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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현 Mar 18. 2019

가난한 아빠의 비겁한 변명

  주식 투자 전도사로 잘 알려진 메리츠 자산운용의 존 리 대표는 ‘자식 사교육에 쓸 돈으로 주식을 사라.’고 말한다. 또 ‘한국의 과도한 사교육이 한국의 경쟁력을 헤치고 있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2018년 교육부가 통계청과 함께 사교육비 실태를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고등학생의 경우 1인당 평균 51만 5천 원을 사교육비로 지출한다고 한다. 여기에서 교재비와 방과 후 학교 참여비, 어학 연수비, 진로진학 학습 상담비 등은 제외한 것이라고 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를 대충이나마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대한민국의 고등학생 수가 170만 명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사교육비로만 년간 10조 원이 넘는 큰돈이 사용된다는 결과가 나온다. 이 돈이 만약 기업에 대한 투자로 쓰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 존 리 대표의 생각이다.


  결론적으로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사교육비는 가계에도 부담이 되지만 국가 경쟁력 제고에도 방해가 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좋은 직장이나 직업을 가져야 하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대학을 가야 하기 때문에 사교육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논리는 자녀의 경제적 자유를 위해서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부모의 경제적 자유는 더 멀어지게 할 뿐이다.


  나는 주변에서 자신의 수입 규모와는 걸맞지 않은 과도한 사교육을 하고 또 자녀에게도 강요하는 부모들을 많이 봐왔다. ‘헬조선’이라고 까지 불리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을 얻는다 해도 경제적 자유를 얻게 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사실은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문과를 택하든 이과를 택하든, 좋은 대학을 졸업해서 직장을 구하든 그렇지 못하든 결국에는 치킨집을 하게 된다는 ‘치킨집 수렴 공식’은 그 무시무시한 ‘미적분 공식’보다 더 공포스럽다.


  고등학생들에게 좋은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얘기하고, 대학생들에게는 좋은 직장만 들어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얘기하는 것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다.


  나는 이러한 이유로 우리 아이들에게만은 사교육을 시키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얼마간 아내의 극심한 반대에 시달리기는 했지만 꾸준한 설득을 통해 그 흔한 방과 후 활동조차 시키지 않는다. 그 어려운 조기 수학 포기도 했는데 그깟 사교육을 하지 않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단 한 개의 학원도 다니지 않는 아이는 자기가 반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나는 존 리 대표가 말한 것처럼 아이들의 사교육비 수준의 돈을 아이들 명의의 예금 통장과 주식에 넣어주고 있으며, 수학 공부나 사교육을 받을 시간에는 돈과 경제 그리고 금융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다. 


  수학 시험을 망친 아이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아이에게 수학 공부를 좀 시켜 주셔야겠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면, ‘우리 아이의 부모는 돈이 많고, 아이도 앞으로 돈이 많을 가능성이 다른 아이들보다는 커서 수학 공부 같은 건 안 해도 돼요.’라는 말을 하고 싶지만 꾹 참는다.


  일 년에 한 번 건물 관리를 위해 받아야 하는 4시간짜리 소방교육에 참석해 지루하기 짝이 없는 강의를 듣고 있을 때면 괴로웠던 학창 시절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렇게 힘든 일을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10년을 넘게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미국의 유명 토크쇼의 진행자인 ‘코난 오브라이언’은 지금까지도 명연설로 회자되고 있는 2011년 다트머스 대학교 졸업 연설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오늘 여러분은 한 가지 중대한 성취를 이루셨습니다. 여러분들 나이대 미국인들 중 92퍼센트에게 주어질 인생 단 하나의 성취입니다. 대학 졸업장! 맞습니다. 여러분들은 대학 졸업장을 얻음으로써 구직시장에서 여러분 나이대 미국인 전체 인구 8퍼센트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8퍼센트에는 우리가 잘 아는 대학을 중퇴한 바보들도 끼어 있는데,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가 바로 그들입니다.”     


  이 말은 물론 코미디언의 위트 있는 농담 정도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연설을 더 이어가면서부터는 더 이상 농담으로는 들리지 않을 만한 좀 더 현실적인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 자리에 계신 학부모 여러분께도 조언을 마련해 왔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코빼기도 안 비치던 자녀들을 이제부터는 매일 보게 되실 겁니다. 지하방에 있다가 나와서 ‘와이파이가 안 터져요!’라고 말할 겁니다. 만일 자녀분이 인문학이나 철학을 전공했다면 근심은 더 크실 겁니다. 자녀분의 졸업장으로 정당하게 취직하려면 고대 그리스로 가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반년 동안 자녀분이 벌어올 돈 보다 졸업장에 액자 씌우는 돈이 더 들 겁니다.”


  코난 오브라이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의 말이 대학교 졸업장의 위대함을 모르는 한낱 코미디언의 농담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로 코난 오브라이언은 하버드 대학 출신이다.    

 

  예전에는 분명 공부를 잘하면 성공이 보장되는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른바 ‘금수저’, ‘부자 아빠’라 불리는, 즉 부모가 돈이 많은 것이 자녀의 성공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하고 좋은 방법임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성공의 기회가 확실함에도 잘하지 못했던 그 힘든 공부를 성공 가능성이 희박함에도 자녀에게 강요하는 것은 어쩌면 ‘비겁한 변명’ 일지도 모른다.     


  사교육은 자녀를 힘들게 해 불확실한 성공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일이며, 사교육비를 아껴 저축하고 투자하는 일은 자녀를 편하게 할 뿐만 아니라 부자 아빠가 되는 길이기도 하다.     


  내가 이루지 못한 부는 자녀는 더더욱 이루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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