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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현 Dec 17. 2018

최고의 노예, 최악의 주인


돈은 최고의 노예이자 최악의 주인이다.
- 프란시스 베이컨  

  


  부자가 되는 비결을 얘기하는 책이나 강연을 보면, 대부분 지금 당장 직장을 때려치우고 사업을 하거나 투자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마치 살을 빼려면 먹지 말고 운동을 하라거나 좋은 대학에 가려면 국영수를 중심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처럼 당연하지만 그대로 따르기에는 현실과 거리가 너무 먼 얘기들이다. 사업이 하기 싫어 남의 밑에서 일하고, 투자가 하기 싫어 스스로 돈의 노예가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월급의 노예로는 미래가 없음을 일찍이 깨달았지만 호기롭게 칼국수집을 열었다가 1년 만에 접기도 했고, 그럴싸한 사업 아이템으로 억대의 큰돈을 투자받아 핀테크 사업을 시작했지만 3년이나 지난 지금 까지 매출은커녕 서비스 오픈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는 형편이다. 즉 ‘월급의 노예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것밖에 할 수 없어서’가 더 합리적인 인과 관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내가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 무려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노예 생활을 한 것은 자발적이고도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돈이 아빠의 노예가 돼서 돈을 벌어오고 있기 때문에 이제 아빠는 다른 아빠들처럼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되는 거야. 너도 나중에 아빠처럼 돈한테 일을 시킬 수 있어야 해.”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아빠는 왜 백수냐?’는 아들놈의 도발적인 질문에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었다.    

   

  “아빠! 그런데 나는 그 노예가 조금밖에 없는데 어떡해?”    

 

  어린아이의 원초적 질문은 때때로 기대 이상의 성찰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야, 노예를 더 많이 만들어 내야지...”    


  그렇다. 노예 18년은 나에게 있어 결코 헛된 시간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나를 위해 대신 일해 줄 노예, 즉 돈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었던 것이다. 나는 의도치 않았던 깨달음을 얻고 이를 아들에게 전해 주었다.    

   

 
  “아빠는 노예 1억 명을 은행에 보내서 일을 시켰어. ‘예금’이라는 일인데, 그랬더니 아빠 대신 1년 동안 열심히 일을 하더라고, 심지어 아빠가 자는 동안에도 말이야.”    

  

  “그 1억 명의 노예들이 얼마를 벌어 왔는데?”    

  

  “170만 원 정도...”    

  

  “와! 내가 10년 동안 모은 내 전 재산보다 많이 벌어 왔네?”    

  

  참고로 당시 내 아들 녀석이 자신의 통장에 천 원, 2천 원을 저축해 모아 놓은 돈은 70만 원 정도였다.    

  

  “나도 내 노예 70만 명한테 일을 시킬 수 있는 거야? 내 노예들은 한 달에 얼마나 벌어 올 수 있어?”    

  

  나는 아이들에게 ‘돈은 돈을 벌어다 주는 노예’라고 가르쳤고, 그래서 우리는 종종 ‘원’이라는 화폐 단위 대신 돈을 의인화한 ‘명’이라는 단위를 사용하기도 했다.    

   

  “70만 원으로는... 잠깐 계산 좀 해 보자. 연 이자 2%의 정기예금이라고 치고, 세금 15.4% 떼면 연리가 1.7% 수준일 테고, 그럼 일 년에 1만 2천 원이니까, 한 달이면... 천 원 정도 되겠네.”    

  

  “에게? 겨우 천 원?”    

  

  거실 청소 같은 사소한 심부름에 대한 대가로 최소 건당 천 원의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었던 아들 녀석의 경제 수준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한 달에 천 원이라는 수입은 보잘것없이 적어 보이는 게 당연했다.    

  

  “그럼 어떡해야겠어?”    

  

  “노예를 더 많이 만들어야겠는데?.”    

   

  “그래 맞아! 노예들이 많아야 어느 정도 네가 원하는 만큼의 큰돈을 벌어 올 수 있게 할 수 있는 거야. 지금은 네 노예들 보다 네가 직접 일을 해서 버는 게 훨씬 낫겠지?”    

   

  그날 저녁, 아들 녀석은 2천 원의 대가로 엄마 대신 저녁 식사 설거지를 자청했다. 노예들을 더 만들어 내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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