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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소년 Aug 11. 2020

우아한 명분을 제압한 조용한 실리

제국의 충돌(장 미셸 카르트푸앵)

  처절한 타이틀매치를 치르며 챔피언벨트를 주고 받은 사이의 복서들은 현역 시절엔 상대와 애증의 관계를 형성하지만 은퇴 후엔 경쟁심을 내려놓고 상대를 존중하는 게 보통이다. 대결 당시에는 오직 이겨야 할 적으로만 상대를 바라봤지만 각자 연륜과 경험이 쌓이고 세상 물정에 치여 여러 시련을 겪다보면 그 옛날 처절하게 싸웠던 상대에게 아이러니하게도 동지애를 느끼는 모양이다.


4전 5기의 아이콘 홍수환과 왕년의 라이벌 알폰소 자모라(멕시코). 이겨야만 했던 상대는 서로에게 그립고 만나면 반가운 벗이 되었다.

  하지만  각종 이권이 오가는 전세계적 차원의 분쟁 후라면 그런 평화가 쉽사리 찾아오기 힘들며 이야기가 좀 달라질 법하다. 순서를 번갈아가며 상대의 심장부에 침입해 항복을 받아냈던 지난날을 뒤로 하고 지금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평화 상태를 유지 중이지만, 과거도 과거 나름인지라 앙금의 정리는 현재 진행 중인 듯 하다. 전 지구적 패권 전쟁을 다룬 것만 같은 제목과는 달리 독일의 성공(?) 비결에 대한 내용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차분히 미국과 중국의 G2 파워게임과 무역전쟁을 다루던 프랑스인 저자는 유럽 이야기로 돌입하자 점차 자유로운 ‘의식의 흐름’에 취해 본인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지는데~~ EU와 전 유럽의 번영이라는 명분(허세)에 취해 유럽의 중심 자리를 독일에 내준 자국을 향해 ‘대체 뭐 하다 이 지경이 됐느냐’며 목소리를 높인다. 우아하고 폼나는 유럽의 리더를 꿈꿨던 프랑스지만 철저히 자국의 실리를 챙기고 압도적인 경제력을 보유한 독일에게 왕좌를 내줄 수 밖에 없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며 자국의 지도층을 향해 압박섞인 주문을 해보지만 국가의 가치관과 지향점은 그리 쉽게 바뀌는 게 아니다. 자유분방하고 주관 강하며 토론을 즐기는 국민들, 전세계적인 난이도의 철학적 질문에 주관식으로 답하는 대입 시험, 철저한 엘리트주의가 존재하는 나라 프랑스가 체면(한국식의 그것은 아니겠지만)을 벗어던지고 그리 쉽게 전투 태세로 돌아설지~~


파리를 비롯하여 프랑스에는 노천 카페가 많다. 수많은 현인과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보통의 시민들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열띤 토론을 펼친다


축구 ‘독불전’은 오래된 흥행의 히트 넘버이자 라이벌 매치이다. 유로 2016 4강에서 격돌한 프랑스와 독일




최근의 유로와월드컵에서 Les Bleu가 Die Mannschaft(각각 프랑스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애칭)에 한 발 앞섰고 월드컵에선 20년만에 정상에 섰지만 축구에 국한된 이야기일 뿐이다. 긴장을 담은 낭만으로 표현된 라이벌의 이야기는 역사를 통틀어 셀 수도 없을만큼 많지만 어디까지나 힘과 실력이 대등할 때 가능한 관계이다. 애초에 아예 바라볼 수 조차 없는 대상이었다면 모를까 한때 자신과 비슷했던 상대의 전성시대를 달갑게 여기기는 그 어떤 개인과 집단에게도 쉽지 않다.



#독일의위엄 #프랑스의열폭 #끝나지않은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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