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무난하고 평범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성공하고 싶다면 대다수의 대중과는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라는 격언이 있다. 실제로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 중 자신있게 본인의 주장을 견지하며 기존의 고정관념을 해체했던 사례가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와중에 고개를 든 것은 그게 과연 내게도 적용될까란 의문이었다. 개성과 주관을 표현했을 때 공감을 얻었던 경우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경험과 식견이 부족한 게 그 이유의 전부가 아니란 생각이 들 정도로 타인들과 엇박자를 낸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아직 고민 중이기에 설득력있는 답까진 얻지 못했지만 유력한 ‘가설’은 나의 취향 혹은 성향이 대중적인 그것과 달라도 너무 심하게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사자들은 운이 좋았다고 하지만 ‘마음의 소리’에서 ‘외모 지상주의’로 이어지는 ‘S급’ 웹툰들의 경우만 봐도 작가의 개성과 대중의 선호는 기가 막히게 일치했다. ‘내 마음 가는대로 행동해도 세상이 인정하더라’는 ‘공자(孔子) 70세의 법칙’은 사실 선택받은 자들에게나 통용되는 게 현실이다.
고민과 탐색 끝에 도달한 ‘중간 연구 결과’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다수의 대중들이 선호하는 취미 활동 혹은 문화 생활 중 상당수가 나의 경우엔 ‘해당 없음’이란 사실이었다. 그 중 대표적인 5가지를 추려보니 다음과 같았다.
제주도 여행, 골프, 스키, 자전거 라이딩(싸이클), 아파트에서 애완동물 키우기
이 5가지를 다 좋아하진 않더라도 최소 1~2가지는 현재 한국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일상에 ‘필수템’이 되어 있다. 하지만 5가지를 모두를 안 하더라도 전혀 아쉽지 않은 사람이 바로 나다. 이런 재미있는 걸 왜 안 하느냐고 누가 물어올 일은 별로 없겠지만, 나의 라이프 스타일과 가치관을 다시금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하나씩 이유를 말해보려 한다. 여기는 브런치니까~~
제주도 방문은 1990년대 고 1 수학여행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2000년대 이후로 달라진 제주도를 생각하면 실질적으로 안 가 본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에 대해 아쉽지 않았고 한 번 가보고 말리라고 다짐하지도 않았다. 물론 특별히 제주도를 싫어하거나 피하는 것은 아니다. 영상과 사진으로 보는 제주도의 맑은 하늘과 푸른 바다는 동경의 대상이 될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아쉽지 않은 이유는 개인적으로 도시를 너무 좋아해서이다. 서울과 부산은 갈 때마다 계속 머무르고 싶고, 예전에 다녀왔던 런던과 파리는 주기적으로 구글로 재방문하고 있으며, 뉴욕과 LA는 워낙 ‘여행 코스프레’를 많이 하고 각종 콘텐츠를 듣고 읽어서인지 안 가봤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이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요즘의 상황대로 영원히 세상이 굳어진다 해도 제주도 못 다녀온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후회를 하지 않을 듯 하다. 같은 맥락에서 하와이, 괌, 세부 등의 휴양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a.k.a MSG), 뮌헨의 BMW Welt, 밀라노의 주세페 메아차(Giussepe Meazza)를 못 가봤다는 후회는 그 때문에 먼 훗날 눈을 감지 못할 정도로 클 것 같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넓은 잔디밭에서 걸을 수 있고 운동 효과도 있으며 소중한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골프가 왜 좋으냐고 물었을 때 대다수의 골프 매니아(예찬론자)들이 하는 대답이다. 물론 그들이 정말로 건전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오기도 하며, 골프라는 종목이 흥미롭고 매력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요즘같은 시기에도 골프장에 예약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충분히 납득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골프에 입문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골프가 싫어서가 아니라 다른 취미 생활이 더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피트니스나 농구 같은 실내 운동, 안락한 실내에서의 독서, 가끔 차를 몰고 다녀오는 쇼핑, 생각이 맞는 사람과의 대화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풍요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랬다.
혹자는 그래도 남들 다 하는데 굳이 안 하는 이유가 있느냐고 내게 물어올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남들 다 한다는’ 얘기가 가능할만큼현재 한국의 골프 인구는 많다. 이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추측하는 이유가 있는데 현재 한국 사회에서 골프는 때가 되면 당연히 해야 하는 거의 ‘통과 의례’에 가까운 그 무엇이 된 듯한 느낌이다. 실상은 여건이 되면 선택할 수 있는 스포츠이자 레저일 뿐인데 말이다. 조금 심하게 말해서 골프에 입문해야 비로소 ‘어른’ 취급을 해준다고 하면 지나친 과대망상일까?
골프를 나쁘다고 말할 생각도 이유도 전혀 없지만, 적어도 ‘당위론’에 이끌려 시작하고픈 생각은 전혀 없다. 선택과 결정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골프로부터 나만의 ‘재미’와 ‘의미’를 찾을 수 있느냐의 여부가 될 것이다
직접 즐기지 않지만 운동 효과와 재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 다만 헬멧을 비롯한 안전 장비를 모두 구비하고 자전거 전용 도로 및 갓길 주행을 철저히 준수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위험해 보인다. 몇 년 전 어느 봄날 한강에서 앞에 바구니가 달린 ‘빈폴 자전거’를 탔었는데 경주용 자전거를 타는 동호인들과 동선이 겹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들이 숙련되었다고 해도 충돌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했다. 게다가 한강의 자전거 도로는 모두의 안전을 보장할만큼 널찍하지 않았다.
자전거만 다니는 도로도 이러한데 차도는 굳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교통 사고는 내가 아닌 타인의 잘못으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소위 ‘코스모스길의 낭만’이 그 정도의 위험을 감수할만큼 대단하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그런 낭만을 평생 모르고 살지언정 안전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라이딩 매니아들의 취향은 존중하니 항상 안전 운행하시길.
한때는 눈덮인 슬로프의 스피드에 대한 로망도 잠깐 품어봤고 스포츠로서의 ‘간지’도 나무랄 데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 자신의 취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대해 솔직하기로 한 뒤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일단 라이딩과 마찬가지로 위험하다. 몇년 전 F1의 레전드 미하엘 슈마허(Michael Schumacher)의 사고를 본 후로 이런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재미와 안전은 서로 거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겨울은 질색이다. 요즘엔 좀 덜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춥다는 이유로 불쾌지수가 올라가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5가지 중 개인적으로 가장 이해하고 공감하기 어려운 활동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하자면 동물을 혐오하거나 천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개인적으로도 초등학교~중학교 때 단독 주택에 살면서 진돗개를 5년 가까이 키운 경험이 있다. 때문에 생활 속에서 동물을 보살피고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경험이 삶을 진실로 풍요롭게 하고 훗날에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 무대가 아파트로 옮겨온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아파트는 철저히 인간의 편의 위주로 설계된 주거 공간이다. 굳이 “송충이는~”이라는 진부한 클리셰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동물과 사람은 엄연히 다르다. 이것은 반려동물 역시 소중한 생명체이기 때문에 정성을 다해 보살피고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과는 완벽히 별개이다. 같은 사람끼리도 서로의 입장을 배려하며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데, 하물며 생리적 특징과 내면 세계가(동물에게도 엄연히 자신의 의사가 존재한다) 다른 개체라면 상황은 더욱 난감해진다. 동물들이 불편하고 낯선 아파트에 들어와 인간의 편의에 맞춰 생활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게 아닐까?
반려동물 양육 인구는 2000년대 들어 크게 늘어났는데, 물론 의도한 것은 아닐 테지만 연예인들이 그 유행을 주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물론 철저히 본인의 의사와 취향에 따라 동물과 함께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연예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모방하고 추종하는 성향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그 영향력은 매우 컸으리라 추측한다.
싫다기보단 그저 안 하고 살아도 상관없는 활동들일 뿐인데, 쓰다 보니 의도치 않게 ‘화르화르’ 불태운 흔적이 없지 않다. 오해가 있을까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위의 5가지 혹은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는 전혀 없으며, 당사자의 인생을 심리적인 차원에서 윤택하게 만들어준다는 점도 십분 인정한다.
그리고 내 취향에 당당하고 솔직한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쉽게 얻기 어렵단 점도 덤덤히 받아들이려 한다. SNS를 소비하지 말고 당신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 주력하라는 조언도 있지만, 나의 경우엔 사람들이 요즘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에 대해 보다 많이 관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온전한 ‘사회적 존재’로 무난히 살아간다는 건 실상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만족도 생존 후에나 오는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