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하고 느끼고 즐기면 그걸로 된 걸까?
21세기 들어 한층 거세진 신자유주의의 흐름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의 경쟁을 한층 치열하게 만들었고, 후기 산업사회에 돌입한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심미적 가치가 담긴 제품과 서비스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다. 말이 조금 거창했는데 간단히 말하면 현대인들은 경쟁을 뚫고 생존해야 한다는 미션과 즐겁고 여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영위하고 싶다는 욕망을 동시에 안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에 편승해 10여년 전부터 ‘지적 공동체’를 표방하는 여러 커뮤니티 비즈니스(community business)가 탄생했다. 대도시의 젊은 직장인들을 주고객층으로 삼아 소정의 비용을 받고 글쓰기 교실, 영어 및 외국어 스터디, 마케팅이나 코딩, 기획, 회계 등의 직무 관련 강의, 와인 시음, 요리 실습, 재테크 강의, 글로벌 경제 브리핑, 트렌드 서치(맛집 탐방)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해당 커뮤니티에서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a.k.a 인적 네트워킹) 커리어를 개발하여 ‘일잘러’가 되거나 이직에 성공할 수 있고 취향의 발견을 통해 다채로운 일상을 즐길 수 있다는 슬로건을 내걸며 가입을 권한다.
그런데 약속이나 하듯 모든 커뮤니티의 모든 슬로건이 달하는 종착역은 하나로 통일되는데 그것은 바로 성장이다. 강조하다 못해 남발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 물론 해당 커뮤니티가 나름 의미있는 체험을 하는 곳이란 주장을 하고픈 의도라면 일견 이해는 된다. 게다가 유료 서비스인만큼 참여자들에게 무엇 하나라도 얻어갈 수 있다고 어필할 필요도 분명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이란 개념을 너무 가볍고 쉬운 것으로 보는 듯해 불편했다. 성장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남들보다 나은 내가 되는 것일까 아니면 어제보다 괜찮은 내가 되는 것일까? 몰랐던 것을 알게 되면 성장한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개인별로 수많은 의견이 있을 것이고, 하나로 정의내릴 수 없다는 것쯤은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글에서는 ‘작정하고’ 개인적인 결론을 먼저 내리고 시작해 보려 한다
성장은 지적 허세에 기반한 소비로 얻을 수 있는 ‘액세서리’가 아니다.
성장이란 한 차원 높은 경지에 이른 그야말로 아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본인의 일의 영역에서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조직이나 사업체 내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됨을 의미한다.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이라면 그 어떤 범위에서 문제가 출제되더라도 풀 수 있도록 완비된 상태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운동으로 체력을 가꾸고 몸매를 만드는 입장이라면 예전의 자신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고 매력적인 모습이 되어야 한다. 인간관계에서는 상대의 심리를 잘 읽고 그에 맞는 대응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섭섭하거나 심지어 부당한 대접도 최대한 참고 넘길 줄 아는 경지까지 올라가야 한다. 책과 각종 미디어를 비롯하여 일상에서 접하는 본인이 종사하는 분야의 지식에 대해 거의 완벽에 가깝게 이해하며 타인에게 알기 쉽게 설명할 줄도 알아야 한다. 사업에서는 본인의 일만 열심히 하는 것을 넘어 업계와 시장 전반에 걸친 온갖 복잡한 역학관계들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오는 수많은 난관들을 침착하고 평온한(적어도 겉으로는) 자세로 무난히 넘길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여 아예 차원이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라야 비로소 성장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가능하다면 운이 따라주면 더 좋다).
물론 도입부에 언급한 각종 문화 체험과 인적 교류가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사회 생활에서 필요한 스펙과 실력을 쌓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취향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사회 전반에 흐르는 문화적 사조를 발견하고 본인의 시야를 넓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직접 사람을 만나는만큼 보다 실질적인 친분을 쌓고 상대방과 깊이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계기는 그야말로 시작에 불과할 뿐 절대 완성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에 더해 성장은 결코 소비 그 자체로만은 달성할 수 없다. 고가의 사치품을 산다고 해서 구매자의 지식과 가치관, 재력, 외모, 업무 능력, 통찰력 등이 향상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유익한 내용을 강의로 들었다고 해서, 유능한 사람들을 만난다고 해서 곧바로 지식 수준과 업무 능력이 향상되지 않는다. 성장은 유의미한 생산을 할 수 있을 때만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본인 스스로가 특정 업무를 주도해서 끝낼 수 있어야 하며, 청자의 상황에 맞춰 적절한 설명을 글과 영상 등을 통해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결과물이라도 직접 생산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물론 개인의 경험치와 숙련도에 따라 차이는 있다).
그런데 그저 참석하고 좋았다 혹은 즐거웠다는 느낌에 그친다면 그걸로 모든 상황은 종료되고 만다. 보다 적나라하고 거칠게 말하자면 돈은 돈대로 쓰고 그 대가로 남겨지는 것은 고작 ‘난 특별한 사람이다’라는 환상일 뿐이며, 당연한 말이지만 당사자의 삶은 질적으로 거의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단편적인 스펙은 조금 달라질 수 있어도 세상의 흐름과 타인의 심리를 읽어내는 깊은 수준의 통찰력은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저 경험과 지식을 소비하기만 했을 뿐 수많은 ‘담금질’을 통해 그것을 본인의 상황에 맞게 재구성하거나 그로부터 새로운 결과물을 창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각종 문화 체험을 배경으로 한 ‘성장 담론’은 공허하며 지적 허세를 자극한 마케팅에 불과하다. 차라리 삶에서 소소한 혹은 고차원적인 행복을 추구한다는 모토를 내걸었다면 적어도 진실성 하나쯤은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사실 보다 적나라하게 말하면 이것조차도 비교적 고소득 직종에 종사하며 가정의 생계를 책임질 필요가 없는 대도시 중산층 이상의 젊은 싱글들에게나 해당된다). 수익을 내야 하는 기업이기에 고객 유입이 절실하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시장에 제시할 수 있는 메리트는 여러 가지가 있을텐데 굳이 성장을 그토록 강조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얼마 전 트렌디한 매거진을 표방하는 어느 모바일 서비스의 구독을 종료했다. 멤버십을 탈퇴하려고 하니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느꼈던 개인적 소견을 적어달라는 소정의 설문조사 양식이 제시되었다. 물론 해당 서비스는 유익한 콘텐츠를 싣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업계에서 주목받는 스타트업 중 하나였다. 구독 초기에는 만족하며 읽은 콘텐츠도 많았다. 하지만 초반과는 달리 갈수록 구독자의 진정한 역량 상승보다는 단편적인 스펙 쌓기에 유리한 콘텐츠 위주로 구성하는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었으며, 우리의 콘텐츠를 구독하고 소비하면 성장할 수 있을거라는 해묵은 담론을 반복하는 데 적지 않게 실망했다. 안 그래도 이 점에 염증을 느껴 구독을 중지하려고 하던 차에 설문지를 보니 ‘직썰 본능’이 치솟아 올랐고, 맹렬히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두들기며 적었다. 메모로 남겨놓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옮길 수 없지만 좋은 매거진 만드느라 수고 많으신 건 알겠는데 제발 스펙쌓기를 성장으로 포장하지 말고 나아가 성장이란 말 좀 남발하지 말라는 다소 매정한 혹평을 남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진정한 성장을 이루는 방법은 크게 복잡하거나 생소하지 않다. 일상 생활 속에서도 약간의 노력을 시간을 두고 꾸준히 기울이면 모든 사람들은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 많은 자본이 필요하지도 않고 낯선 환경을 인위적으로 설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음과 같은 생활 속에서의 지침 몇 가지만 지켜도 얼마든지 각자의 삶에서 실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많은 세상사가 그렇듯 결국 성장의 열쇠도 우리 자신이 쥐고 있다는 새삼스러운 결론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다소 기분이 상하거나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도 차분하고 침착하게 대응한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대화한다
야외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하면서도 본인의 주장과 철학을 조리있게 표현하는 식견을 쌓는다
작은 규모의 자금이라도 직접 투자해서 수익을 내는 경험을 해본다
책이나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짧게라도 써 본다(타인을 의식하거나 특정한 형식에 얽매일 필요는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