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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소년 Dec 06. 2020

정답다구요? 무례할 뿐입니다

호의란 철저히 수요자(상대방) 중심의 개념이다

최근 급격히 악화된 전국의 비상 시국 탓에 며칠 간 타의적 ‘은둔 생활’을 하던 중 집안 문제로 부모님을 모시고 모처에 현장 답사를 가던 길이었다. 이 상황에 어디든 잠시 외출할 수 있으며 차 안에서라도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단 것을 다행스레 여기며 싶어 애써 가벼운 마음으로 차를 몰아 근교 도시에 도착했다. 잠시 신호 대기 중 충전 중이던 전화가 울렸다. 끝번호 4자리는 어디서 본 듯 했지만 정확히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았기에 ‘격식을 갖춰’ 받았다.


“여보세요?”

“아~~ XXX씨 전화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만.... 누구시죠?”(번호가 어렴풋이 기억날 뿐 정말 몰랐다)

“야~~ 나 OOO야. 오랜만이네. 왜 근데 모른척하고 GR이야?”

“!!!!!!!!!!!!!!”

“요즘 어떻게 지내? 결혼은 했어?”(이 분은 대화가 미처 무르익기도 전에 미혼인 상대방에게 늘 이렇게 불쑥 질문하신다)

“아 네.... 아직입니다”


10년도 넘게 차이나는 연배가 제법 높은 동문회의 선배였다. 어찌나 당당하게 외치고 질문하셨는지 조수석에 계신 어머니께 그 ‘문제의 단어’가 들릴까 우려될 정도였다. 사실 이 분은 이전부터 모임에서 후배들을 만나면 이런 식으로 본인만의 ‘친근함’ 혹은 ‘정’을 표현하시곤 했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모든 순간엔 그러하였다. 하지만 익숙하거나 예상 가능하다는 것과 어떤 일을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것은 완전히 별개이다. 당황스러움과 불쾌함, 어색함 등 예상치 못한 자극에 튀어나올만한 여러 감정을 뒤로 하고 애써 ‘평범히’ 응대했다.


“아~~ 안녕하세요?”

“그래~~ 요즘 별일없지”

“아 네~~ 근데 제가 운전 중이라서요. 이따 제가 전화드리겠습니다”

“어 그래. 이따 통화해”







“누군데 그래?”


다행히 어머니께서는 무난하고 평범한 내용으로 이해하신 듯 했다. 물론 대화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고 특별히 문제될만한 ‘후폭풍’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 가볍고 쉽게 넘길 수도 있었지만, 순간 오기인지 심통인지 모를 나만의 ‘정의론’이 발동했다. 물론 크게 흥분할 일까진 아니었으므로 최대한 조용하고 부드럽게 그러나 분명히 그 분을 ‘저격’함에서 그쳤다.


“아~~ 고등학교 동문 선배인데, 뭐 궁금해서 연락한 것 같아. 근데 이 사람은 여전히 이렇게 예의가 없네.”



서로간의 존중과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의 ‘걸쭉한’ 드립은 정다움이 아닌 무례함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부재중 전화나 운전중 걸려온 전화에 대해선 차후에 응답을 하는 편인데, 그 날은 솔직히 다시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예 무시한다는 것도 너무 경직된 태도인 듯 싶어 망설이고 있었는데, 3시간 후쯤 다시 연락이 왔다. ‘당연히’ 번호 저장을 다시 하진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터라 누구인지 알 수 있었고 철저히 사무적으로 연락을 받았다.


 슬픈 예감뿐만 아니라 ‘불쾌한’ 예감 역시 좀체 틀리는 법이 없다. 그 분께서는 내가 예전에 하던 일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고 모르긴 몰라도 개인적으로 다소 급한 상황임이 전화기 너머 자연스레 연상되었다. ‘내가 아닌 내 친구가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라는 예의 그 심증 가득한 ‘회심의 핑계’를 전면에 부각시키며 짧은 통화 와중에 비교적 구체적인 정보를 원했으며, 다급한만큼 두서없는 질문이 귀를 파고들어왔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모종의 정보들은 유세를 부릴만큼 대단한 것도 아니었고 연배가 높은 지인을 대하는지라 굳이 내게 정중히 질문해 주길 바라지도 않았기에 최대한 아는만큼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잔잔히 그러나 분명히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당구장의 ‘음향 효과’는 무심하고 영롱하게도 내 귀에 그대로 전달되었고 짧은 대화 내내 머릿속이 쿡쿡 찔리고 긁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개인적으로 예전에 당구를 즐겼기에 당구장이란 공간에 대한 적대감은 전혀 없다). 조용한 곳으로 나와 ‘속삭이듯’ 말해주길 바란 것은 아니다. 다만 과연 이 분이 내게 ‘궁금함’의 옷을 빌려입은 ‘성의’라는 뜻을 조금이라도 갖고 계셨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안타깝게도 별로 그렇지 않을 거란 예측에 아쉬움이 남았던 것은 감출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당신 뿐만 아니라 나도 나이가 들었고 어딘가에서는 고참 대접 받습니다”라는 식으로 항변하지도 않았지만 할 생각도 없다. 그리고 연령 등 각종 ‘스펙’과 무관하게 상대방을 인간 자체로 존중하고 정중히 대접해야 한다는 뻔한 설교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보다 연배가 높으신만큼 사회 생활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만나왔고 각종 관계를 경험하신 분인만큼 이런 소박한 매너 정도는 당연히 알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다만 ‘이렇게 흘러갔더라면 좋았을 것을’이란 의미없는 소망을 담아 대화를 재구성하며 그저 나만이 느꼈을 아쉬움을 달래보려 할 뿐이다. 아울러 만남의 공백이 길었던 ‘남 같은 지인’과의 대화는 특별히 더 신경쓰고 조심해야 한다는 다짐과 주문을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되뇌어 본다.


“여보세요?”

“아~~ XXX씨 전화 아니에요?”

“네 맞는데요 누구시죠?”

“아~~ 나 OOO야. 형 번호 기억 안 나? 섭섭한데 ㅋㅋ”

“아~~ ㅋㅋ 죄송합니다. 형님. 제가 전화기 바꾸면서 미처 못 챙겼네요”(기변한 건 진짜임)

“아냐아냐 괜찮아. 요즘 어떻게 지내? 코로나 때문에 특별한 문제는 없고?”

“아 네 그럼요. 형님도 건강하시죠? 제가 동문회를 못 가서~~ 죄송한데 제가 지금 운전 중이라 이따 전화드리면 안 될까요?”

“그래 이따 연락줘^^”


이런 대화였다면(정확히 말해 그 분의 가치관이 달랐다면) 당연히 선배에게 예우를 갖춰 먼저 연락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대화는 이렇게 흘렀으리라~~


여보세요? 형님 이제 통화 가능합니다”

“어 그래~~ (소음없는 공간임이 느껴짐). 볼일 보던 건 끝났고?”

“네 이제 끝났습니다.”

“어 그랬구나. 실은 내가 좀 궁금한 게 있어서 간만에 연락했는데....”

“BlaBlaBla~~~~~~~”

“어 알겠어. 알려줘서 고마워. 동문회 하면 함 보자”

“아니에요 별것도 아닌데~~ 저도 간만에 형님하고 연락해서 반갑고 좋았습니다. 모임 있으면 갈테니 연락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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