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아침 6시 기상이라는 루틴(routine)을 지킨다는 자부심(근자감?)은 올림픽대로를 통과해야 한다는 미션 앞에선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양화대교를 지나 여의도 앞에 도달하니 이미 주차장을 방불케 할만큼 많은 차량이 줄지어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월요일 아침 교통 체증의 ‘위엄’은 여전했다.
본격 연휴 시작 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도로를 가득 채운 차량에 탄 사람들은 대부분 일하러 가는 중일 것이다. 정부에서 아무리 방역대책을 강화해도 많은 사람들은 움직일 수밖에 없다. 숨쉬고 먹고 자는 최소한의 활동마저도 그에 준하는 생산이 있어야 가능한데다, 아직도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경제 활동은 반드시 사람이 직접 대면해야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적어도 서울의 출근길 광경만 놓고 본다면 아직도 한국 경제는 역동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목격한 모습과는 달리 각종 뉴스와 보고서, 서적들은 마치 세상의 종말이 오기라도 한 듯 우려섞인 전망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대형 서점에서 ‘신상’으로 진열된 책들 중 상당수는 코로나 19 이후의 세상은 이전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를 것이란 주장을 담고 있다. 그 중 유난히 자극적인 슬로건을 삽입한 표지가 눈에 띄었는데 다시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니 각자의 삶을 리부트(Reboot)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저자는 본인의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으며 강력한 팬덤을 보유한 인플루언서이다.
당연히 충분한 사전 조사와 분석을 거친 주장일 것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접하는 실제의 경제 활동을 볼 때 해당 주장이 현실과 괴리가 있는 것 아닐까 싶은 의문이 들었다. 과연 정말 큰일났다고 말할 만큼 세상에 심각한 위기가 닥친 것일까? 그리고 코로나 이전의 삶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인가?
역사는 예측 불허의 방향으로 전개된 사례도 많았기 때문에 과거로부터 정답을 찾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인류는 과거부터 수많은 전쟁을 치렀고 그 중 상당한 경우 모든 물적 인프라가 파괴되는 위기를 맞았지만 결코 세상의 발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딱히 기반 시설이라고 할 것도 없었던, 그래서 아예 다 갈아엎고 새로 시작하는 게 차라리 나았던 중세에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20세기의 그 참혹했던 1,2차 대전 후 유럽은 정부 차원의 계획과 미국의 원조 등에 힘입어 다시 풍요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대한민국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종전 후 40년도 지나지 않아서 당시 국력의 상징이던 올림픽을 개최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현재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팬데믹(pandemic)은 전염병 감염에 대한 우려로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그 결과 각종 교류가 중단된 것이지 결코 기존의 산업 및 문화 시설이 파괴된 것이 아니다. 할 수 있지만 안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데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시절이 끝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전의 일상으로 복귀할 것이며 멈춰섰던 경제가 다시 움직일 것이 유력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자체 제작한 설문 조사를 한 번 해보겠다. 코로나 19 사태가 종식되더라도 과연 다음의 각종 활동들을 멀리하며 참여하지 않을 것인가? 사람들의 선호가 거짓말처럼 바뀔 것인가?
해외여행
실내 운동(피트니스, 요가, 필라테스, 농구, 수영, 배드민턴, 스쿼시, 풋살 등)
학교에서의 정규 수업 및 학원(어린이집, 유치원 포함)에서의 사교육
영화 및 뮤지컬, 콘서트 관람
종교 활동(집단 예배, 미사, 법회 등)
경기장에서의 스포츠 직관
각종 단체 모임 및 행사(결혼식, 돌잔치 등)
물론 세상의 모든 주장은 일리가 있고,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한만큼 완벽히 빗나갈 것이라고 단정짓는 것도 성급하다. 그리고 책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저자의 정확한 주장을 이해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저자가 조금 더 완화된 표현을 사용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본인의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무명 작가도 아니고 책을 반드시 팔아야 할만큼 경제적으로 절박하지도 않을텐데 굳이 이토록 자극적인 마케팅을 한 이유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생각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허락되어야 하고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말해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저자의 능력과 경험은 백번 존중하며 매우 공감하며 경청한 강연도 있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해당 슬로건은 주장을 넘어 ‘어그로’에 가깝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현재의 상황을 ‘PC버전’을 인용해 개인적으로 해석하면 굳이 리부팅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 이미 부팅되어 있고 CPU에 특별한 문제는 없으나 다만 일시적인 버그가 좀 있거나 버퍼링이 좀 느려진 딱 그 정도라고나 할까?
인류는 비합리적인 탐욕에 눈이 멀어 수많은 과오를 저지르기도 했으나 위기 앞에서 뜻을 모아 진보를 이루어내기도 했다. 현재의 팬더믹은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니란 점에서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무사히 종료되고 이전의 세상으로 복귀하리라고 개인적으로 예상해 본다. 그리고 이전 삶의 소중함을 깨달은 모든 사람들이 더욱 성숙한 자세로 삶을 대하게 되리라고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