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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소년 Sep 07. 2020

불후의 명곡? 불후의 번역!

‘Hand in Hand’가 ‘손에 손잡고’가 된 이야기

 올해 초부터 전세계를 휩쓴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인해 세계의 수많은 행사들이 연기되거나 취소되었다. 7월 개최 예정이었던 도쿄 올림픽도 그 중 하나인데, 일부에서 취소 여론까지 나왔으나 결국 최근 사임한 아베 전 총리와 일본 정부가 힘쓴(존버?) 결과 1년 연기한 2021년 개최로 결정되었다. 아마도 일본 정부의 의도는 올림픽을 통해 국가의 부흥을 도모하고 국민의 지지도를 끌어올리려는 것일텐데 , 물론 올림픽은 아직도 전세계적 차원의 축제이지만 그 위상은 예전만 못한 것이 사실이다. 바야흐로 21세기인데 올림픽에 이런 기대를 건다는 것만 봐도 아베의 사고는 군국주의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재임 중에 추진했던 수많은 논란이 된 정책들을 차치하고라도 말이다(물론 인간적인 차원에서는 하루빨리 쾌차하길 기원한다).


  하지만 20세기에 올림픽은 국력의 상징이자 이를 전세계에 과시하는 ‘종합 박람회’였다. 일본도 1964년 올림픽을 통해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한 동력을 얻은 바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은 부유한 선진국들이 독점하던 개최권이 최초로 동아시아의 작은 개발도상국으로 넘어왔던 대회였다. 게다가 당시 공산주의와 자유주의 양 진영 간에 화해(détente)의 무드가 조성되며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었다. 결국 당시 IOC회원국 중 절대 다수인 160여개국이 참가하여 명목상으로나마 전세계가 화합하는 무대가 만들어지게 된다.



https://youtu.be/w0UKW85WMyY

1981년 9월 30일 독일(당시 서독)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서울올림픽 개최를 발표하는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위원장






 지구촌의 경사를 맞아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작곡가 조르조 모로더(Giorgio Moroder)는 세계의 화합을 주제로 한 테마송 Hand in Hand를 서울에 선물로 보낸다. 모로더는 할리우드 유명 영화의 OST에 참여하여 아카데미 음악상을 3회나 수상한 세계적인 프로듀서였다. 게다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탐 휘틀록(Tom Whitlock)이 쓴 가사 역시 냉전 시대에 평화를 갈망하던 전세계적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작품성의 차원에서 워낙 탁월했기 때문에 다른 곡들과의 경합이랄 것도 없이 무난하게 주제곡으로 선정되었다(모로더와 휘틀록의 합작품 중 하나가 바로 그 유명한 Top Gun의 OST ‘Take My Breath Away’이다).

  그 뒤의 결과는 알려진 바와 같다. 올림픽 당시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까지도 이 곡은 한국인의 ‘국민 노래’, ‘Signature Song’으로 건재하고 있다. 심지어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당시 각종 포털과 유튜브를 비롯한 SNS에 이 노래를 다시 한 번 테마송으로 사용하자는 ‘국뽕’ 의견이 넘쳐날 정도였다(심지어 그 중 상당수는 서울 올림픽 이후 태어난 세대였다).

 하지만 과연 거장들이 만든 작품이며 한국에서 열렸던 올림픽의 테마라는 이유만으로 ‘불후의 명곡’이 된 것일까? 그렇다면 다른 올림픽 주제가들도 그 나라에서의 위상이 이와 같아야 할 텐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대체 무엇이 그 날의 노래를 ‘스페셜 원’(Special One)으로 만든 신의 한 수였을까?




https://youtu.be/dFdIezJz6Vk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열창하는 코리아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가장 감동적이고 극적인 공연으로 남아있다.












See the fire in the sky
하늘 높이 솟는 불
We feel the beating of our hearts together
우리들 가슴 고동치게 하네
This is our time to rise above
이제 모두 일어나
We know the chance is here to live forever
영원히 함께 살아가야 할 길
For all time
나아가자
 
Hand in hand we stand
손에 손잡고
All across the land
벽을 넘어서
We can make this world a better place in which to live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Hand in hand we stand
손에 손잡고
Start to understand
벽을 넘어서
Breaking down the walls that come between us for all time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 마음 되자
Arirang
손 잡고
 



  Hand in Hand가 서울에 전달된 것은 대회 개막을 5개월 앞둔 1988년 4월이었고 한국어 가사로의 번역은 당시 서울대 김문환 교수에게 맡겨졌다. 김 교수는 번역체 특유의 길고 딱딱한 문장이나 현학적인 한자어를 배제하고, 순수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리면서도 본래 영어 가사의 시적 서정성을 그대로 보존했다. 원작자에 대한 예의를 지킴과 동시에 창작의 자유까지 저 짧은 가사 안에 표현한 것이다. 3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단지 기계적으로 언어만 바꿔 원작을 ‘필사’하는 수준에 불과한 글과 작품들이 넘쳐나는 것을 보면, 당시 김 교수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갔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그야말로 ‘문환 매직’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탁월한 번역이었다.

 사심을 더하고 조금 과장한다면 김 교수는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서사시를 새롭게 써냈고, 곡의 완성도를 극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원곡 그 자체로도 역사에 남을 명작이지만 곡의 완성도에 화룡점정이 된 이토록 낭만적인 번역이 없었다면 오늘날까지 ‘국민 노래’로 기억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개인별로 와닿는 느낌은 다를 수도 있다. 저 정도면 그저 무난하고 평이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지 않는가라며 말이다. 그래서 다소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구글 번역기를 돌린 결과를 소개한다. 물론 일정 수준 이상의 지적 능력을 보유한 학자라면 이렇게 번역하진 않겠지만, 사고의 자유가 배제된 정직함이 되려 ‘괴랄함’이 될 수도 있음을 말하기 위해 인용했다.



See the fire in the sky

하늘에서 불을 보라
We feel the beating of our hearts together

우리는 함께 심장 박동을 느낍니다.
This is our time to rise above

지금은 위로 올라갈 시간입니다
We know the chance is here to live forever

우리는 영원히 살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For all time

항상

Hand in Hand we stand

손에 손 잡고 우리는 서
All across the land

온 땅에
We can make this world

우리는이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A better place in which to live

살기 좋은 곳
Hand in Hand we can

손에 손 잡고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Start to understand

이해하기 시작

Breaking down the walls

벽을 허물다
That come between us for all time

항상 우리 사이에와
Arirang

아리랑


to부정사, 관계대명사, 명령문을 정확히 이해한 ‘칼독해’이다. 과연 번역기가 잘못한 걸까?








 번역의 경험은 없지만 역자의 입장에서 정확한 의미의 전달과 자유로운 해석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은 늘 어렵고 애매하리란 점은 충분히 예상된다. 조금 재량을 발휘해도 될 듯 한데 굳이 이렇게 번역기 돌린 듯한 문장으로 써야 하나 싶어 안타까울 때도 있지만 독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역자가 조금 더 용기내어 자유롭게 써 주길 바랄 뿐이지만 어디까지나 역자의 영역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정말 서정적이고 자유로운 김 교수의 번역은 탁월한 예술적 유연성의 상징이었다. 직접 확인하거나 들은 바는 없지만 아마도 당시 김 교수는 어떤 계기로 인해 보다 자유로이 생각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던 것 같다. 그랬기에 대한민국에 영원히 기억될 문화재급 선물을 안길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안타깝게도 2018년 4월 김문환 교수는 별세했다. 당시 아침 뉴스에서 하단에 짤막하게 한 줄로 보도되었는데, 명작을 남긴 인물이 너무 쉽게 잊혀지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많이 안타까웠던 기억이 난다.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T.M.I

 

 노래를 부른 코리아나는  1970~80년대에 ‘아리랑 싱어즈'라는 이름으로 유럽에서 상당히 인기를 얻었고 서독 ARD에도 출연하는 등 해외에서는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그룹이었다(참고로 ARD는 현재에도 건재하는 독일 제1공영방송이며 그 당시 동아시아 밴드가 서구 선진국의 방송에 출연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형제들로 구성된 가족 밴드이며 그 중 보컬 이승규의  딸이 바로 배우 클라라(이성민)이다. 멤버 홍화자, 이승규, 이용규, 이애숙은 각각의 순서대로 클라라에게 큰어머니, 아버지, 삼촌, 고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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