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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소년 Sep 23. 2020

결국 탐 크루즈의 ‘개꿈’이었다

정복 불가능한 그들만의 성

20년 전 실제 부부였던 탐 크루즈(Tom Cruise)와 니콜 키드먼(Nicole Kidman)이 극중에서도 부부로 출연했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Eyes Wide Shut)은 은밀한 인간의 욕망을 파헤쳤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화려한 볼거리와 스탠리 큐브릭의 멋진 편집 덕에 비교적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지루하지 않게 감상했다. 다만 등장 인물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 여느 영화보다 조금 더 집중했던 기억은 있다.



지금은 각자 남남으로 살고 있지만 둘은 한때 비현실적으로 멋진 남녀의 결합으로 주목받았었다.



 수많은 평론가 및 영화팬들에 의해 이미 많이 재해석된 작품이고 또 감상평을 남길만큼 깊이 심취해서 감상하지도 않았다(실은 그럴만한 식견도 부족하다). 다만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주목하고 싶은 포인트는 따로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미국 동부 백인 상류층 사회의 실체와 민낯 그리고 그들이 형성해 놓은 공고한 계급 사회의 룰(rule)이다. 미국이 절대 강국으로 올라선 이후 이들의 교육, 취향, 사고 방식 등은 전세계인들의 워너비(Wannabe) 내지 롤 모델(Role model)이 되었고 실제로 세계 전역의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산이 높은만큼 골도 깊을 수 있다(세상엔 예외가 적지 않기 때문에 단정형이 아닌 가능형의 문장으로 표현했다). 과연 이들은 그야말로 타의 모범이 될만한 이상적인 삶을 살고 있을까? 그리고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빌은 아내 앨리스와 함께 빌의 지인(사실은 갑) 지글러가 주최하는 파티에 참여한다. 파티에 참여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 백인이며 사적으로 초대장을 받은 뉴욕 상류층이다. 파티를 한창 즐기고 있던 와중에 빌은 지글러의 긴급한 호출에 모든 것을 제쳐두고 위층으로 올라간다. 지글러는 파티의 호스트였지만 품격 따위는 제쳐둔 채 윤락 여성과 음란한 만남을 즐기고 있었다. 여성은 약물 과다 복용으로 빈사 직전이었으나 빌의 응급처치 덕분에 일단 무사히 회복한다. 물론 빌이 지글러의 주치의이기 때문에 호출에 응해야 하는 의무는 있지만, 이 장면에서 빌은 지나치게 ‘각이 잡힌’ 채로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동등한 비즈니스 관계가 아님이 한눈에 느껴질 정도였다. 거칠게 말해 이 장면에서 빌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는 철저한 ‘을’의 입장에 처해 있었다.

 물론 빌도 전문직종에 종사하며 소득 및 교육 수준이 높은 엘리트 남성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범한(?) 세상의 수준에서나 그럴 뿐이다. 영화 막판에도 등장하지만 지글러는 그 문제의 비밀 난교 파티에도 초청받을 정도의 거물이다. 사실 본인의 저택으로 상류 인사들을 불러모은다는 자체만으로도 그의 사회적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이토록 거대하고 높은 계층의 벽 앞에서 빌은 한낱 ‘고용인’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친구인 닉으로부터 우연히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해 빌은 문제의 저택에 입장할 수 있었다. 대저택의 모든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있었고 중앙의 홀에서는 음산하고도 장엄한 분위기 하에서 고대 사회의 제사장을 연상시키는 남성이 주관하는 모종의 의식이 행해진다. 여러 평론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를 프리메이슨(Free Mason)이나 일루미나티(Illuminati)와 연관된 의식으로 보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지만 정확한 것은 밝혀지지 않았다. 제사장의 윤허(?)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녀들은 짝을 이루어 숨겨졌던 성적 욕망을 분출하기 시작한다. 가면을 쓰고 있기에 신분이 밝혀질 리도 없고 또 밝힐 생각도 없다. 그저 혼미해질 정도로 쾌락에 취해 이 밤을 불태울 뿐이다.



가면 속에 정체를 감춘 채 그들은 환락에 취해 하룻밤을 보낸다. 물론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아한’ 모습으로 돌아가지만


 

 이들 모두가 내로라하는 뉴욕 상류 사회의 거물들이다. 이제는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미국과 유럽의 상류층은 그 태생부터가 여타의 사람들과는 다르다. 대대로 내려온 부호 집안에서 태어나 공식처럼 정해진 엘리트 코스를 밟은 후 월스트리트의 금융 기업을 비롯한 최상위권 직장이나 전문직, 기업의 후계자로서 사회 생활을 시작한다. 동부의 상원 의원(Senate) 같은 자리는 사실상 이런 상류층 집안 출신들이 거의 독점하는 게 현실이다. 당연히 이들의 사교 모임은 철저히 사적으로 이루어지고 이들끼리의 학연, 지연 등으로 맺어진 인맥은 한국 사회의 그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끈끈하고 공고하며 동시에 사회 다른 계층에 대해 폐쇄적이다.


 이런 초호화 커뮤니티에 ‘침입’한 빌은 결국은(사실은 당연히) 발각되고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한다. 며칠 전 지글러의 ‘노리개’였던 여성이 나서서 구해주지 않았다면 빌은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될 수도 있었다. 빌이 대저택을 나온 후에도 묘령의 인물들이 그를 미행하며 빌에게 입장 암호를 알려준 닉은 정체 불명의 괴한들로부터 폭행당하기까지 한다. 부당함과 두려움을 느낀 빌이 다시 대저택을 찾아가지만 돌아온 것은 ‘신고하면 재미없다’는 협박 뿐이었다.



선을 넘은 빌은 지글러에게 경고와 훈계의 대상일 뿐이었다


 이미 그 날 밤의 난교 파티에서 빌과 눈빛을 교환하던 장면에서 암시되었지만 지글러 역시 그 곳에 있었다. 사건 발생 며칠 후 빌은 지글러의 저택을 방문하는데 지글러는 빌이 멋대로 난입해서 터무니없는 무례와 실수를 저질렀다고 질책한다. 심지어 빌을 구해준 여성에 대해서도 원래 창녀이고 마약 중독자인데 가지고 있던 약을 제멋대로 복용하다 약물과다로 죽은 것이라 일갈할 뿐이었다. 이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나듯이 지글러가 빌을 정중하게 대접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선’을 넘지 않았을 때에 한해서이다. 안타깝지만 대부분의 경우에서 관계의 룰은 양쪽의 합의 하에 정해지지 않는다. 자신의 영역이 조금이라도 침범당한다고 느끼는 그 순간 그들은 즉시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경고한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이것은 제안이나 부탁이 아니다.







  

  사실 보다 자세한 설명을 위해서는 유럽 귀족 사회와의 연관성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비록 미국이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전세계를 압도하고 있지만 그들의 생활을 지배하는 유/무형의 문화적 개념은 아직도 유럽의(특히 영국과 프랑스) 영향을 지대하게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서부보다는 동부에서 두드러지며 예상하는 바와 같이 민주당보다는 공화당 지지자들에게서 더 흔히 나타난다. 그리고 이들에게 집중된 부와 권력의 거대함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현재의 판도는 적어도 한 세기 이상은 더 지속될 것이라 예상해 본다.


 지면 관계상 그리고 개인적 식견의 한계상 더 자세한 설명은 어렵지만 서양 사회를 알아가면 갈수록 한국에서 회자되는 ‘헬조선 담론’은 차라리 천진난만하단 생각마저 든다. 그만큼 서양 상류 사회는 질식할 정도로 폐쇄적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재 한국 사회의 불평등 문제가 사소하다거나 서양 사회에 기회가 아예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세상의 모든 현상은 나름의 속사정이 있고 알려지지 않은 진짜 실체가 존재할 수 있음을 말하고 싶다. 그런 사정을 인식하고 염두에 둘 때 보다 더 균형잡힌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우리는 보다 침착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침착함으로부터 모든 건전한 그러나 위대한 변화는 시작된다.



행여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작가님들께서 가감없이 지적해 주셔도 됩니다. 저는 각종 콘텐츠를 읽고 시청하기만 했지 아직 그 땅을 밟아보지 못한 ‘미알못’이니 얼마든지 착오는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좋은 조언 주시면 앞으로 역사/정치/문화 콘텐츠를 소비하고 생산하는 데 참고로 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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