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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현 Dec 24. 2018

월급쟁이의 돈 버는 지렛대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당신의 실수가 아니다.
그러나 죽을 때도 가난한 것은 당신의 실수다.
- 빌 게이츠     


   이제 나는 경제적 자유를 누리며, 노예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언제든 다시 노예가 될 여지도 함께 가지고 있다.   

   안정적이었던 회사 생활을 완전히 접을 만큼 확신과 용기가 없었던 나는, 과연 월급이라는 마약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시험해 볼 기회가 필요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육아휴직이었다. 아이들에게 바쁘지 않은 아빠를 선물해 준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기는 했지만, 퇴직이 아닌 휴직을 통해 은퇴와도 같은 시간적 자유를 얻을 수 있고, 월급이 없는 삶이 어떠한지도 미리 체험해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 있었기에 위험 요소는 그리 크지 않다고도 생각했다. 물론 다시 회사로 돌아갔을 때, 회사가 나를 반겨주지 않을 수 있다는 각오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육아 휴직은 제도적인 안전장치를 통해 해고의 위험에서는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지만 승진의 기회는 박탈당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 한 명당 1년의 육아 휴직이 가능한데, 나는 그런 자녀가 네 명이나 있으니 총 4년의 육아 휴직이 가능한 상황이었고, 그 정도면 월급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테스트를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라 생각했다.     

  

   육아 휴직 중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생산적 활동은 재테크 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레 금융과 투자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임원이 되기 바로 직전인 부장의 위치에서 일했던 나는 나름 적지 않은 연봉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육아 휴직 직후, 백수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던 처음 몇 개월은 자유를 만끽하는 즐거움보다 월급이라는 마약에 대한 금단 증세가 더 심했다.    

   돌이켜 보면 육아휴직이 경제적 자유를 이르게 하는 결정적인 원동력이었으며, 그 선택이 없었다면 나는 같은 시간을 좀 더 인정받는 노예가 되기 위한 승진과 임금 상승 같은 것에 모든 노력과 시간을 쏟아부었을 것이다. 돈을 좀 더 많이 받는 노예 역시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회사 안은 전쟁터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다.’라는 미생의 대사는 월급쟁이가 경제적 자유를 찾아 떠나기를 망설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자 불편한 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월급쟁이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투자가가 되기 위한 안정적인 준비를 할 수 있으며, 그 지위를 이용해 훌륭한 투자 레버리지(지렛대)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웹툰 <미생> 중

 

   만약 주식 투자로 연 수익률 30% 정도를 무난히 달성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두 명의 월급쟁이와 전업투자가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현재 두 사람의 투자 자산은 똑같이 1억 원이다. 전업투자가는 그 1억 원으로 1년 동안 3천만 원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월급쟁이는 그가 매월 벌어들이는 안정적인 수입과 그가 속한 회사의 신용 덕분에 은행으로부터 추가로 1억 원의 투자 자금을 더 마련할 수도 있다.     

   월급쟁이는 총 2억 원을 투자해 년 6천만 원의 수익을 얻을 수 있고, 연 5%의 은행 이자 비용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전업투자가 보다 3천5백만 원의 수익을 더 얻을 수 있다. 전업투자가 역시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도 있으나 월급쟁이에 비해 대출 가능 금액이 현저히 적을 것이며, 보다 높은 금리의 이자 비용이 발생될 것이다. 나는 실제로 부동산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월급쟁이라는 신분 덕분에 대출액과 대출금리에서 보다 유리한 조건을 얻어낼 수 있었다.   

  

   사업가의 DNA를 타고났거나,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 투자 자본이 넉넉하다면, 월급쟁이라는 노예생활을 굳이 거치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러한 능력과 환경이 아무에게나 주어지지는 않기에 이 세상은 월급쟁이들로 넘쳐 날 수밖에 없다. 부자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왜 월급쟁이가 되고, 또 되려고 하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또 부자가 되려거든 지금 당장 직장에 사표를 내던지라는 말도 쉽게 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월급쟁이의 월급은 안정적인 투자 재원 조달 방법이자, 월급쟁이의 지위는 효과적인 레버리지이며, 월급쟁이의 경험은 영민한 사업가가 되기 위한 수업료 없는 학원이다. 중요한 것은 월급의 노예로 살면서 앞으로 돈의 주인으로 살기 위한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나는 금융 지식과 투자 노하우를 통해 노예 생활을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회사에 복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함께 갖고 있다. 이미 경제적 자유를 얻었음에도 다시 자발적 노예가 되겠다는 내 계획에 아내는 동의하지 않는다.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고 여유로운 일상을 보낼 수 있는 남편에게 익숙해진 아내로서는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내가 실질적인 퇴직과도 다름없는 육아휴직을 선택했을 때, 스스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지난 20년간 쌓아온 전문가로서의 경험과 능력이었다. 나는 내 분야에서 나름 전문가로 인정받아 많은 대학과 대기업, 공공 기관 등에서 강연을 하기도 하고, 웬만한 직장인의 월급만큼을 단 한 시간의 컨설팅 피로 책정받고 국내 1위의 대기업 경영진들에게 자문을 해줬던 경험도 있다. 이른바 실력 있는 노예였던 것이다. 오랜 기간 쌓아온 전문 분야에 대한 능력을 뒤로하고, 전혀 다른 새로운 길로 간다는 것은 아쉽기에 충분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생존을 위해 일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었고, 회사에 가 일을 하는 것도 즐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여유로움은 더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될 수 있겠다는 기대도 생겼다. 늘 농담으로만 얘기했던 ‘취미로 다니는 직장’을 현실로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건물주를 부러워하는 후배들에게 ‘우리는 걸어 다니는 건물’이라 말하곤 했다. 월 4백만 원의 임대 수익을 발생시키는 건물의 가격은 대략 10억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즉 4백만 원을 월급으로 받는다면 10억 원의 건물을 소유한 사람과 같은 수입을 얻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만 건물주는 그의 노예인 건물이 대신 일을 해 주지만, 월급쟁이는 스스로가 노예가 되어 일을 해야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앞에서도 이미 언급했듯, 월급쟁이는 수익성 측면으로만 따져 본다면 투자를 위한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해 무척이나 효과적인 경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건물 가치 하락이나 공실 발생의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건물주와 비교하면 월급쟁이의 리스크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 자영업자와 사업가가 수익을 위해 일하고 고민하고 있을 주말 동안, 월급쟁이는 자신의 몸을 희생해 얻은 수익으로 미래를 위한 가치 있는 투자를 계획할 시간을 갖는다.   

  

   '최고의 노후 대비는 은퇴를 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도 있듯,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한 준비가 제대로 되기 전까지는 월급쟁이라는 레버리지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야 하는 이유’는 ‘현재의 먹고 살 것을 위해서’가 아닌 ‘미래에 먹고 살 것을 위해서’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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