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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현 Dec 10. 2018

먹고 살기 위한 네 가지 방법

영화 <노예 12년>


  평화로운 토요일 저녁, 우리 가족은 거실에 모여 앉아 TV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 '노예 12년'이라는 제목의 영화였는데 12년간을 흑인 노예로 살아야만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어린 아들이 나에게 물었다.  


  "아빠! 노예가 뭐야?"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질문의 내용이 쉽고 간단할수록 대답하기는 더욱더 귀찮고 어려워진다. 나는 영화에 집중하고 싶어 무심한 듯 짧게 대답했다.  


   “종!”  


  미리 밝혀 두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있어 그리 자상 하거나 인내심이 많은 타입의 아빠는 아니다.  


  “종이 뭔데?”  


  이럴 때 자칫 잘못했다가는 끝없는 질문과 대답이 난무하는 무한 루프의 덫에 걸릴 수 있으니 특히 조심해야 한다.  


  “주인이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  


  아이가 다시 물었다.  


  “왜 주인이 시키는 일만 하는데?"  


  “그야... 노예니까...”  


  “노예가 뭔데?”  


   ‘이런 젠장... 오늘도 걸려들고야 말았다.’  


  아이를 키우면 인생을 다시 한번 사는 것 같다. 한글을 배우고, 학교에 가고, 군대에 가고, 직업을 선택하고, 결혼을 하고...  ‘노예’ 같은 기본적인 단어에 대한 질문에 답할 때는 좀 더 철학적인 접근이 필요하기에, 평소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던 말이 전혀 새롭고 의도치 않았던 정의로 귀결될 때도 있다. 나는 영화에 집중하기 위해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고 귀찮은 아이를 그만 떼어내 버리자고 마음먹었다.  


  “응, 그러니까... 노예는 말이지. 주인이 시키는 일을 대신해 주는 사람이야. 이를 테면 주인의 빨래를 대신한다든지 음식을 대신 만들어 준다든지 농사를 대신 지어준다든지 하는....”  


  이때 나는 ‘농사가 뭔데?’라는 질문이 나오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말끝을 조금 흐릴 수밖에 없었다.  


  “왜 주인 대신 일을 하는데?”  


  “그야, 대신 일을 해 주면 주인이 그 대가로 밥도 먹여 주고, 옷도 입혀 주고 돈도 주니까...”  


  나는 이제야 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아들놈의 작고 까만 머리통을 바라보며, ‘이제 끝났구나!’ 하는 마음에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결코 오래가지 못했다.  


  “그럼 아빠도 노예네?”  


  나는 우리 회사의 소유주를 대신해 일을 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노예임을 결코 부정할 수 없었다.  




  세상에는 크게 네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중 두 가지는 주인 쪽이고, 또 두 가지는 안타깝게도 노예 쪽이다.  


  첫 번째 부류의 노예들은 금수저 출신을 제외한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고, 또 거칠 수밖에 없는 피고용인, 즉 ‘월급쟁이’들이다. 국어사전을 보면 ‘월급쟁이’를 ‘월급을 받는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라 정의하고 있는데, ‘사장 쟁이’나 ‘건물주 쟁이’ 같은 말은 없음을 볼 때, 왠지 어원의 유래에 합당한 이유가 있음이 분명할 거라는 유쾌하지 않은 복선이 감지된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최저 임금을 받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과 증권사에서 몇 천억을 주무르는 펀드 매니저 같은 억대 연봉자를 같은 부류로 분류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노예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곧 경제 자유를 얻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내가 일하고 싶지 않은 월요일 오전 9시에 계약에 따라 주인이 지시한 장소에 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에 다름이 없다면 그들은 똑같이 분류될 수밖에 없다. 즉 시간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면 그들은 그저 노예일 뿐인 것이다.  



  두 번째 부류의 노예들은 개인 사업을 하는 자영업자들이다. 여기에서도 치과 의사나 변호사 같은 비교적 고소득의 전문직 종사자들이 치킨집 사장님, 피자집 사장님과 한데 묶이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 명이나 되는 간호사들이 의사인 나를 도와 일을 해 주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그들은 당신을 도울 수 있을 뿐이지 당신이 하는 일을 대신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의사 자격증이 없는 그들이 당신을 대신해 환자를 수술한다면 당신은 감옥에 가게 될 것이다.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 한 그들은 아무런 돈도 벌 수 없는 사람들이다.  

  월급쟁이와 자영업자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 모두 돈을 위해 일을 하는 노예들이다. 즉 정해진 시간 동안 자신의 기술이나 노동력을 투여해야만 그것에 비례하여 돈을 벌 수 있다면 그들은 모두 돈의 노예인 것이다.  


  그렇다면 돈의 주인, 즉 돈의 노예가 아닌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첫 번째 부류의 주인들은 사업가들이다. 사업가는 사업을 계획하고 경영하는 사람을 말한다. 경영 능력을 발휘하는 것 또한 고도의 두뇌 노동이라 할 수 있지만 자영업자, 즉 개인 사업자와 구분되는 가장 큰 차이는 일 하는 시간이 수입의 크기와 결과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사업가와 자영업자를 구분 짓는 잣대가 매출의 규모나 수입의 크기가 아니라는 부분이다. 치킨집 사장님이 한 달 간의 긴 여름휴가 기간 동안에도 수입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면 그는 장사가 아닌 사업을 하고 있는 사업가, 즉 주인임이 틀림없다. 햄버거 가게인 맥도널드의 창업자 레이 크록을 사업가라 부르듯 시스템에 의해 자생적으로 움직이는 조직과 그에 따른 수입이 발생한다면 그는 노예가 아닌 주인이라 할 수 있다.  


  인기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 중 하나인 ‘서민 갑부’를  보면 자영업으로 큰돈을 벌게 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벌어들이는 어마 어마한 매출을 보며 부러워하는 것도 잠시, 새벽 6시에 일어나 시장에 나가 신선한 식재료를 직접 고르고, 땀을 뻘뻘 흘리며 밀가루 반죽을 하고, 잠시 숨 돌릴 새도 없이 손님들을 접대하고 밤늦게 서야 집으로 향하는 서민 갑부의 삶은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한결같이 돈의 노예라는 말이 그 누구에게 보다 잘 어울리는 모습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3부작 드라마 <로스트 룸>에는 갖가지 특수한 능력을 지닌 마법 아이템들이 등장한다. 내가 인상 깊게 느꼈던 초능력 아이템 중 하나는 테이블에 두드리면 1센트, 한화로 약 10원 정도의 동전이 만들어지는 요술 연필이었다. ‘저런 도깨비방망이 같은 연필 하나 있으면 참 좋겠는걸!’ 하는 생각은 도대체 얼마나 열심히 연필을 두드려 대야 부자가 되는 걸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연필을 1분에 열 번 두드린다고 가정해 보면, 1분에 100원, 10분에 1,000원, 1시간이면 6천 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 요술 연필로 얻을 수 있는 수입이 대한민국 시간당 최저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에 실망할 즈음, 극 중 요술 연필의 주인 역시 부자는커녕 밤낮으로 돈을 만들어 대다가 결국 미쳐 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것은 시간과 맞바꾸는 돈, 혹은 시간에 비례하는 수입은 그 한계가 존재함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드라마 <로스트 룸>

  두 번째 부류의 주인들은 투자가들이다. 투자가는 그 무엇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 일 것이다. 그들이 돈을 버는 수단은 다름 아닌 돈이며, 말 그대로 그들은 돈의 주인이자 돈은 곧 그들을 위해 일 하는 충실한 노예들이다.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자지 않고 공부를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어느 입시 학원의 홍보 문구와는 달리 투자가들은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꿈을 이룰 수 있는 돈이 벌리고 있다.  


  누구나 주인의 삶, 즉 경제적 자유를 갈망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나 노력 없이 주인이 될 수는 없다. 우선 돈이라는 노예가 있어야 하고 또 그 돈을 노예로 삼아 또 다른 돈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알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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