인실은 기획안을 전달받아 결과물을 만드는 조직이 아니라, 기획이 어떤 질문에서 출발했고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를 함께 설계하는 조직이라고 믿습니다. 단순히 요청을 처리하는 구조에서는 디자인이 쉽게 취향의 문제로 흘러가요. 반면 목표가 분명한 상태에서 디자이너가 초반부터 레이아웃을 그리고 판단 기준을 함께 세우면 달라집니다. 결과물의 완성도가 개인의 감각이 아니라, 팀이 합의한 방향 위에서 만들어지거든요.

그래서 저는 디자이너가 제품의 시작부터 중간, 그리고 마지막 단계까지 함께하며 전체 흐름을 그려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럴 때 비로소 목표에 닿는 퀄리티의 아웃풋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Q. 이렇게 생각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벼리 저도 사회초년생 때부터 이런 생각을 갖고 있진 않았어요. 기획자, 마케터, 대표님 모두 같은 방향을 말하지만 사용하는 언어는 다르거든요. 이 차이가 쌓이면 오해가 되고, 오해는 결국 ‘왜 이렇게 왔다 갔다 해?’라는 불신으로 이어집니다. 더 심각한 건 의도대로 나오지 않은 결과물을 모두가 불만족스러워한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언젠가부터 ‘내가 기획자와 컨펌자 사이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하며 정확한 소통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Q. 디자인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벼리 의사소통은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한 번 말한다고 해서 의도가 정확히 전달되긴 어렵거든요. 상대방이 이해했다고 착각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계속해서 집요하게 말을 걸어야 합니다.

브랜드 비주얼도 마찬가지예요. 멋진 화보 자체도 중요하지만, 비주얼은 제품 기획에서 시작된 스토리와 연결돼야 해요. 그 스토리를 마케터의 해석, 디자이너의 시각화 경험이 어떻게 호흡하느냐가 관건이죠.

저는 이 과정을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일에 비유하곤 해요. 다이얼을 돌리고, 되감고, 어느 지점에서 멈출지를 결정하는 일. 그 섬세한 조율의 과정이 바로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Q. 그래서 디자인이 초반부터 함께한 기획의 결과물이 더 탄탄한 거군요.


벼리 맞아요. 기획이 모두 끝난 뒤 결과물만 디자이너에게 전달되면, 어찌저찌 결과는 나오겠지만 가장 좋은 결과는 나오기 어렵죠. 기획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포장하게 되니까요.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이 생기는 문제가 ‘왜 이 색이 안 되는지’, ‘왜 이 구성이 불편한지’에 대한 판단 기준이 사라진다는 점이에요. 그러다 보면 수정은 많아지고, 논의는 취향의 영역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반대로 디자이너가 기획의 초반부터 함께하면, 무엇을 위해 이 선택을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그 기준이 있을 때 팀 전체가 같은 판단 위에서 움직일 수 있고, 불필요한 시행착오도 줄어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디자인실의 역할은 보기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각자가 다른 언어로 말하는 상황 속에서, 무엇이 기준이고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를 통역하고 함께 설계하는 역할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벼리님 2.jpg


Q. 얘기를 듣다 보니 부스터스에 조인하신 계기가 궁금해졌습니다.


벼리 여러 회사를 다니며 깨달은 건, 결국 그 회사의 성패를 가르는 건 소통 문화라는 점이었어요. 소통이 얼마나 잘 정착돼 있는지가 조직의 완성도를 결정하더라고요.

부스터스는 처음 CSO와 가볍게 티타임을 하며 이야기를 나눴을 때부터 톤이 잘 맞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후 한 달쯤 지나 진지하게 진행된 CMO와의 인터뷰도 인상 깊었고요. 고객 개개인의 감각과 취향을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지, 그리고 브랜드사가 가져가야 할 ‘감도의 기준’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은 상태였어요.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내 소통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생각이 같았고, 그 지점이 부스터스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Q. 이번에 부스터스 CI도 개편하셨잖아요. 프로젝트를 이끌며 가장 강조하신 점은 무엇이었나요?


벼리 부스터스가 리뉴얼을 결정한 목적과 타이밍이 굉장히 적절했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우리가 커졌으니 바꿔야 하지 않을까’라는 흐름이 아니었거든요. 그동안의 성장 과정을 응축해 한 단계 더 도약하고, No.1 글로벌 커머스로 나아가겠다는 포부를 담아내는 작업이었어요. CI 리뉴얼은 팀원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인덱스가 되어야 한다는 목적도 분명했고요. 그 목적이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방향을 잡고 디렉팅하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CI 개편.jpg 부스터스는 지난해 11월, '글로벌 커머스의 새로운 기준'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CI로 개편했다.


Q. 로고와 슬로건을 통해 부스터스의 담대한 포부가 잘 드러납니다. CI 디자인의 제작 의도가 궁금합니다.


벼리 로고를 포함한 전체적인 CI 디자인은 기업의 첫인상과 같아요. 이번 CI 개편은 부스터스의 확장성과 포용성을 담아낼 수 있는 컬러와 형태를 고민했어요. 기업 자체보다도 브랜드들이 더 잘 드러날 수 있도록 화이트와 블랙 컬러를 기반으로 정리했고, 포인트 컬러는 부스터스라는 네이밍이 가진 에너지와 추진력을 시각적으로 강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기본 컬러의 텍스트에 생동감을 더해주는 그래픽 모티브는 ‘도약, 성장, 확장’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요소예요.


Q. 부스터스의 디자인실은 각 브랜드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기업 이미지를 함께 만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벼리 브랜든과 이퀄베리는 각자의 길이 분명한 브랜드예요. 스타일도, 방향도, 속도도 다르고요. 저는 각 브랜드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스터스라는 기업의 이미지는 결국 이 브랜드들의 완성도에서 나온다고 봐요. 브랜드 디자인의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기업에 대한 신뢰도 역시 자연스럽게 쌓이니까요.

오히려 더 어려운 건 팀원들과 완성도에 대한 눈높이를 맞추는 일인 것 같아요. 디자이너가 가장 많이 고민하는 지점은 ‘나스러움’과 ‘브랜드스러움’ 사이의 균형이에요. 이 균형이 무너지면 브랜드가 요구하는 완성도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Q. 대중의 시각과 확실히 다를 것 같아요. 대중은 완성도를 ‘취향’ 측면에서 바라볼 것 같은데, 디자이너들이 말하는 ‘완성도’는 어떤 기준으로 볼 수 있을까요?


벼리 누구든 디자인을 보고 애매한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주 미세하게 ‘엥? 이상한데’라는 감정이 드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 건 대부분 전체적인 밸런스가 어긋났기 때문이에요. 레이아웃에는 규격과 가이드가 있지만, 그것만 지키면 오히려 너무 경직돼 보일 때도 있어요. 결국 화면 안에서의 조형적인 감각이 더해져야 합니다. 프로젝트의 목적을 직관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한 방’. 그 지점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와, 멋있다”라고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Q. AI를 활용한 마케팅 디자인도 늘고 있습니다. AI시대의 디자이너의 역량은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벼리 이미 많은 디자이너분들이 AI 툴을 잘 활용하고 계시죠. 지금은 AI 마케팅 디자인의 초입 단계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툴을 써보며 시도해보는 건 분명 도움이 됩니다. 다만 AI로만 완성된 결과물은 사람의 직관으로 금세 알아차릴 수 있어요. 아직은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남죠. 결국 결과물의 차이는 디렉팅하는 사람의 기획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역시 결국 감각과 소통의 문제예요. 입력값을 얼마나 정확하게 설정하느냐, 디자인의 기본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긴장감을 줄 수 있느냐가 퀄리티를 좌우합니다. 기본기 없이 AI 결과물에만 의존하면 하향 평준화로 갈 수밖에 없어요.


Q. 브랜드도 결국 인간의 직감이 더해져야 오래 살아남는 것 같아요.


벼리 맞아요. 우리는 이전의 세상을 지나 새로운 챕터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잖아요. 이 시기의 키워드는 직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야마구치 슈의 말처럼 데이터 기반 사고는 너무나 중요하지만, 분명한 한계도 있어요. 모두가 AI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일수록 차별점은 직감, 윤리, 그리고 미의식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아무것도 없는 도화지에 상상한 것을 그려 IR을 했던 스티브 잡스처럼, 밑그림부터 하나씩 설계해 나가는 과정. 그게 앞으로 디자이너가 가져야 할 경쟁력이라고 생각해요.




오늘은 부스터스의 디자인 커뮤니케이터 서벼리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가장 인상 깊었던 키워드는 ‘소통’과 ‘직감’이었어요. 디자인은 포장이 아니라 구성이라는 점, 그리고 AI 시대의 마케팅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스토리의 맥락을 끝까지 이어가는 일이라는 메시지가 오래 남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이지만, 어쩌면 우리가 가장 자주 놓치고 있던 질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Interviewee | 서벼리

Interviewe, Photo | 차수연


부스터스 채용 공고 https://www.boosters.kr/careers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