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현 Jan 07. 2019

도대체 언제까지 절약해야 하는 걸까?

 부자가 되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내일 할 일을 오늘 하고 오늘 먹을 것을 내일 먹어라. 
- 탈무드     


   때때로 부자들은 그들의 부에 걸맞지 않은 검소함으로 세상의 존경과 조롱을 동시에 받는다. ‘부자는 가치가 오를 만한 자산에 투자하고, 가난한 사람은 구매 즉시 가치가 하락하는 물건을 소비한다.’는 말처럼 부자들은 투자에는 관대 하지만 소비에는 매우 인색하다.    


  

   나의 네 명의 아이들은 1년에 딱 두 번, 원하는 장난감을 살 수 있도록 규칙을 만들어 두었다. 생일과 크리스마스가 그들이 아빠로부터 공식적으로 장난감을 얻어낼 수 있는 유일한 날이다.  하지만 딱 두 번의 기회라고 해서 원하는 장난감을 무엇이든 살 수 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첫째 아들놈은 1만 2천 원, 둘째 딸아이는 1만 원이 그 최고 한도액이다. 셋째와 넷째는 아직 너무 어려서 그나마도 그냥 패스다.     

   돈이 돈을 벌어 오는 노예임을 교육받은 아이들은 스스로 그 한도액을 다 채우지 않는다. 한도에 미달하는 장난감을 고를 경우 그 차액은 현금 지급이 가능하기에 장난감과 현금 두 가지를 모두 얻겠다는 것이 그들의 귀여운 전략이다. 7천 원짜리 장난감을 사면 한도액 1만 2천 원에서 남는 5천 원은 현금으로 챙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아이들 답지 않게 장난감의 가격을 살피며, ‘이건 비싸서 못 사겠네.’ 같은 실망을 할 때면, 내 아내는 아이들이 불쌍해 보였는지 나를 흘겨보곤 한다. 하지만 나는 내 아이들이 결제 즉시 쓰레기와 다름없이 가치가 하락하는 장난감을 소비하는지, 적정한 가격 수준의 장난감을 사고 그 차액을 노예를 사기 위한 종잣돈으로 남겨 놓는지를 살피며, 나의 경제 교육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지의 여부만이 유일한 관심사다.     

  

   “넌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살 수 있어! 네 통장에는 70만 원이나 있잖아!”    

  

   나는 규칙 한 가지를 더 만들어 두었다. 그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관리하고 있는 자신의 통장에 있는 돈은 언제든 꺼내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 아들 녀석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는 1만 2천 원에  자신의 재산 70만 원을 더해 고가의 최신형 드론을 살 수도 있다.    

  

   “내 돈은 절대 쓰지 않을 거야!”     

  

   하지만 수많은 심부름과 노동의 대가로 얻은 피땀 어린 결과물을 고작 장난감에 소비하지는 않을 만큼 내 아이들에게 있어 그들의 통장 잔고는 소중하게 여겨진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노동으로 얻은 돈의 소중함과 그것을 낮은 가치의 소비와 맞바꾸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 아내는 그럴 때마다, 불만 섞인 짜증을 내곤 한다.     

  

   “우리 아이들은 언제 까지 이런 싸구려 장난감만 사야 하는 건가요? 한 번쯤은 좋은 것을 사줘도 되는 것 아닌가요?”    

   

   그것은 아마도 아이들이 싸구려 장난감을 선택해서가 아니라, 자신 역시 싸구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게 될 것임을 본능적으로 깨닫게 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일 가능성이 크다.     

  

   나 역시 이 대목에 있어서만큼은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한 여정에 크나큰 딜레마 중 하나였다. 아끼고 절약한 돈을 노예로 만들어 경제적 자유를 실현하자는 것은 분명 좋은 시나리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시쳇말로 ‘죽을 때 돈을 싸 갈 수도 없는 노릇인데, 도대체 언제까지 아끼고 절약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것 또한 나 스스로도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검소하고 아끼며 사는 부자들도 있는 반면, 좋은 옷과 좋은 차를 타고 사치를 누리며 사는 부자들도 많다. 부자들이 돈을 써 줘야, 다른 평범한 사람들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텐데, 무조건 아끼고 절약하기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의 짧지 않았던 ‘절약의 기한’에 관한 딜레마는 한 가지 명확한 원칙을 도입하게 되면서 해결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빠는 왜 비싼 벤츠를 샀어?”    

   

   좋은 차를 타는 것은 분명 비즈니스 파트너들로부터 신뢰를 얻어낼 수 있는 좋은 무기 중 하나라는 것이 내가 벤츠를 사기로 결정했을 때의 허울 좋은 명분이었다. 즉 그것은 소비가 아닌 더 많은 수입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마흔 살이 되기 전에 벤츠를 타자!’라는 버킷리스트와도 같은 인생의 한 가지 목표를 실현하고, 그 성과를 남에게도 자랑하기 위한 허세였음을 결코 부정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것은 실제로 경제적 자유를 얻기도 전인, 노예 시절에 저지른 짓이었기에 더욱더 한심한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경제와 금융 지식을 전수하는 스승의 위치에서 이 불편한 진실을 수제자인 아들 녀석에게 액면 그대로 밝힐 수는 없었다. 훌륭한 아버지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때때로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낼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아빠의 벤츠는 사실 아빠가 산 게 아냐.”     

  

   나의 뜬금없는 고백에 아들 녀석이 놀라 되물었다.     

  

   “그럼 누가 산 건데? 엄마가 산거야?”     

  

   “아빠의 노예들이 사 준거야.”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뻔뻔한 거짓말을 계속 이어갔다.     

  

   “아빠가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저 비싼 벤츠를 사는데 썼을 것 같아?” 

   

   “아니지! 노예들은 일을 시켜서 돈을 벌어야지. 노예들을 팔아서 물건 같은걸 사면 안 되지!”    

   

   나는 아들 녀석의 기특한 대답에 흡족해하며 씩 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래 맞아! 벤츠는 바로 아빠의 노예들이 벌어다 준 돈으로 산거야! 네가 누군가의 노예로 일해서 번 돈은 최대한 쓰지 않고 모아야 하지만, 노예들이 너를 대신해 벌어온 돈은 네가 원하는 그 무엇이든 사도 괜찮은 거야! 너도 나중에 비싸고 좋은 장난감을 사고 싶다면 네가 번 돈이 아닌 노예들이 번 돈으로 사면돼!”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나 또한 공부를 해야 하고, 무엇인가를 가르치다 보면 나 또한 배우게 될 때가 많다. 나는 그제야 작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절약의 기한’은 ‘경제적 자유’를 얻고 난 이후이며, ‘사치의 허용’은 ‘노동의 대가가 아닌 돈’에 한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이제 막 18년간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어 가까스로 경제적 자유를 얻었기에 아직 부자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다. 따라서 노동의 대가가 아닌 돈, 즉 나를 대신한 노예들이 벌어다 주는 돈이 비싼 옷, 비싼 물건을 살만큼 풍족하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보다 노예들이 더 많아지고 그에 따라 그들이 벌어다 주는 돈이 더 많아진다면 기꺼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비싼 물건도 아낌없이 소비해 주겠노라 다짐했다.    

   

   “도대체 언제 까지 이렇게 아끼고 절약만 하라는 거예요?”    

   

   아내의 짜증에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당신은 명품 가방, 명품 옷, 당신이 원하는 그 무엇이든 살 수 있어! 단 하나의 원칙만 지키면 돼! 우리가 직접 번 돈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거야. 하지만 우리의 노예가 가져다준 돈으로는 그 무엇이든 사도 돼!”    

   

   아내에게도 작은 희망이 생겼는지 흐뭇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이전 05화 어디 한 번 따져 보자, 월급의 수익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