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충돌(장 미셸 카르트푸앵)
처절한 타이틀매치를 치르며 챔피언벨트를 주고 받은 사이의 복서들은 현역 시절엔 상대와 애증의 관계를 형성하지만 은퇴 후엔 경쟁심을 내려놓고 상대를 존중하는 게 보통이다. 대결 당시에는 오직 이겨야 할 적으로만 상대를 바라봤지만 각자 연륜과 경험이 쌓이고 세상 물정에 치여 여러 시련을 겪다보면 그 옛날 처절하게 싸웠던 상대에게 아이러니하게도 동지애를 느끼는 모양이다.
하지만 각종 이권이 오가는 전세계적 차원의 분쟁 후라면 그런 평화가 쉽사리 찾아오기 힘들며 이야기가 좀 달라질 법하다. 순서를 번갈아가며 상대의 심장부에 침입해 항복을 받아냈던 지난날을 뒤로 하고 지금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평화 상태를 유지 중이지만, 과거도 과거 나름인지라 앙금의 정리는 현재 진행 중인 듯 하다. 전 지구적 패권 전쟁을 다룬 것만 같은 제목과는 달리 독일의 성공(?) 비결에 대한 내용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차분히 미국과 중국의 G2 파워게임과 무역전쟁을 다루던 프랑스인 저자는 유럽 이야기로 돌입하자 점차 자유로운 ‘의식의 흐름’에 취해 본인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지는데~~ EU와 전 유럽의 번영이라는 명분(허세)에 취해 유럽의 중심 자리를 독일에 내준 자국을 향해 ‘대체 뭐 하다 이 지경이 됐느냐’며 목소리를 높인다. 우아하고 폼나는 유럽의 리더를 꿈꿨던 프랑스지만 철저히 자국의 실리를 챙기고 압도적인 경제력을 보유한 독일에게 왕좌를 내줄 수 밖에 없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며 자국의 지도층을 향해 압박섞인 주문을 해보지만 국가의 가치관과 지향점은 그리 쉽게 바뀌는 게 아니다. 자유분방하고 주관 강하며 토론을 즐기는 국민들, 전세계적인 난이도의 철학적 질문에 주관식으로 답하는 대입 시험, 철저한 엘리트주의가 존재하는 나라 프랑스가 체면(한국식의 그것은 아니겠지만)을 벗어던지고 그리 쉽게 전투 태세로 돌아설지~~
최근의 유로와월드컵에서 Les Bleu가 Die Mannschaft(각각 프랑스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애칭)에 한 발 앞섰고 월드컵에선 20년만에 정상에 섰지만 축구에 국한된 이야기일 뿐이다. 긴장을 담은 낭만으로 표현된 라이벌의 이야기는 역사를 통틀어 셀 수도 없을만큼 많지만 어디까지나 힘과 실력이 대등할 때 가능한 관계이다. 애초에 아예 바라볼 수 조차 없는 대상이었다면 모를까 한때 자신과 비슷했던 상대의 전성시대를 달갑게 여기기는 그 어떤 개인과 집단에게도 쉽지 않다.
#독일의위엄 #프랑스의열폭 #끝나지않은경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