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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소년 Sep 05. 2020

대왕 폐하의 비결

우주의 기운이 그에게 쏠리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나름의 선별 과정을 거쳐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한국의 모 드라마를 골랐다. 전체적으로 ‘블링말랑’한 스토리임은 익히 들었던 터라 적당히 감안하며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1회를 본 후 바로 접어버렸는데 식상하기 그지 없는 예의 ‘엄친아(딸)’ 캐릭터에 기댄 전개과정에 실망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작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비현실적이라는 핀잔(비난?)에도 불구하고 일단 사용만 하면 ‘평타’ 이상은 칠 수 있는 카드이기 때문에 쉽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독자(시청자)도 그런 .사람 현실에(정확히는 내 주위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정을 이입하며 본다(이래서 만화는 인류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지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하나 갖추기도 힘든 수많은 능력과 행운이 한 사람에게 쏠린다면 대체 어떤 일까지 가능할까? 33년이란 짧은 삶을 살았지만 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건설했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3세(a.k.a 알렉산더 대왕). 그에게 한꺼번에 몰린 우주의 ‘원기옥’은 대체 무엇이었으며 그것을 굴리고 꿰어서 무슨 일을 해냈는지 따라가 보자.








좋은 교육


 어머니 올림피아스는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교양을 갖추었고 자연히 아들에게도 문화적 소양을 강조했다. 이런 어머니의 영향으로 알렉산드로스는 어린 시절부터 책을 가까이 했고, 그 중 호메로스의 그 유명한 대서사시 ‘일리아드’는 그야말로 ‘인생책’으로 삼고 늘 곁에 두었다. 이 책의 등장인물 아킬레우스는 알렉산드로스의 페르소나(persona) 그 자체였다. 훗날의 짧지만 강렬한 삶은 이미 10대 시절에 예견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 필리포스의 교육열도 만만치 않았다. 오히려 ‘문무’ 혹은 ‘지덕체’를 모두 강조했다는 점에서 올림피아스보다 한 술 더 떴다고 할 수 있다. 13살 때부터 3년간 알렉산드로스는 극기훈련의 ‘클래식’이라 할 수 있는 스파르타 방식의 혹독한 무예 교육을 받았다. ‘특전사’가 따로 없을만큼 철저히 실전에 대비한 강한 훈련 과정이었고, 이는 알렉산드로스가 우월한 위치에서 대군을 지휘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이와 동시에 철학, 정치, 역사, 자연과학 등의 분야에 관한 지식과 교양을 갖추기 위해 멀리 아테네에서 초빙한 ‘1타 강사’가 바로 그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필리포스는 그야말로 ‘타이거 대디’(Tiger Daddy)였다. 금수저에 일급 사교육이라는 익숙한 조합은 이미 그 시절부터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대립하기도 했지만 평생을 통틀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드로스에게 훌륭한 스승이었다



젊음


말씀하신 대로에요. 나이를 먹으면 경험이 늘어날 것이고 신중함도 몸에 배겠지요. 그러나 젊기 때문에 충분히 갖고 있는 순간 대응력은 약화되고 말 거에요”


동방 원정을 만류하는 50세의 거장 아리스토텔레스의 충고에 갓 20세를 넘긴 알렉산드로스는 이렇게 일갈한다.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지만 ‘빅엿’을 먹였다고 해도 좋을만큼 단호하게 본인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용기백배해서이기도 했지만 젊음이 갖는 강점을 알렉산드로스는 이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매번의 전투에서 알렉산드로스는 최전방에서 지휘하는 것을 넘어 그야말로 단신으로 적진을 향해 돌진했다(시오노 나나미는 이를 Punta Di Diamante, 즉다이아몬드가 달린 끝이라고 표현한다). 후대의 명장 한니발, 스키피오, 카이사르도 전투에서 선두에 섰지만 알렉산드로스처럼 극단적이진 않았다. 혈기왕성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젊음의 잠재력이 폭발하여 일어난 기적의 끝은 세계 최대의 제국이었다.



젊고 용기백배했던 알렉산드로스는 전투에서도 항상 최전방에 섰다.





행운


1. 선대의 우량한 유산을 물려받음


 그리스 북부에 위치한 마케도니아는 오랫동안 도시 국가들의 패권 다툼에서 소외된 변방으로 머물렀다. 하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도시 국가들은 내전에 돌입했고 이는 모두가 자멸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 시기에 테베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며 많은 것을 배운 필리포스는 훗날 왕위에 오른 뒤 군사개혁을 단행했고 북방 야만족을 점령해 농토를 확장했으며 가치가 안정된 통화를 유통시켜 경제 부흥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 결과 마케도니아는 아테네와 테베를 위시한 도시 국가들을 모두 물리치고 그리스의 맹주로 등극한다. 이 모든 것이 알렉산드로스가 태어나기 전부터 유년기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리고 필리포스가 갑자기 암살당하는 바람에 한창 나이에 왕위를 계승한다. 이미 건실한 나라를 적절한 시점에 물려받은 것은 분명 알렉산드로스가 ‘커리어’를 시작하는 데 있어 큰 선물이고 이점이었다.


2. 치명상을 여러 번 입고도 살아남


 다이아몬드의 끝이 되어 전투를 지휘하는 것은 군대의 사기를 높이는만큼 큰 위험도 동반한다. 알렉산드로스는 전투 도중 창과 화살, 칼에 찔려 여러 번의 중상을 입었고 한때 위급한 순간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매번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다. 분명 오늘날의 응급 처치만도 못한 치료를 받았을 텐데 과다 출혈이 동반된 부상을 이겨냈다는 것은 놀랍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 중 한 번이라도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동방 원정은 그 지점에서 즉시 멈췄을 것이다. 그 험한 난관을 이겨내고도 30대에 고작(?) 열병을 못 이겨 죽고 말았으니 마지막 순간에 알렉산드로스 본인은 정말 허무했을 것이다.


3. 생각지 못했던 상대의 허약함


 마케도니아가 그리스를 접수했다고는 하지만 당시의 페르시아는 영토 뿐만 아니라 병력의 규모도 큰 대제국이었다. 게다가 모든 전투는 적지에서 펼쳐졌기 때문에 정상적인 전력으로 맞붙는다면 마케도니아의 승률이 높다고 할 수 없었다. 실제로 페르시아의 용장들은 만만치 않은 전투력을 과시하며 마케도니아를 밀어붙였다. 그러나  페르시아 황제 다리우스가 전투 중 도망치면서(빤쓰런)급격히 마케도니아 쪽으로 전세가 기울었다(심지어 두 번이나). 물론 동방 원정에서의 승리 모두를 어부지리라고 폄하할 수는 없지만 다리우스의 도주가 없었더라면 알렉산드로스는 모든 전투를 훨씬 더 힘들게 치렀을 것이며, 어느 시점에서는 패퇴했을지도 모른다.




탁월한 결단력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접한 알렉산드로스는 오랫동안 고민하지 않았다. 되려 그냥 칼을 들고 내리쳐 모든 줄을 끊어내 버렸다. 복잡하게 꼬인 매듭의 끈을 찾는 수고 따위는 필요없었다. 이는 알렉산드로스의 결단력과 실행력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이야기로 지금껏 전해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충고에 대한 대답도 단지 젊어서가 아니라 확신이 들면 망설이지 않는 성품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알렉산드로스는 전쟁터가 결정되면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전투에 몰입했다. 그에 반해 오히려 아버지 뻘인 다리우스는 이길 수 있는 전력을 구축하고도 이런 저런 고민에 빠지고 주저하기 일쑤였다. 요즘 말로 하면 알렉산드로스는 책과 컴퓨터만 있으면 어디서든 공부하고 일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하고 하고 싶은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판단과 실행에 거칠 것이 없었다.






 



도전의 가치를 단지 성공 여부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도전을 헤쳐나가는 과정과 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이다.



 

 분명 알렉산드로스는 본인의 야망을 펼치고 실현시키기에 유리한 수많은 조건들을 갖추고 있었고 그 때문에 동방 원정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국고(國庫)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상대였던 페르시아는 넓은 영토와 많은 병력을 갖춘 거대한 강자였다. 도전 자체만 놓고 볼 때는 객관적으로 무모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결과와 별개로 이 도전을 높이 사야 하는 이유는 알렉산드로스가 전투를 수행하고 정복지의 많은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각종 변수와 예상치 못한 난관 앞에서도 알렉산드로스는 당황하거나 조건의 열악함을 탓하지 않고 신속히 사안을 판단하고 그대로 실행했다(물론 모든 판단을 독단적으로 내린 탓에 일부 부작용이 있었지만).

  이런 알렉산드로스의 처신은 모든 것이 예측 불허로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능동적인 대처가 훌륭한 계획이며, 시련에 굴하지 않는 태도가 우수한 지능임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21세기에조차 지난날의 낡은 사고 방식을 바꾸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임을 생각하면 무려 2300여년이나 앞서 ‘복잡계’(chaos)를 살아가는 해법을 제시한 알렉산드로스의 혜안은 놀라울만큼 선구적이었다.

 

 사실 재능과 행운을 한꺼번에 가진 사례는 알렉산드로스의 경우 말고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 성공으로 이어졌던 것은 아니다. 알렉산드로는 소유와 성취는 엄연히 다르며 그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어떻게 채워가는지를 짧은 삶 전체를 통해 온 몸으로 보여주었다. 그것이 역사의 수많은 정복 군주들 중 유독 그의 이름만이 대왕(the Great)이란 수식어와 짝을 이루어 기억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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