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현 Mar 25. 2019

화폐가 만들어진 진짜 이유

  가상 화폐 열풍이 대한민국을 흔들어 대고 있을 때의 일이다. 


  며칠 만에 천만 원으로 1억 원을 만들었다는 후배의 소식도 들려왔고, 한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서는 가상화폐에 투자해 8만 원으로 300억 원을 만들었다는 스물네 살 청년이 소개되기도 했다. 


  인터뷰를 하는 2시간 동안 자산이 30억 원 더 늘었다는 청년의 얘기에 취재를 하던 담당 PD가 멘탈 붕괴의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었다.     


  나 역시도 솔깃할 수밖에 없는 얘기들이었지만 가격 등락이 극심하고 쉬는 시간조차 없이 계속해서 움직이는 가상 화폐 거래소를 보고는 투자 대상으로서의 매력이 떨어진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것은 수익의 관점이 아니라 자유의 관점 때문이었다. 


  ‘가상화폐 투자는 도박이다.’라는 말은 ‘진짜 도박’을 투자의 한 대상으로 까지 생각했던 나에게 투자 결정을 철회할 만큼의 위험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단 몇 분 사이에도 엄청난 등락이 가능한 가상화폐를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하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에, 24시간 쉼 없이 호가창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트레이딩 시스템은 자유가 아닌 올가미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부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원하고 있었기에 자칫 돈의 노예가 될 수도 있는 투자 대상은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가상화폐를 투자 포트폴리오 대상에서 과감하게 삭제한 나는 당시 경제와 금융 교육을 하고 있던 아이들에게 이 가상화폐 시스템을 도입해 보기로 했다.


  거실을 청소하면 천 원, 설거지를 하면 2천 원, 동생을 돌보면 천 원 같이 나는 아이들이 일한 대가를 현금으로 지급하고 있었다. 노동의 가치를 깨닫게 하고, 벌어들인 수입을 스스로 관리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일을 마치자마자 손을 내미는 아이들은 보통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받아야 하는 돈은 최대한 빨리 받아야 하고, 줘야 하는 돈은 최대한 늦게 줘야 한단다.”     


  나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녀석들에게 ‘나중에 줄게.’ 라던가 ‘내일 줄게.’라는 말은 좀처럼 통하지 않았다. 더구나 천 원짜리 지폐가 모자란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그때 그때 현금을 지급하는 일은 귀찮기 그지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떠오른 아이디어가 바로 가상화폐였다. 우리 집 안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가족용 화폐를 만들어 그것을 아이들에게 지급하고 이를 나중에 한꺼번에 현금으로 바꾸어 준다면 편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블록체인 같은 IT 기술을 응용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집 안에서 화폐로 쓰일만한 것이 있는지 찾아보게 되었다. 바둑알부터 성냥개비까지 다양한 후보들이 희소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줄줄이 낙방했다. 


  그러던 중 해외여행을 하고 나서 환전이 불가능해 모아 두었던 외국 동전들이 눈에 들어왔다. 미국 달러, 호주 달러, 엔화, 위안화, 필리핀 페소, 그리고 국적을 가늠하기 힘든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 국가들의 동전들은 적어도 아이들이 다른 곳에서는 구할 수 없는, 집 안에서만은 희소가치 갑의 물건들이었다. 


  이 새로운 가족 통화를 처음 사용한 것이 아들 녀석이 동생을 한 시간 동안 돌보는 것에 대한 대가로 지급되면서 셋째 아이의 애칭이었던 ‘태토’를 이름 붙여 ‘태토 코인’이라는 화폐명이 급조되었다.


  “자, 오늘부터 너희들은 돈 대신 이 태토 코인을 받게 될 거야.”     


  갑작스러운 화폐 개혁에 아이들이 들고 일어섰다. 500엔이나 100엔 같은 실제 가치가 큰 동전들은 모두 골라낸 후였기 때문에 조그맣고 더럽기까지 한 태토 코인이 그들의 눈에 가치 있어 보이지 않을 것임은 당연했다. 나는 차분하게 추가 설명을 해야만 했다.     


  “이 태토 코인 하나는 천 원과 환전이 가능하단다. 이제 돈을 나중에 준다든지 하는 일은 없을 거야.”     


  즉시 환금성이 큰 태토 코인은 어렵지 않게 가족 화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아빠 차에 가서 가방 좀 가져다 줄래? 태토 코인 1개 줄게.”     


  팬티 차림으로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 있던 아들 녀석은 옷을 다시 차려입어야 하는 것이 귀찮았는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태토 코인 2개 주면 갈게요.”     


  녀석이 갑자기 딜을 하기 시작했다. 나의 경제 교육 덕분이라는 생각에 한 편으로는 흐뭇했지만, 이런 식이라면 나중에는 비슷한 심부름에 3개를 줘야 하는 일도, 4개를 줘야 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겠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나는 아들에게 ‘비딩 시스템’에 대해 가르치기로 하고, 둘째인 딸에게 그 일을 의뢰했다. 딸아이는 지금 당장이라도 밖으로 뛰어나갈 수 있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 가방을 들고 오는 일은 거실을 청소하는 일보다 훨씬 수월할 것임이 분명했다. 


  다행히도 나는 태토 코인 1개로 내가 원하는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나는 어렵고 힘들만한 일은 누군가를 지정해 시키지 않게 되었다. 독점적인 일 제공은 고용주에게 치명적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베란다 창문 닦을 사람 손들어! 태토 코인 1개야!”     


  첫째 아들 녀석과 둘째 딸아이가 서로 자기가 먼저 손을 들었다며 다투기 시작했다.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둘 다 같이 해. 그럼 둘 다 1개씩 줄게.”     


  아이들은 혼자 했어도 태토 코인 1개를 받는 일을 둘이서 나누어하는데도 변함없이 1개를 받는다는 사실에 만족해했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처음부터 그 일은 태토 코인 2개짜리 일이었다고 말이다.   

  

  내가 태토 코인을 만들어 낸 것은 분명 아이들의 경제 교육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그 목적으로 예상치 않았던 또 다른 효과를 누리고 있었다.


  태토 코인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아이들에게 사소한 심부름 하나를 시키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수많은 잔소리와 협박이 함께 수반되어야 어렵사리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가족 화폐 시스템 하에서는 그런 것들이 전혀 필요치 않다. 나는 그저 아이들이 하는 노동의 가치를 화폐 가치로 변환할 수 있도록 측정하고 제시하기만 하면 된다. 아이들이 나의 일을 대신해 주는 노예라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데 가장 편리하고 효과적인 도구는 ‘채찍’이 아닌 ‘돈’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화폐가 탄생하기 이전, 그리고 교환이라는 경제 개념이 만들어지기 더 이전에, 생존을 위한 노동은 자신의 배를 채우고, 자신의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자급자족 중심의 경제 시스템 하에서는 ‘남을 위해 대신 일한다.’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간혹 힘이 더 센 자가 힘이 약한 자에게 ‘위협’이나 ‘협박’을 통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하도록 할 수는 있었겠지만 ‘일을 시키는 행위’가 그리 쉽고 효율적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화폐의 탄생, 즉 돈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세상은 ‘노동의 가치’를 손쉽게 ‘돈’으로 환산하여 교환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돈을 통해 ‘나를 대신해 일해 줄 사람’을 보다 쉽고 편리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상품의 교환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화폐가 그 처음의 목적과는 달리, 다른 사람의 노동을 쉽게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가족 화폐를 아이들을 손쉽게 통제하는 데 사용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전 16화 가난한 아빠의 비겁한 변명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