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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현 Mar 04. 2019

지식에도 가성비가 있다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이럴 줄 알았으면 중국어를 공부했어야 했는데...”     


  명동에서 여행 가이드 일을 하는 친구 녀석이 하늘이 무너질 듯 푸념을 늘어놓았다. 러시아어를 전공한 그 친구가 중국어를 공부했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것은 한국에 여행을 오는 러시아인의 숫자와 중국인의 숫자를 비교해 보면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같은 외국어라도 어떤 나라의 외국어를 공부하느냐에 따라 활용도와 그에 따른 수입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고3 학창 시절 이른바 ‘수포자(수학 포기자)’였다. 한 번은 20 문항 정도의 객관식으로 이루어진 수학 시험에서 마킹 실수나 채점 오류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0점’을 받는 진기록을 새우기도 했다. 차라리 한 번호로만 다 찍었더라도 확률상 25점은 맞을 수 있었음을 볼 때, 이는 실로 대단한 기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수학 시간만 되면 눈이 감기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던 나는 수학이라는 것이 내 인생의 앞길을 왜 막고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갑작스러운 호출을 받고 교무실에 가게 되었다. 아주 운 나쁘게도 당시 나의 담임 선생님은 수학 선생님이었고 나는 또 수학 시험 성적에 문제가 발생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은 성적표로 보이는 종이 한 장을 손에 들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또 빵점인가?’ 나는 불안한 마음에 선생님의 표정을 힐끔 살폈다. 선생님의 표정은 뭔가 황당함과 놀라움이 교차된 상기된 얼굴이었고, ‘이럴 리가 없어...’ 하는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네가... 이번 논술 모의고사에서... 전국 1등을 했어...”     


  선생님이 내민 성적표를 받아 든 나는 선명하게 찍혀 있는 ‘전국 석차 1등’이라는 글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흔한 ‘전교 1등’이 아니라 그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전국 1등’ 말이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글짓기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어머니가 잘못 주문한 고등학생용 문학 전집을 일주일도 안 되어 다 읽어 버린 후 반품한 일도 있을 만큼 책을 좋아했고, 방학숙제로 제출한 독후감은 항상 우수상을 독차지했다. 


  수학은 아무리 공부해도 늘지도 않고 이해도 되지 않았지만, 국어 시간과 책 읽는 것은 항상 즐겁고 행복했다. 모의 수학 능력 시험을 볼 때면, 수리영역 시험은 잘해야 ‘30점’ 언저리였지만, 언어영역 시험은 몇 번을 제외하고는 항상 ‘만점’을 받았다. 언어 영역 시험이 끝나고 나면 반에서 1, 2등을 다투는 모범생 친구 녀석이 내 시험지를 가져가 답을 맞혀보는 일 까지 있었다.


  도저히 한 사람의 것이라고는 보기 힘든 ‘수학 빵점’과 ‘국어 만점’의 성적을 가진 내가 ‘논술 전국 1등’이라는 결과를 이루어 낸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의 대학은 국어나 글짓기만 잘하는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수학 빵점의 실력으로는 좋은 대학, 원하는 대학에 가는 것이 불가능했으며 '논술 전국 1등'의 능력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학교가 아닌 사회로 나오게 된 이후로는 수학을 잘하는 능력과 국어를 잘하는 능력의 가치가 확연히 달라졌다. 물론 내가 물리학자나 공학자가 되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수학을 못한다는 것이 사회생활의 걸림돌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반면 국어나 글짓기를 잘하는 능력은 사업 보고서를 작성할 때도,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도 큰 도움이 되었다. 심지어 그 능력은 경제적인 이익까지 가져다주기도 했다. 내가 쓴 영화 시나리오가 영화사에 팔리게 되면서 2~3년 치의 연봉을 한 번에 벌게 되는 일도 있었고, 출판이 된 여덟 권의 책들이 잊을 만하면 가져다주는 인세는 경제적 자유를 얻게 해 준 수입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세상의 지식과 배움은 모두 저마다의 가치가 있겠지만 그 가치의 활용도에 따라 돈이 되는 지식과 그렇지 않은 지식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주판알을 잘 튕기는 것보다 계산기를 잘 다루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인 것처럼 말이다. 중국어가 아닌 러시아어를 공부했던 것을 후회한 여행 가이드 친구 녀석과는 달리, 나는 수학 대신 국어를 잘하게 된 것을 늘 감사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수학에 적합하지 않은 나의 두뇌를 아들 녀석이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점이다. 덕분에 내 아이는 학교에서 수학 성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열등생 취급을 받기가 일쑤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여전히 수학을 중요한 지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아직 초등학생인 아들 녀석에게 과감히 수학을 포기하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수학을 포기함으로써 얻어지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지식을 배우고 익히는 데 사용하는 것이 보다 더 경제적일 거라 생각했다. 


  지식을 얻는 데 있어 더 경제적이고 덜 경제적인 것이 있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나는 내가 경험했던 사실을 근거로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의 능력이라는 것이 무한하지 않기에 잘할 수 없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보다 중요하고 유익한 지식을 얻는데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겪었던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삶에 있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지식을 ‘그놈의 수학’ 대신 가르쳐 주기로 했다. 내가 어린 아들에게 추천한 ‘가성비 최고의 지식’은 바로 ‘경제와 금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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