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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현 Apr 01. 2019

돈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않는다

태토 코인 도입으로 아이들의 노동 횟수와 지급량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태토 코인이 생길 때마다 현금으로 환전 요청을 했다.


한 두 개의 태토 코인을 현금으로 요구하게 되면 환전 행위 자체가 또 귀찮은 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환전은 언제든 가능하지만 금액에 관계없이 환전 수수료로 태토 코인 1개를 부과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 가지 부작용이 발생했다.


짠돌이의 기질이 다분했던 아들 녀석은 환전 수수료를 내는 것이 아깝다며 계속해서 태토 코인을 모으기만 할 뿐 환전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나에게 유동성 위기가 찾아왔다.


내가 가지고 있던 태토 코인이 바닥 나 버린 것이다.


나는 아들 녀석에게 반대로 현금을 태토 코인으로 환전해 달라고 요구했다.


아들 녀석이 씩 웃으며 말했다.     


“천 원 주면 환전해 드릴게요.”     


나는 아들 녀석의 행동으로부터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돈은 그 무엇이 필요한 사람으로부터 덜 필요한 사람에게로 흘러 들어간다는 것을 말이다.     


5년 전, 아파트 구매 계약서에 서명을 한 후, 큰 고민에 빠졌던 일이 있었다. 아파트 구매 금액의 70%를 대출받기로 했던 내 계획이 LTV, DTI 같은 대출 규제 장벽에 부딪히게 된 것이다.


나는 수소문 끝에 보험 회사에서도 주택 담보 대출을 해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은행보다 상대적으로 대출 규제가 느슨한 그곳에서 부족한 자금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은행은 돈을 맡기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혜택을, 돈을 빌리려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규제를 가한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예금을 하는 사람은 은행에 비용을 발생하게 하는 사람들이고, 대출을 하는 사람은 수익을 발생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이 돈을 줘야 하는 사람들보다 수익을 가져다주는 사람들에게 더 인색하게 대한다.


돈을 주는 쪽이 갑이고 돈을 받는 쪽이 을이 된다는 자본주의의 경제 원칙이 자본주의의 꽃인 은행에서는 반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추가 대출을 권유하는 은행의 전화 덕분에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급했을 때는 각종 규제를 들먹이며 대출 불가 입장을 피력했던 은행이 대출을 통한 실적이 필요하게 되자 굳이 원하지도 않은 돈을 빌려 가지 않겠느냐며 제안해 온 것이다.


나는 갑과 을은 돈을 주는 사람, 받는 사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가 필요한 사람, 덜 필요한 사람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현금이 필요한 아들 녀석에게는 내가 갑의 위치에서 수수료를 요구할 수 있었지만, 태토 코인이 필요했던 나에게는 아들 녀석이 갑의 위치에서 수수료를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은행은 생활비 100만 원을 빌리려는 가난한 자에게는 인색하거나 더 많은 이자를 요구 하지만, 100억 원짜리 건물을 사기 위해 70억 원을 빌리려는 부자에게는 더없이 친절하고 더 낮은 이자를 부과하기까지 한다.


이는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되는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은행 직원에게 이자율을 낮추어 준다면 대출을 갈아타겠노라 대답했다.


결국 나는 전화 한 통화로 매월 발생하던 이자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은행은 예금을 하는 사람인지 대출을 하는 사람인지에 따라 그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에 이익을 주는 사람인지 위험이  되는 사람인지를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돈이 흘러가는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곧 돈을 지배하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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